여기 한 마리의 ‘검은 양’이 있다. 그는 20대 청년이다. 학업을 위해 서울에서 홀로 자취생활을 한지 어느덧 수개월째. 가족과 친구들을 두고 홀로 서울에 온 그는 외로울 법도 한데, 무척이나 씩씩하다. 간간이 일을 하며 돈을 벌기도 하고, 소소한 여가를 보내기도 한다. 그 또한 여느 20대 청년처럼 미래를 고민하고 걱정한다.
당신은 이 글의 첫 문단은 읽으면서 그가 한국인이라는 전제하에 읽었는가? 당신의 예상과는 다르게도 그는 사실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온 뚠(Tun)이라 한다.
한국에는 수많은 학생들이 있다. 대개 대학 친구라 하면 무의식중 그 사람을 당연히 ‘한국인’으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한국으로 유학을 온 외국인 학생들도 한국 대학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그들을 배제시키고 ‘외국인’으로 정의하며 울타리를 친다.
그렇다면 실제로 한국 대학생들의 외국인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가?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이사장 안치용) 소속 대학생 기자단 YeSS가 2.1지속가능연구소와 함께 현대리서치에 의뢰하여 진행한 <대학생 가치 조사> 결과, 응답자들의 외국인에 대한 평균적인 신뢰도는 32.7%로 나타났다. 이는 친구들에 대한 평균적인 신뢰도인 76.9%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평균적 신뢰도가 30.3%로 나타난 것을 고려하면, 외국인에 대한 신뢰도는 오히려 처음 보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외국인은 처음 보는 사람이라는 인식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설사 그들과 친구가 된다 하더라도 ‘외국인 친구’라 정의하며 무의식적으로 ‘친구’와의 차별성을 두곤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을 긋고, 너는 외국인이니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국 대학에 다니면서 여느 한국인 학생들과 같은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태국 청년 뚠(Tun)을 만나 한국에서의 외국인, ‘검은 양’으로서의 삶을 들어보기로 했다.
가벼운 질문부터 시작하도록 할까요? 태국어, 영어, 한국어 총‘3개 국어’로 간단한(웃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태국에서 온 뚠이라고 합니다.
Hello! I am Tun from Thailand.
한국어 발음이 참 귀엽네요. 한국어 공부한지 얼마나 됐어요?
한국어를 공부한지는 2년 정도 됐어요. 처음에는 동글동글한 게 많고 귀여워서 한국어가 쉬워 보였죠. 그런데 공부해보니 전혀 아니더라고요. (웃음) 이제는 하나의 생존수단 도구로서 한국어를 공부해요. 지금 한국에서 살고 있으니까 한국어를 더 많이 알수록 좋은 거잖아요.
◇이 날의 공부 흔적 '치실', 치실 발음을 어려워해 '시실'과 혼동했었다.(사진=바람아시아)
한국에 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사람들이 공부하러 왜 한국에 오게 되었는지 물어볼 때, 그냥 ‘다른 언어를 배우고 싶어서’라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사실은 한국이 어떻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 알고 싶어서 오게 된 거예요. 한국에는 천연자원이 거의 없지만 인적자원 면에서는 아주 뛰어나잖아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너무 심각하니까 그냥 단순하게 말해버리는 거죠. (웃음)
뚠은 태국 사람인데 한국인처럼 생긴 것 같아요.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오해받아본 적 있어요?
정말 많아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제가 같은 한국인인 줄 알고 한국어로 말을 빨리해버려요. 사실은 태국 사람인데 말이죠. (웃음) 한 번은 친구들과 다 같이 스키장에 놀러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스키를 타다 보니까 친구들이랑 다 뿔뿔이 흩어져버리게 됐죠. 그래서 혼자 스키를 타려고 리프트를 탔는데, 어떤 한국인 남자분과같이 타게 됐어요.
