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공연+)즐거운 복희가 되고 싶어요!
2014-09-04 08:21:26 2014-09-04 08:28:15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100세 시대’라는 말, 요즘 많이 들으시죠? 연극계에도 바야흐로 100세 시대가 도래한 듯합니다. 선생님 대접만 받아도 충분히 명예로울 노장 연극인들이 활발한 활동을 통해 인생 2막을 열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들 중 특별히 주목할 만한 이가 있습니다. 바로 ‘영원한 알레고리의 작가’ 이강백입니다. <봄날>, <북어대가리>, <황색여관>, <파수꾼> 등 화려한 작품 리스트를 자랑하는 67세의 이 작가는 올해만 벌써 신작을 두 편째 올리고 있습니다. 올해 말에 또 한 편이 무대에 오를 예정이니 웬만한 중진보다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셈인데요. 배우와 연출가 외에 순수하게 작가로서 이분처럼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은 좀처럼 보기 힘듭니다.
 
현재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오르고 있는 연극 <즐거운 복희>가 바로 이강백 작가의 신작입니다. 이 작가와 콤비를 이뤄 무대 작업에 한창인 연출가는 바로 극단 백수광부를 이끄는 중진 연출가 이성열인데요. 두 사람의 협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09년 연극 <봄날>로 만나 찰떡 궁합을 자랑한 이들은 그 해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연극 베스트3’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기도 했죠. 치밀한 해석이 장점인 이성열 연출가가 우화성과 사실주의적 성향을 두루 갖춘 이강백 작가의 작품을 이번에는 어떻게 풀어냈는지, 한번 들여다 볼까요?
 
 
◇늘 슬픔에 잠겨있어야 하는, 즐거운 복희
 
연극 <즐거운 복희>를 보다보면 자연스레 ‘부동산 공화국’인 우리나라의 현실이 떠오릅니다. 무대배경은 커다란 호수를 둘러싼 펜션마을, 등장인물들은 여기 펜션을 분양 받은 사람들입니다. 펜션비용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누구든 펜션지기가 될 수 있지요. 그래서 직업군이 참 다양합니다. 장군의 딸, 수학선생, 화가, 대필작가, 전직 레스토랑 사장, 건달 등. 아 참, 조금은 뜬금 없지만 백작도 등장합니다. 이처럼 작가는 사실적이면서도 동시에 우화적인 인물들을 내세우는데요. 알레고리의 힘을 빌리되 사실성을 놓치지 않음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조목조목 짚어내려는 의도로 읽힙니다.
 
 
펜션을 분양받은 퇴역장군이 죽었다는 사실로부터 극은 시작됩니다. 장군의 유언장에는 외동딸 복희를 부탁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고 하는군요. 주변 펜션을 분양 받은 사람들은 장군의 유언을 지킬 것을 약속하고 장군의 묘소를 펜션단지 내로 정하며 장군의 장례식을 주도하죠. 덕분에 이제 막 신설된 펜션은 별다른 홍보 없이도 조문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차게 됩니다.
 
주변 펜션 주인들이 이렇게 영업수완을 내니 복희는 별다른 고민 없이 평생 아버지를 애도하며 부를 함께 누려도 될 법한데요. 이렇게 된다면 연극이 더 진행되지 않겠지요. 역시나 그놈의 사랑이 문제입니다. 펜션지기들이 고객들을 위해 마케팅 차원에서 고용한 나팔수가 나팔만 잘 부는 게 아니고 배우 뺨치게 잘 생긴 모양입니다. 뭐, 아쉽게도 나팔수는 극에 등장하지 않습니다만, 어쨌든. 애통한 모습으로 조문객의 감수성을 자극해야 할 복희는 그만 사랑에 빠져 자꾸만 즐거워집니다. 나팔수의 음악만 들리면 어깨도 들썩들썩 올라가고, 발걸음도 절로 가벼워지는 걸 복희인들 어쩌겠어요.
 
그러나 이곳 펜션에서는 복희의 일탈이 용납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돈의 논리에 따라 결정되는 곳이니까요. 이곳 사람들은 조문객들에게는 오랫동안 머물며 돈을 쓰게 하기 위해 저녁에는 유흥을 제공하면서도, 사랑의 즐거움에 빠진 복희에게는 계속해서 슬픈 표정만을 강요합니다.
 
그런데 꽤나 화려해야 할 펜션을 무대로 옮기면서 연출가는 별 다른 무대장치 없이 계속해서 텅 빔을 강조합니다. 남산예술센터의 원형 무대는 극중 상황과 배우들의 동선에 따라 호수가 되거나 펜션이 되는데요. 떠들썩한 일들이 벌어지는 가운데에서 무대는 대체로 정돈되어 있고, 또 고요합니다. 이처럼 무대가 이곳 펜션 사람들의 욕망, 나아가 우리 사회의 세속적인 욕망을 비추는 하나의 커다란 거울 역할을 그저 묵묵히 수행하게 함으로써 극장은 관객들의 거대한 사색장소가 됩니다.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는 인간을 만든다’
 
극을 보다보면 복희가 이 냉혹한 자본의 논리를 벗어나 그냥 행복하게 살면 안될까 하는 바람이 저절로 생깁니다. 그런데 작가는 시선은 냉정하네요. 그마저도 쉽고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작품을 통해 계속 설파하니까요. 나팔수와 복희는 펜션지기들을 피해 함께 탈출을 감행하지만 실패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사랑은 파국까지 맞습니다.
 
 
이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이 이들의 파국을 의도했느냐 아니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극중 대필작가의 대사처럼 이미 여기 이곳의 세계는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는 인간을 만드는’ 매커니즘 아래 저절로 작동하고 있으니까요. 결론적으로 돈벌이에 유용한 복희는 살아남고, 돈의 논리를 위협하는 나팔수는 호수에 빠져 익사하면서 자본주의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파국에 파국을 거듭하며 이야기는 계속 전개되지만 이들의 사랑은 끝끝내 자본주의라는 제목의 ‘이야기’ 속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젊은 남녀의 사랑은 호숫가의 전설로 남아 자본가의 이익에 계속해서 기여하지요. 이곳에 절망한 복희의 마지막 선택마저도 아쉽게도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복희는 죽고 나서도 그림이 되어 계속해서 팔려나갑니다. 나팔수와 복희의 이야기를 그저 자본주의에 희생 당한 젊은 남녀의 이야기에 그치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본주의라는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야기의 재료로 희생 당할 인간을 찾아나설 테니까요. <즐거운 복희>를 통해 작가와 연출가는 폭주하는 자본주의 이야기를 멈추게 하려는 나와 내 주변만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함께 각성해야 한다고 종용하는 듯합니다. 
 
- 공연명 : <즐거운 복희>
- 시간 : 2014년 8월26일~9월21일
-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 작 : 이강백
- 연출 : 이성열
- 제작 : 남산예술센터, 극단 백수광부
- 출연진 : 이인철, 이호성, 강일, 유병훈, 박완규, 박혁민, 전수지
- 티켓가격 : 전석 2만5000원, 학생 1만8000원
- 문의 : 02-758-2150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