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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산업 10대뉴스)'수감' '재판' '복귀'..3人3色 총수 운명
2014-12-24 18:26:20 2014-12-24 18:26:22
[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서울 삼성동 금싸라기 땅에 현대차그룹이 1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금액을 베팅할 때, 이를 바라보는 각 그룹들의 시선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특히 SK, CJ 등 총수가 장기간 부재인 곳에서는 부러움의 시선도 느껴졌다. 감정가액의 3배가 넘는 도박 아닌 도박을 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의 거침없는 결정의 빈 자리가 커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최고경영자의 결정이 반드시 옳을 순 없다. 웅진그룹과 STX그룹의 몰락에서 보듯 총수의 잘못된 독단은 그룹을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하이닉스 인수 결정처럼 소위 말하는 '대박'을, 때로는 정몽구 회장의 10조 베팅처럼 무수한 뒷말을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현대차그룹과 같이 과감한 총수의 결정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본 그룹들이 올해는 유독 많았다. 총수가 수감 중인 SK그룹은 물론 재판을 진행 중인 CJ와 효성의 시선도 부러움으로 가득 찼다.
 
◇왼쪽부터 지난해 1월31일 선고공판을 위해 출석중인 최태원SK그룹 회장, 9월 12일 항소심 공판을 마친 후 구급차에 실려가는 이재현 CJ그룹 회장, 12월 3일 본사로 출근중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News1
 
가장 눈에 띄는 것은 SK그룹이다. 앞서 하이닉스 대박의 사례를 연출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지난해 1월31일 법정구속된 이후 4년 형기의 반환점을 한 달 정도 남겨두고 있다. 역대 재벌 총수로서는 최장기간 수감생활이다.
 
총수가 없으니 굵직굵직한 의사결정에 제약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최 회장 부재 이후 수펙스추구협의회라는 최고의사결정기구를 두고 있지만, 이 또한 한계가 적지 않다.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한 투자나 인수합병 등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의사결정이 부재하면서 현상유지에만 힘을 쏟게 됐다. 이는 실적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반도체 전성기를 되찾은 SK하이닉스의 선전 이외에 모든 계열사가 극도의 부진을 면치 못했다. SK이노베이션은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이 238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3%나 급감해 주력 계열사로서의 위상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고, SK텔레콤도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영향으로 지출을 줄인 것 외에는 한발짝도 전진하지 못했다.
 
그나마 실적이 좋은 SK하이닉스도 향후 신성장 동력으로 떠오른 시스템반도체 사업 등에서 대대적인 투자가 절실하지만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옥중의 최 회장이 가석방 요건인 형기 3분의 1을 넘기면서부터 안팎에서 보이지 않는 최 회장 구출작전이 시도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난해 보수 187억원 전액을 사회에 기부한 최 회장은 옥중에서 사회적기업 저서까지 펴내며 모범수로의 모습을 강하게 비쳤고, 그룹 차원에서는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에 적극 동참하며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았다. 황제면회로 힘들게 돌린 여론이 또 다시 싸늘해졌지만 특별사면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하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총수의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CJ그룹도 발을 동동 구르기는 마찬가지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횡령과 배임, 탈세 혐의로 지난해 7월 구속기소된 후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과 벌금 260억원을 선고받았다. 지난달 12일 2심에서도 징역 3년의 실형과 벌금 252억원을 선고받으며 집행유예의 희망이 꺾였다.
 
CJ그룹은 2500억원이 투입될 동부산관광단지 영상테마파크 사업을 지난 6월 포기했고, 이어 7월에는 인천 굴업도 관광단지 내 골프장 건설계획 또한 전면 백지화했다. 경기 광주에서 수도권택배허브터미널을 구축하겠다는 계획도 무기한 연기했다. 각각 3000억원이 넘는 투자계획이 서류 속에 갇혔다.
 
항소심에서 1년의 감형이 이뤄졌지만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이재현 회장은 신장이식 수술에 따른 후유증과 근육이 위축되는 선천병 샤르코마리투스병을 앓고 있어 수감생활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몇 차례 구속집행정지가 받아들여져 병원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누구도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
 
한화그룹은 그나마 가장 형편이 나은 편이다.
 
김승연 회장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파기환송심까지 가는 사투 끝에 지난 2월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이미 그룹의 인사에서부터 조직개편까지 대부분의 의사결정이 김 회장의 재가를 거쳐 이뤄지고 있다.
 
특히 연말에는 법원이 명령한 사회봉사 300시간까지 다 채우면서 삼성그룹으로부터 방위산업과 석유화학사업을 인수하는 2조원대 빅딜을 성사시키며 재계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최근에는 장교동 그룹 본사로 출근경영을 재개한 데다 이라크 건설현장까지 직접 다녀왔다.
 
그러나 한화그룹 역시 김 회장이 주주들에게 확실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표이사로의 복직을 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이사직 복귀를 위해서는 집행유예기간 5년을 채우고도 법정기한을 더 기다려야 한다.
 
공교롭게 세 명의 총수가 모두 사면을 절박하게 원하는 상황.
 
총수가 없다고 해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사회적으로 갈등이 예상되거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사업에 대해서는 이른바 책임을 지고 이끌 사람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총수가 전권을 행사하는 한국의 경영환경에서 이들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재계에서는 조심스럽게 연말이나 연초 특별사면을 기대하고 있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단 한 번의 특사도 단행하지 않은 점은 기대와 우려를 공존케 만든다. 물론 박 대통령이 보수를 정치적 기반으로 두고 있어 마냥 이들의 처지를 외면키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특히 경제가 극도로 침체된 상황이어서 재계의 도움은 필수적이기까지 하다. 새해 이들 3인의 운명이 어떻게 바뀔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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