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맛지도 (대학생의 마음을 동하게 한 맛집 지도)
한 선배의 강요에 가까운 추천 때문이었다. 그리 의욕적이지 않은 채로, 반쯤 감긴 눈을 하고선 그 작은 포차를 처음 찾아간 일은 말이다. 별 것 없기로 유명한 ‘중앙대 후문’ 쪽, 그것도 학교에서 10분은 걸어가서야 나오는 작은 가게.
선배는 옆에서 호들갑이다. 쉬지 않고 이 집이야 말로 ‘맛집’이란다. 그러나 나에겐 상도역에서 숭실대 까지 죽 늘어서 있는, 비슷한 간판의 흔한 구멍가게 중 하나 정도가 이 상도역 1번 출구 앞 ‘맛집’의 첫 인상이었다. 뭐,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어디인가. 심드렁한 표정을 유지한 채 안으로 들어갔다.
열 개도 없는 테이블에, 안쪽이 다 보이는 좁은 주방까지, 그야말로 허름한 공간을 술에 취해 꼬부라지는 목소리와 왁자한 웃음소리, 담배연기 등이 꽉꽉 채우고 있었다. 대학가 맛집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아닌가. 게다가 벽면을 한 가득 매우고 있는 메뉴판을 보시라, 닭갈비, 제육볶음, 오돌뼈부터 오뎅탕, 동태찌개, 알탕 등을 지나 물회에 전어, 산낙지까지 있단다.
◇사진=바람아시아
“뭘 시켜야 되는데요? 뭐가 맛있어요?”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그 광활한 메뉴들을 보며 어지러워하는 중에, 뭐든 시켜보라며 재촉하는 선배에게 당황하여 외친 말이다. 사진도 없고 추천도 없고, 평소에도 메뉴 고르기에 골치를 썩이며 ‘선택장애’에 시달리는 나에게 이 몇 십에 달하는 메뉴 중에 하나를 골라 시키라는 것은 거의 고문이었다.
그럴 때면 당연히 ‘여긴 뭐가 맛있어요?’ 하는 질문이 나오는 법. 더군다나 이렇게 규칙성 없이 다양한 메뉴들을 보면, 분명 그 중 무언가는 영 아니다 싶은 맛이라 생각이 들지 않겠나. 그런데 선배는 답답하다는 듯 등을 퍽퍽 두드려댄다.
“아무거나 시키면 되지 뭐 그리 생각이 많아?”
이리도 무심할 수가 있나. 그럼 선배가 뭐든 맛있는 걸로 시켜보시라, 실랑이를 벌이는 와중에, 주방에 계시던 사장님이 한 마디 거드신다. “다 맛있어, 다!” 자신 있게 외치고는, 이번에 전어가 맛있게 나왔다며 슬쩍 권해주신다. 사양 않고 시켰더니, 먹음직스런 전어무침이 한 접시 푸짐하게 차려졌다.
걱정했던 맛은 사장님의 자신 있는 목소리 그대로였다. 끝난 게 아니다. 냄비에 끓여낸 콩나물국에, 설탕을 잔뜩 묻혀 튀긴 추억의 라면땅까지, 테이블마다 나오는 기본 서비스란다. 꿀꺽 침 한번 삼키고는 태도를 고쳐먹을 수밖에. 이거, 생각지도 않게 정말 ‘맛집’에 찾아왔구나.
◇콩나물을 넣고 끓인 김치찌개, 기본 안주인데 놀랍게도 고기가 들어있다.(사진=바람아시아)
◇추억의 라면땅, 매운 안주와 함께 먹을 때가 일품이다.(사진=바람아시아)
만 얼마밖에 안하는 가격이라곤 믿기지 않는 음식의 맛이며 양에 만족하며, 이 얼떨결의 술자리를 즐기다 보니 또 다른 독특한 점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먼저 이 좁은 테이블들을 가득 메운 손님들의 다양성. 과잠바를 맞춰 입고 회식하러 온 중앙대생들부터 멋지게 차려입고 나온 커플 한 쌍, 일 끝내고 한 잔 걸치러 찾아온 모양새의 회사원 형님들에 삼삼오오 모여든 아버님, 어머님들 까지. 고르기 힘든 메뉴들만큼이나 그 인원이 다채롭지 않은가. 거기다 테이블은 이미 만석으로 바글바글하다. ‘중앙대 앞’이라기에 민망할 정도의 먼 거리에, 젊은이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외관이 참으로 무색하다.
