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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건보료 개편' 말바꾸기·책임전가로 '만신창이'
안 한다→한다→연내 아냐→당·정 협의 거쳐야
내부 조율거쳤나? 외압 있었나? 의문 속출
2015-02-05 15:33:21 2015-02-05 15:33:21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정부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 추진을 놓고 우왕좌왕 갈피를 못잡고 있다.
 
최근 건보료 체계 개편안을 백지화한다고 말했다가 다시 일부 문제점은 고치겠다고 말을 바꿨고 그러면서도 연내 추진은 아니라는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당까지 이 문제를 걸고 넘어지면서 자칫 당·정 불통으로까지 확대될 조짐이다.
 
◇문 장관 "건보료 개편 추진 안해" 발언이 사태 키워
 
건보료 체계 개편안 사태는 지난달 28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언으로 촉발됐다.
 
당시 문형표 장관은 예정에도 없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찾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2013년부터 운영한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기획단의 건보료 체계 개편안에는 보완이 필요하다"며 "올해 중에는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은 건보료를 소득중심으로 물려 저소득층의 비용부담을 줄이고 고소득자에게 건보료를 많이 부과하는 게 핵심. 현행 건보료 체계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가 개별 기준으로 건보료를 부과했고 저소득층 등 지역가입자의 부담이 컸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9월 직장가입자의 보수 외 소득에 건보료를 부과·확대하고, 지역가입자 건보료 산정 기준에 성·연령·자동차 등을 빼는 개편안을 제시했다. 또 2013년부터 운영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기획단이 그간 논의한 결과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었다.
 
(사진=뉴스토마토)
 
하지만 최근 정부가 연말정산 파동을 겪고 여론이 '증세'에 과민반응을 보이자 복지부 스스로 고소득자에게 증세효과를 주는 건보료 체계 개편안을 철회했다.
 
실제로 문 장관은 이날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후 추가소득이 있는 직장가입자의 부담이 늘면 그들에게도 불만이 있을 것이므로 신중하게 검토한 끝에 건보료 개편안 연기를 결정했다"고 말해 정부가 고소득자 증세에 따른 부담을 의식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사태는 이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청와대는 즉각 민경욱 대변인을 통해 "문형표 장관의 발언과 관련해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을 백지화하겠다는 게 아니다"며 "충분히 시간을 두고 검토해서 추진하기 위해 복지부가 내부적으로 검토한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청와대가 건보료 체계 개편안 연기의 책임을 전적으로 문 장관에게 돌린 것이다. 가뜩이나 증세 파동을 겪으면서 여론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상황에서 건보료 체계 개편안까지 백지화되면 정권에 대한 지지율 급락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여·야뿐 아니라 청와대 질책에도 여전히 애매한 입장
 
복지부는 청와대까지 질책이 이어지자 한발 물너서는 모습을 보이는 듯 했지만 여전히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복지부는 "이달 중 연소득 500만원 이하 저소득층에 대한 건보료 경감 대책을 만들겠다"며 "생활 수준과 가족 수, 나이, 성별 등을 검토해 보험료를 물리고, 연간 소득 500만원 이하의 지역가입자에는 건보료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복지부는 "연내 저소득층 건보료 체계 개편, 내년 중 건보료 체계 전면개편은 정해진 바 없다"며 "당·정이 협의해 문제를 처리하겠다"는 애매모호한 입장을 보였다.
 
저소득층 건보료 경감은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과 맞물렸는데 한쪽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해놓고 다른 쪽으로는 구체적으로 정한 게 없다는 대답을 내놓은 것. 건보료 부과체계를 고치자니 고소득자의 반발이 예상되고 안 하자니 국민 여론이 등을 돌리게 된 마당이라 여차하면 언제든지 발을 뺄 수 있는 여지를 남기겠다는 심산으로 풀이된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News1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건보료 부과체계 연내 추진은 확실히 아니다"며 "다만 정부는 애초 저소득층의 건보료를 줄이는 방안을 만들고 그 후 고소득자의 부담을 강화로 방향으로 가려 했고 조금 더 세밀한 시뮬레이션과 검토가 필요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복지부 입장은 더 난처해졌다. 지난 2일에는 건보료 체계 개편기획단을 이끈 이규식 연세대 교수가 건보료 개편안 재추진을 주장하며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고, 여당과 야당 모두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 다시 추진해야 한다며 압박을 넣는 상황이다.
 
◇정부 무능·외압설 등 지적에도 백지화 배경 함구
 
이처럼 건보료 개편안 백지화를 놓고 최근 일주일간 복지부는 갈팔질팡 모습을 보이자 정부가 무능하거나, 다른 곳에서 외압이 들어오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증세와 복지' 논쟁이 뜨거운 요즘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 백지화를 장관 한명이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닌 데다 정부의 정책 결정에 반대입장을 안 내던 여당까지 이번 일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점 때문이다. 사전에 이 문제를 놓고 당·정·청 협의가 전혀 없었고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서로 책임 떠넘기기라는 지적도 있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기획단에 위원으로 참여했던 관계자는 "정부는 기획단의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 발표 일정까지 취소하고 위원들에 사전 통보도 없이 개편안을 백지화했다"며 "단순히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결정된 일만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복지부는 "건보료 부과체계 연내 추진은 아니다"는 말만 반복할 뿐 문 장관이 개편안 백지화를 선언한 배경과 정부가 마련할 건보료 체계 개편안의 내용은 함구 중이다.
 
또 이날 국회에서 열린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 중단,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는 이동욱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장이 토론자로 초청받았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불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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