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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문화 대통령’ 수식어, 족쇄 같은 느낌”
2014-10-20 17:50:13 2014-10-20 17:50:14
◇가수 서태지가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도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컴백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제공=서태지컴퍼니)
 
[뉴스토마토 정해욱기자] 오랜만에 가요계에 돌아온 가수 서태지가 컴백에 대한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놨다. 서태지는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컴백 기자회견을 열었다. 같은 날 발표된 서태지의 9집 정규 앨범 ‘콰이어트 나이트’(Quiet Night)엔 타이틀곡인 ‘크리스말로윈’(ChristMal.Win)과 선공개곡 ‘소격동’을 포함해 총 9곡이 실렸다.
 
서태지는 이번 앨범에 대해 “모든 이들이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지금 현재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가장 관심이 있는 음악”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다소 민감한 내용의 질문이 이어지기도 했지만, 서태지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솔직한 답변을 내놨다.
 
다음은 서태지와의 일문일답.
 
-오랜만에 나온 앨범을 두고 음악 색깔이 좀 더 대중적으로 변했다는 점에서 일부 팬들은 ‘변절자’라는 얘기를 하기도 하는데.
 
▲나는 변절자라는 얘기를 시나위 활동을 한 뒤 ‘난 알아요’를 발표할 때부터 들어왔다. 내 성격이 그렇다. 변하고 싶고, 변하는 걸 좋아한다. 이번엔 가정이 생기고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확실히 좀 더 여유가 많이 생겼고,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것이 음악에 고스란히 다 전달이 됐다. 9집은 내 딸도 들을 수 있는 음악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격동’과 ‘크리스말로윈’의 가사 내용을 두고 팬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사회비판적인 내용을 담으려 한 것이 맞나.
 
▲소격동은 내가 살았던 예쁜 마을인데 겨울에 눈이 오면 굉장히 운치가 있다. 삼청 공원을 매일 다녔었다. 그런데 어느날 시냇물이 다 말랐더라. 그때 충격을 받고 노래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1980년대에 실제로 내가 살던 집에서 바라보면 국군보안사령부가 보였다. 그땐 탱크도 지나다녔고, 검문 검색도 많았다. 그런 시대적 배경을 담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소격동’은 사실 약간 공포스러운 노래다. 내가 느꼈던 공포를 사운드에 많이 담았다. ‘크리스말로윈’도 ‘울면 안 돼’라는 캐롤에서 시작된 노래이지만, 선물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기한테 울지 말라고 하는 것도 제약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번 음반이 대중적으로 어느 정도 어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음반을 두고 토론을 많이 하는 분위기는 굉장히 좋아한다. 누구는 좋아할 수 있고, 누구는 싫어할 수 있다. 그렇게 시끄러운 분위기가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앞으로도 사람들이 토론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
 
-이번 앨범의 콘셉트가 동화인데.
 
▲그냥 예쁜 동화는 아니다. 예쁜 모습만 표현돼서 어린이들에게 들려지는 동화 중엔 사실 잔혹 동화가 많다. 이번 음반에 실린 곡들을 내 딸이 들으면 어떨까 생각을 했다. 스토리텔링이 일정 부분 연결이 돼 있다. 내가 어렸을 때의 이야기와 내가 아버지가 돼서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얘기하고, “세상은 그렇지 않아, 정신 차려”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또 “네 아빠가 옛날에 이랬던 사람인데 지금은 이렇단다”와 같은 이야기도 있다.
 
-지난 18일 열린 컴백 콘서트에서 스스로를 “한물 간 별 볼일 없는 가수”라고 표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나인티스 아이콘’이라는 노래를 소개하기 위한 다분히 연출적인 멘트이기도 했지만, 내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내가 음반을 만들 때마다 좌절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다. 나이도 많이 들다 보니 과연 음악을 90년대처럼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번 음반을 작업하면서 “아, 안 되는구나”와 같은 과정을 매일매일 겪었다. 그렇게 나온 음반이 이번 음반이다. 30대, 40대를 겪고, 팬들도 나이가 드는데 주류들이 나오면서 우리는 주변으로 밀려나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팬들에게 어느 정도 그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대신 우리에겐 더 소중한 추억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음원 성적이 예상보다 저조하다는 평가도 있다.
 
▲8집 때도 안 좋았다. 이번에도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아이유 덕분에 ‘소격동’도 롱런하고 있고, 생각보다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크리스말로윈’도 기대 이상이다. 음악은 성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들었을 때 좋은 음악, 나쁜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학교에 다닐 때도 성적표를 받고, 등급을 받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자퇴했다.
 
-아이유와의 작업은 어떻게 성사됐나.
 