그 뒤로 몇 번이나 더 그 포차를 찾았다. 끽해야 만원 만이천원 하는 수많은 메뉴들, 사장님의 자신처럼 다 맛있으려나하는 기대감은 물론이고, 방학에도 새벽 세시까지는 여는 넉넉한 영업시간 등, 10분 정도 더 소비하여 그곳을 찾아갈 이유는 대강 보아도 많았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그 투박한 인테리어로는 감추지 못하는 상도포차 특유의 사람냄새가 아닐까 싶다. 왜, 가끔가다 그런 장소가 있지 않나. ‘술 마시고 싶으니’ 찾아가는 곳이 아니라, 그곳을 떠올릴 때면 ‘거기 가고 싶다’로 생각이 나는 장소. 나에게는 상도포차가 바로 그런 장소가 된 듯 했다.
그렇게 몇 번, 포차를 찾아가던 날 중의 일이다. 같이 한 잔 하던 선배가 담배를 피우러 가, – 15년 시행된 금연법으로 이제는 상도포차도 금연 장소가 되었다 – 바람도 쐴 겸, 말상대 삼아 함께 나가 있던 참이다. 가게 밖을 쓸고 계시던 아저씨 한 분이 대뜸 말을 걸어오는 것 아닌가. “담배 좀 끊어! 몸 상해!” 하시더니, 너털웃음 터뜨리시곤 당신도 한 대 같이 피신다. 그래도 끊는 게 쉽지는 않지? 하고 중얼 거리시며.
그런데 이 분, 어딘지 낯이 익다.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 어디서 봤더라 하는 생각에, 옆에 있던 선배가 쾅 하고 도장 찍듯 반가운 인사를 터뜨렸다. “지부장님!” 지부장님? 하고 얼떨떨해 하는 차에 선배는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쌍차! 쌍차! 하고 눈치를 줬다. 그제야 나는 전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이자 ‘상도포차’ 사장님의 남편 되신다는 김정우 전 지부장을 간신히 알아챘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전방에서 투쟁을 외치던 인물이 ‘설거지할 거 많나?’ 하며 주방 눈치를 살피는 모습을 본다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이렇게 상도포차와 노조 운동의 이 뜻밖의 인연을 알게 되었고, 더불어 12년도에 운영되었던 해고노동자를 위한 ‘희망식당’이 바로 이 상도포차였다는 사실도 새로 알았다.
과연, 이곳에서 나는 사람냄새의 기원을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도로점거 시위에 관한 대법판결에 패소한 김정우씨를 두고, ‘난 질 것 같더라’며 넉살좋게 어쩌겠어, 뒷바라지 해줘야지 하며 넘어가시는 사장님의 모습을 보니 더욱 그랬다. 신문에서나 접할 비극의 한 가운데, 거기서 울음보단 웃음으로 희망을 키워나가는 작은 포차가 여기에 있었다.
인터뷰는 주말, 상도동의 어느 음식점에서 점심 특선 샤브샤브를 앞에 두고 시작되었다. 찾아가서 인터뷰를 요청하자 흔쾌히 주방에 들어와서 이것저것 물어보라던 사장님이, 따로 자리를 가질 순 없겠냐는 말에 ‘그럼 이번 주말에 나오라’며 당장에 잡은 자리였다.
말 한마디 할 때 마다 사리를 푹푹 떠주시는 사장님 덕에, 그야말로 푸짐한 인터뷰가 됐음을 먼저 고백해야겠다. 싼 값에 한 상 푸짐하게 차려 나오는 상도포차의 인심이 여지없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인터뷰라기 보단 편안한 식사 자리에 온 느낌이었고, 그 느낌 그대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먼저, 상도포차를 소개한다면?