그분이 저한테 한국말로 말을 걸으셔서 저도 한국어로 말해보려고 노력했더니, 제가 한국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스키 장비 사용법 같은 걸 물어보기 시작하더라고요. 많이 당황스러웠죠. (웃음) 또 한 번은 다른 외국인 친구들이랑 같이 밥을 먹으러 갔어요. 저보다 한국어를 잘 하는 친구가 주문을 하고 있었는데, 주문을 받고 있던 종업원이 계속 저를 쳐다보더라고요. 제가 한국인인 줄 알았나 봐요.
그가 어느 정도로 한국인같이 생겼는지를 설명해주기 위해서는 그와의 첫 만남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를 만나기로 한 충무로. 그를 만나는 것이 처음이었지만 못 알아보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은 없었다. 태국인인 그는 한국인들과는 다르게 생겼을 테니 알아보기 쉬울 것이라 생각했기에. 마침내 지하철 출구에서 나와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왠지 이국적인 외모의 남성분이 약속 장소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저 사람이 뚠 인가?’하고 빤히 쳐다보며 ‘내가 너와 만나기로 한 사람이다’라는 신호를 기다렸지만 돌아온 것은 외면이었다. ‘그가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과 함께 여기 어디쯤 있을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알고 보니 그는 지하철 출구 아래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곧이어 그와 마주한 순간, 내가 왜 그를 지나쳤는지 알 것 같았다. (혹은 그가 정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다려서 지나친 것일 수도 있다.) 그가 사실 태국인이라는 부연 설명 없이는, 누구나 그를 한국인이라고 오해할 법 했다.
◇기자보다 더 한국인같이 생긴 '뚠'(사진=바람아시아)
지금 한국에서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 말씀해주세요.
태국에서 공대를 졸업했어요.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광주에서 공부를 하다가, 지금은 서울 소재 한 대학교에서 MBA를 공부하고 있어요. 어떤 공부를 하냐면, 영어로 써진 논문들을 읽고, 다른 학생들과 이에 대해 해석하고 토론해요. 그리고 이것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쓰기도 하고 같이 팀 프로젝트를 하기도 하고요. 이런 것을 매일 해요. 학교에서 조교로도 일하고 있어서, 굉장히 바쁘죠. (웃음)
학교에서 MBA 과정을 마치면 무엇을 하고 싶어요?
저는 졸업하고 나면 여기에서 더 머물고 일할 계획은 있어요. 하지만 한국의 취업시장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일자리를 찾아보려 하고 있어요. 아직은 태국으로 돌아갈 계획은 없는 거죠. 만약 한국에서 일할 기회가 있다면, IT나 게임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요. 특히 태국이나 동남아시아 시장 쪽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회사요. 그래서 지금 TOPIK을 따려고 열심히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어요.
‘태국에는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라면 그런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혼자 사는 것이 좋기도 하고, 외국에서 나와 사는 것이 좋아서이기도 해요. 다른 이유가 있다면, 처음 외국에서 살았던 것이 미국에서 1년 살았던 건데 그 경험이 절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꿨죠. 그 덕에 제가 더 개방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한국에 와서 살고 계신 거군요. 그러면 한국에서 산지 2년쯤 되어 가는데, 한국에서 사는 것은 어떤가요?
한국은 물론 좋은 나라에요. 여행하기도 쉽고. 그런데 한국에서 사는 것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그 이유는 아무래도 문화적인 요소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느끼기에는 이게 과거부터 지속되어 온 문화인 것 같아요. 한국인들이 ‘우리’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 것을 봐도 그렇고.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에요. 그들이 살아온 방식인 것이죠.
또, 제가 한국인 친구들과 아무리 친하다고 하더라도, 그 친구들에게 저는 ‘외국인 친구’에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나는 한국인처럼 될 순 없겠구나, 하고. 이게 어떤 의미냐면, 제가 그들과 친해지는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거죠. 어떤 특정 경험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겉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에요. 보이지 않는데 느낄 수 있는‘그런 느낌’인 거죠. 한국인 친구들만큼 친해질 수는 없겠구나, 하는.