▲나는 내가 보컬리스트라고 생각을 안 한다. 나를 표현하는 단어는 싱어송라이터(singer- song writer)라는 말 중 ‘라이터’(writer)란 말이고, 나는 프로듀서다. 지금까진 어쩌다 보니 내가 노래를 계속 불렀는데 내 노래를 다른 사람이 부르면 어떨까 예전부터 생각을 했다. ‘소격동’은 너무 예쁜 노래고, 남자보다 여자가 불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나가는 얘기로 아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진짜 하게 됐다. 아이유 덕을 너무 많이 봤다. 10대들에게 내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같다. 아이유는 보이스 컬러가 진짜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젊은 가수가 감성을 울릴 수 있는 보이스를 갖고 있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 기적이 ‘소격동’에도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아내도 아이유의 팬이고, 나보다 아이유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 녹음을 하면서 아내와 같이 식사도 했다.
 
-음악적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는지.
 
▲기본적으로 여행을 워낙 좋아해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겪은 기묘한 일들이 음악에 그대로 담겼다. 8집의 ‘모아이’도 여행을 떠나자는 테마였다. 그리고 이번엔 아이가 생기면서 내 2세에게서 강렬한 이미지를 받았다.
 
-앨범 발매를 앞두고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을 했다. 이제 신비주의는 벗어던지는 건가.
 
▲나를 두고 신비주의라고 많이들 말씀하시는데 사실 나 조차도 내가 정말 신비주의인가 매번 끊임 없이 고민한다. 예능 출연이나 여러 노출을 하지 않고 5년이란 시간을 지내서 그런 것 같다. 가수이기 때문에 음악을 발표하고, 공연하고, 방송하는 활동만으로 평가 받고 싶은 마음엔 변함이 없다. 마음 같아선 매년 음반을 내고 싶은데 내 작업 방식 때문에 안 된다. 신비주의란 말을 듣더라도 음악만으로 계속 나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다.
 
-‘문화 대통령’이란 수식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수식어가 붙은지는 꽤 오래 됐다. 예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언급을 처음 하시면서 그런 수식어가 생겼던 것 같다. 과분하고,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족쇄 같은 느낌도 있었다. 장기 집권을 하고 있는 건지, 이미 예전에 내려온 건지 모르겠지만, 약간 독재자 같은 느낌도 있다. 누가 빨리 그 수식어를 가져갔으면 좋겠다. 난 선배로서 그냥 편하게 지켜보고 음악을 했으면 좋겠다.
 
-데뷔 후 국내엔 없던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시도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를 두고 “해외의 음악을 국내에 들여왔을 뿐”이라며 ‘가요계의 문익점’이나 ‘수입업자’란 말로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정 부분 맞다고 생각한다. 내가 의도한 부분이기도 하다. 90년대 초엔 한국에 다양한 장르가 없었다. 외국의 음악 장르를 보면 팬들도 빨리 이런 걸 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최초의 수입업자라는 느낌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7집 때까지는 그런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관심도 많았다. 그런데 8집부터는 그런 쪽 작업은 많이 손을 놨다. 8집도 영향을 받은 해외 팀이 거의 없을 정도로 내 안에서 해결을 했고,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다.
 
-심심찮게 표절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는데.
 
▲표절 얘기가 사실 굉장히 오래된 얘기다. ‘교실 이데아’란 생소한 장르의 음악을 하면서 그런 얘기가 있었고, ‘컴백홈’ 때도 해외 가수의 창법을 따라했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실제로 그 가수의 음악을 좋아하고, 레퍼런스(참고)를 한 것은 사실이다. “표절이냐, 아니냐”라고 한다면 난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전엔 힙합 장르의 갱스터 랩은 이렇게 이렇게 진행이 되기 때문에 비슷하게 들릴 수 있다고 해명을 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해명이 오히려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음악을 많이 들어보면 “아, 이렇게 해서 파생이 되는 거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 그 과정을 다 말씀드리려면 하루 종일 강의를 해도 부족하다. 언제가는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음악을 많이 들으시고 판단해주셨으면 좋겠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가요계를 주도하는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데.
 
▲중심에 있는 것이 맞나.(웃음) 중심은 아닐 수도 있지만, 내 음악을 오랫동안 믿고 찾아주시는 팬들이 좋은 평가를 내리기도 하고, 나의 오래된 안티팬들이 안 좋은 평가를 하기도 한다. 팬과 안티팬의 콜라보레이션이 굉장히 재밌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기 의견을 막 얘기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내 음악을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 특히 이번 공백기 동안엔 이러저런 일들로 내가 안티팬들에게 떡밥을 많이 던졌다. 진수성찬을 차렸다. 중요한 것은 음악이고, 나머지는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가십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팬과 안티팬의 콜라보레이션이 지속됐으면 좋겠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함께 활동했던 양현석이 YG엔터테인먼트의 대표로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양현석의 성공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양군’이 성공한 부분에 대해선 뿌듯하기도 하고 너무 기쁜 마음이다. 예전에 같이 활동했던 동료들이 다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90년대의 서태지와 지금의 서태지 사이에 차이점이 있나.
 
▲나는 서태지의 시대는 90년대에 끝났다고 생각한다. 그건 명백한 사실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내가 마니악한 음악을 했다. 대중적인 음악이 아니라서 대중들을 많이 버리게 된 셈이다. 물론 대중들에게 미안하다. 내 시대가 끝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거부하거나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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