거창하게 소개할 게 있나. 상도역 앞에서 4년째 운영 중인 실내포차다. 그렇게 안보일 텐데, 파는 게 싸고 양이 많아서 그런가, 의외로 젊은이들도 많이 오는 집이다. 아저씨들이 자주 올 거라고 많이 생각들 하는데 오히려 젊은이들이 너무 많아서 나이 드신 손님들이 오기를 좀 꺼려하기도 한다.
하긴, 가끔 찾아와보면 손님 층이 굉장히 다양하다. 주로 어디서 많이 오나?
우선 학생들이 많이 온다. (학생들은) 대부분 중앙대 학생들. 숭실대에서도 조금 오긴 하는데 단골 몇을 제외하곤 중앙대생들이 대부분이다. 중앙대에선 꽤나 (맛집이라고) 소문도 난 것 같다. 익숙한 얼굴들은 매번 찾아오고, 또 그들이 새로운 얼굴도 데려오고. 그리고 여기 근처에 살거나 일하는 사람들도 자주 찾는다. 아무래도 주택가이다 보니 학생 아닌 사람들도 꽤 오는 편이다. 물론 그 외에도 단골손님들이 많은데, 이 사람들은 도무지 공통점이 없다. 먼 지역에서 매번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서울 사는 사람들도, 다른 동네에서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와주는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면 어떤?
강남에서 데이트를 하고, 매번 여기로 술을 마시러 오는 커플이 하나 있다. 쭉 빼입고 차를 끌고 와서는 안 어울리게도 여기에서 논다. 또 누구는 제주도에 사는 사람인데, 신기하게도 여기 회가 입에 맞는다고 자꾸 찾아온다. 이런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 물론 학생 단골들도 빼놓을 순 없다. 요즘엔 선배들이 자꾸 입소문을 퍼뜨리는 것 같은데, 한번은 회식한다고 100명자리를 예약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여기 와보라는 말만 듣고 전화해 본 거지. 우린 10테이블도 안되는데!
메뉴가 굉장히 많은데, 간판 메뉴라 할 것이 있나?
다 맛있다! 괜히 자랑하는 게 아니라 다 자신이 있어 걸은 메뉴들이다. 좋은 재료 써서, 내가 보기에도 맛있고 먹고 싶어야 내놓는 것들이다. 그래도 손님들이 자주 찾는 간판 메뉴가 있긴 하다. 회 종류를 많이들 찾는데, 그 중에서도 물회가 우리 집 진미다. 방금 말한 강남에서 제주에서 오는 단골들도 다 이 물회 먹겠다고 찾아온다. 요즘엔 오징어 말고 광어를 가지고 물회를 한 번 해봤는데 정말 맛있다. 오징어가 없을 때 대신 차려준다. 신 메뉴로 새로 내놓을까도 고민 중이다.
싼값에도 불구하고 맛있다는 평이 자자하다. 재료를 좋은 걸 쓰는 것인가?
맞다. 절대 싸구려는 쓰지 않는 게 원칙이다. 특히 양념이나 야채들을 중국산으로 하고, 재료보다 조미료를 팍팍 넣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그 음식은 격이 확 낮아진다. 우리가 집에서도 사 먹는 것들과 똑같은 것들을 시장에서 사 올려야 한다. 그래야 맛있는 음식이 된다.
안주 값이 꽤 싼 편인데, 재료에서 아끼지 못하면 남는 게 별로 없지 않나?
그렇긴 하다. 어떤 건 정말로 남는 게 별로 없는 것도 있다. 그래도 재료값을 (싸게 해서) 그런 식으로 아끼는 것 보다는 낫다. 내가 남는 게 별로 없더라도 손님들한텐, 특히 학생들한텐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다. 자식뻘이지 않나. 다들 용돈에 알바비 아껴 쓰고 사는데, 싼값으로 맛있는 음식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지 않겠나.