한국에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도중, 그는 한국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데 굉장히 조심스러워 보였다. 태국인인 그가 한국인 앞에서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당연히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은근히 주저하는 모습이 가득한 그를 앞에 두고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은 나였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인인 나의 시각에서 본 한국에 대한 주관적인 이야기였다. 이것에 살짝 덧붙인 내 생각을 말하자면 이러하다.
어느 나라든 같은 나라 사람에 대한 유대감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국은 이에 비해 한국 사람끼리 더욱 끈끈한 편이라 생각한다. 이는 앞서 그가 언급했던 것처럼 과거부터 지속되어 온 문화적 요인 때문일 수도 있으리라. 따라서 외국인이라는 신분으로 한국인들 사이에 섞여 들어갈 틈은 없다. 이것은 외국인인 그들을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혹은, 낯선 그들에 대한 거부감일 수도 있겠다. 어찌 보면 외국인과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비슷하다는 리서치 결과도 이런 면에서 설명되는 것 같다. 아직 그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 ‘외국인 = 처음 보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것이 아닐까? 이렇게 따지고 보면,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외국인을 하나의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데 나아가야 할 길이 많이 남은 듯싶다.
한국인인 제가 다른 나라에서 ‘외국인’으로서 살았을 때도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이런 생각이 유독 한국에서만 드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어느 나라를 가던지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외국인으로 살다 보면 당연히 들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드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외국인에 대한 시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 정부에서도 재능 있는 외국인들을 한국에 유입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더욱더 나아질 거라는 거지만, 그러려면 아직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와의 인터뷰는 나를 완전히 몰입시키기 충분했다. 항상 그래왔던 한국인의 시야가 아닌, ‘외국인’의 시야로 바라본 한국에 대한 이야기였기에. 그리고 그의 말에 그가 그동안 깊이 생각해왔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나왔기에.
다만 아쉬웠던 것은 지하철 막차 시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시계의 짧은 바늘이 초바늘처럼 느껴졌던 만큼, 더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더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말이다. 아쉽게도 우리는 인터뷰를 슬슬 마무리하기로 했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저는 제 직업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나중에 나이가 들었을 때는 교수가 되는 것을 생각하기도 해요. 왜냐하면 저는 제 지식을 잘 활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인터뷰가 진행된 날이 설날 연휴 바로 전인 2월 17일 화요일이었다.) 내일모레가 한국의 음력 새해잖아요. 인터뷰를 마무리하기 전에 뚠에게는 어떤 새해 소망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올해 여자친구를 만드는 게 제 간절한 새해 소망입니다. (웃음) 한국에는 제 가족과 태국 친구들도 없는데, 싱글이기까지 하다면...
인터뷰를 마친 후 지하철에 몸을 실은 그는 다시 일상 속으로 젖어든다. 수많은 흰 양들 속에 한 마리의 검은 양이 되어. 그리고 나 또한 다시 일상 속으로 젖어든다. 그 수많은 흰 양들 속에서 나 또한 한 마리의 흰 양이 되어. 이분법적인 양들의 우리에서, 오늘은 또 이렇게 굴러간다. 언젠간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감 속에.
흰 양들에 둘러싸여 살다 보니 나는 단 한 번도 검은 양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없었다. 하지만 검은 양들에 둘러싸여 한 마리의 흰 양이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흰 양이 아니라 그저 ‘양’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검은 양들 속에서 한 마리의 흰 양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나를 그저 ‘한 마리의 양’으로서 받아들여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끊임없이 그들에게 섞여든다.
흰 양들 속 검은 양이기 전에 외국인도 한 마리의 양이다. 이해는 아주 작은 시각의 변화에서 시작한다. 그러니 ‘쟤는 우리랑 다른 검은 양이잖아.’라기보다, ‘쟤도 우리와 같은 양이구나’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럼으로써 그들은 단순히 처음 보는 사람 뿐만은 아니게 될 테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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