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임대료 압박에 대학로서 밀려나는 소극장들
"소극장의 역사성과 공공성 인정해야"
2015-03-17 15:40:29 2015-03-17 15:40:35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대학로 문화를 상징하는 소극장 연극인들이 창작의 터전에서 점차 밀려나며 위기를 겪고 있다.
 
소극장 연극인들은 지난 2004년 대학로 문화지구 지정 이후 창작환경이 악화됐다고 입을 모은다. 문화지구 지정 이후 땅값이 치솟으면서 임대료 역시 이들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급기야 연극인들은 지난 11일 오후 2시 서울 대학로 대학로극장 앞에서 상여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28년 역사를 지닌 소극장인 대학로극장이 폐관 위기를 맞자 연극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단체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 자리에는 정재진 대학로극장 대표 외에 김의경 연출가, 기국서 연출가 등 연극계 원로들도 함께 했다.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소극장은 비단 대학로극장뿐만이 아니다. 김동수플레이하우스의 경우 이미 올해 초 문을 닫은 상태고, 꿈꾸는 공작소도 올해 말까지 나가달라는 '시한부 통보'를 받은 상태다.
 
지난 11일 대학로극장 앞에서 상여 퍼포먼스를 벌이는 연극인들
 
대학로 창작환경 악화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문화지구 지정은 지난 2000년 개정된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른 것이다. 개정된 진흥법에 따르면 시.도지사는 자치조례를 통해 특정 지역을 문화지구로 지정해 역사문화자원을 관리.보호하고 문화환경 조성을 도모할 수 있다. 문화지구로 지정될 경우 문화시설 및 업종들은 조세혜택을 받을 수 있고 각종 건축기준 완화 혜택도 누릴 수 있다. 대학로의 경우 2004년에 문화지구로 지정됐다.
 
문화지구 지정에 따라 건물주들은 다양한 혜택을 받게 됐다. 극장을 지을 경우 대학로의 건물 용적률은 100% 상향 조정됐으며, 건물주가 확보해야 할 주차면적은 50% 감면된다.
 
이같은 여러가지 혜택 때문에 문화지구 지정 이후 대학로 일대 건물에 수많은 극장이 들어섰다. 일부 연극인들도 비록 건물주는 아니지만 후속 지원을 기대하며 소극장 짓기에 동참하기도 했다. 한국소극장협회에 따르면 2003년도까지 대학로 소극장은 60개 미만이었지만 현재는 140개가 넘는다.
 
문제는 문화지구 지정에 따른 혜택이 건물주에게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삼일로 창고극장, 연우무대 등과 더불어 소극장 운동의 본산지로 꼽히는 대학로극장을 운영 중인 정재진 대학로극장 대표는 "문화지구를 처음 시작할 때 소극장 연극인들도 다 기대했는데 그동안 단 한 푼의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면서 "문화지구가 된 건 연극인들 때문인데 건물주한테만 혜택을 주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고 일갈했다. 정 대표는 "이번 일을 겪으며 용산참사가 떠올랐다"며 한숨을 지었다.
 
정대경 한국소극장협회 이사장은 "처음에 대학로를 문화지구로 지정한 것은 좋은 의도였으나 명동과 강남에서 젊은 층이 유입되는 것과 맞물리면서 대학로 자체가 번화한 상업지구로 변모했다"며 "지가가 상승하고 장사가 잘 되니까 임대료도 상승하게 됐는데 극장 임대료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 이사장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연극인들의 대관료를 80%까지 보전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등 연극계로서는 고무적인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같은 혜택이 소극장에 돌아가는 경우는 드물다"고 전했다. 대학로에 CJ쁘띠첼, 롯데그룹 샤롯데 등 300석 이상 규모의 극장들이 생겨나면서 소극장에서 순수 연극을 보던 관극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되는 공연'들은 대관료 지원에 힘 입어 큰 극장을 선호하는 가운데 전통적인 소극장은 임대료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이보다 근본적인 이유도 있다. 연극 장르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중요도는 점차 줄어들었지만 공급은 늘었다. 연극이 순수예술이 아닌 오락으로 변질되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오락성이 짙은 연극이나 뮤지컬, 스타마케팅을 앞세운 연극이 아니면 이제 대학로에서 수익을 맞추기가 힘들다. 
 
연극인들은 문화지구 지정에 대한 세밀한 재검토를 요구하는 한편 소극장의 역사성과 공공성을 인정해야 대학로에서 연극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정대경 이사장은 "이럴 바에는 차라리 문화지구 지정을 해제했으면 한다"면서 "창작의 기반으로서 소극장의 역할도 있는 건데 이렇게 시장논리로 쫓겨나는 게 문화융성 시대에 맞는 것인가. 민간 소극장의 공공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재진 대학로극장 대표 역시 "극장수가 너무 많아 혜택을 모두에게 다 줄 수 없는 거라면 외국의 경우처럼 적어도 10년 이상된 소극장만이라도 역사성과 공공성을 인정해달라는 것"이라며 "현재의 정책은 연극인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부자들만 더 부자가 되게 하는 정책"이라고 토로했다.
 
현재 한국소극장협회는 소극장 대표들을 중심으로 종로구를 제외한 서울의 25개 자치구에 공문을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약 30개 소극장이 대학로를 포기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대신 적정 수준의 임대료를 보장해달라는 게 이들의 요구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