가게를 운영하는 데에 힘든 점이 있다면?
당연히 힘이 든다. 뭐 특별할 건 없고 몸이 정말 힘들다. 작은 가게라지만 때 되면 손님이 끊이질 않고, 어쩔 땐 자리가 없으니 포장만 해달라는 사람들까지 넘쳐서 하나 둘이서 감당하기엔 힘들 때가 많다. 한 번에 안주 열 가지 정도 주문이 들어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지 않겠나. 손님이 많은 학기 중엔 알바를 두긴 하지만, 그래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그만큼 손님이 많으니까. 그렇다고 벌이가 엄청 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웃음)
혹시 가게를 학교 앞으로 옮기고 싶은 생각은 없나?
돈이 어디 있어서 옮기나!
가게를 확장하고 싶은 생각은?
더도 말고 딱 열 테이블 정도만 더 놓으면 좋을 것 같다. 여기저기 있는 대형 술집처럼 엄청나게 큰 모양새는 싫고, 딱 그 정도만 있으면 지금처럼 잘 운영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좁아서 사람들도 많이 왔다 그냥 가고,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치가 않으니까....... 물론 벌이도 좀 좋아질 것이고 (웃음)
남편 분(김정우 전 쌍용차 금속노조 지부장)이 쟁의 활동을 활발히 하고 계시지 않나. 혹시 그에 대해서 한 마디 해주실 수 있는가.
속이 터진다. (웃음) 내가 그 뒷바라지 한다고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른다. (사회) 운동에 너무 빠지지 마라. 삶이 힘들어진다. 그 활동을 열심히 하니 집에 붙어있을 날도 없다. 언제는 평택에, 언제는 또 서울에 왔다가 한다. 집에 올 때 마다 가게 일 좀 도우라 하는데, 그게 그렇게 귀찮은 지, 얄밉게 도망을 또 그렇게 잘 친다. 그래도 어떡하나, 안 남는 장사라도 열심히 일해서 같이 먹고 살아야지. 그러나 내 사정이 어렵다고 비싼 값으로 팔고 싶거나, 안 좋은 재료를 쓸 마음은 없다. 이것도 저것도 다 같이 살자고 하는 것 아니겠나.
마지막으로, 혹시 가게를 운영하는 데에 있어 철학이라든지, 추구하는 바가 있는 지 이야기 들어보고 싶다.
그런 거창한 걸 갑자기 물으면 잘 모르겠는데....... 음, 그냥, 깔끔해야 된다. 특히 주방은 무조건 깔끔해야 된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처럼 깔끔하게 인터뷰는 끝나버렸다. 답변들은 참으로 소박했고, 진솔하다 못해 털털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 짧은 답변들 속엔 분명 ‘상도포차’가 지켜온, 그리고 앞으로도 유지해 갈 어떤 정신이 미사여구 없이 녹아 있었다. 각지에서 갖가지 사정을 가진 수많은 각자들이 모여드는 이 조그만 포차, 이곳에서 그들은 만원, 만이천원짜리 안주에 오늘도 소주를 들이킨다.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왔고, 어떻게든 살아갈 이들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든 다 같이 살아갔으면 하고 바라며 상도포차의 주방은 쉼 없이 달그락 거린다.
◇12000원짜리 닭갈비, 먹은 후 밥 까지 넣고 볶아 먹어야 고수라고 한다.(사진=바람아시아)
열 테이블 정도만 늘렸어도 좋았을 아주 조그만 포차지만, 가게 평수보다도 이곳은 다 같이 살아보자는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 그러니 12년도에 내걸었던 ‘희망식당’이란 이름은 아직도 무색치가 않다. 자, 설거지가 싫어 눈치 보는 노조 지부장과 담배 한 대 태우고 들어오면 안주가 나올 시간이다. 오늘도 그랬듯 내일도 다 같이 살아가야 하기에, 안주의 이름은 한 그릇 가득 희망이다. 야채는 국산, 조미료는 일절 없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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