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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검찰 강제구인 강공에 뚫린 방탄국회
2014-08-21 19:52:40 2014-08-21 19:57:00
애초부터 칼자루는 검찰이 쥐고 있었다. 지난 19일 저녁 검찰은 '철도비리'와 '입법로비'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른 여야 현직 의원 4명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회기가 끝나면서 앞서 구속영장이 청구된 조현룡 새누리당 의원은 자연히 영장실질심사를 받게됐다.
 
"충분한 수사가 이뤄졌으므로 국회일정과 무관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구속영장을 청구하게 됐다"며 일반론을 폈지만, '조현룡 체포동의안 표결 불발'이라는 선행학습에 단단히 별렀다가 화살을 날린 셈이다. 검찰은 앞서서도 "회기가 끝나면…"이라며 여러번 일괄적인 영장청구를 예고했다.
 
예상됐던 사안이지만 여야는 크게 당황했다. 구속영장 청구 대상 대부분이 각 당의 중진인데다가 세월호 특별법을 두고 진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튀어 나온, 여간 성가신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는 세월호 특별법 재합의안이 극적 타결됐다가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대표들의 반대로 어그러진 상황이었다. 유가족과 충분한 합의 없이 진행된 터라 역시 예고된 결론이었다. 특별법 협상 전면에 선 이완구, 박영선 양당 원내대표는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으리라.
 
새정치민주연합이 먼저 움직였다. 회기 종료시기인 19일 자정에 임박해 서둘러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제출했다. 1분 전에 요구는 받아들여졌다. '방탄국회'라는 비판이 쏟아질게 뻔했지만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7.30재보선 패배로 기세가 크게 꺾인 상황에 중진 의원들 무더기 구속이라니. 정면돌파 뿐이었다. 덕분에 손 안대고 코를 푼 새누리당은 짐짓 점잖은 자세로 새정치민주연합을 꾸짖었다.
 
당이 판을 벌였으니 남은 것은 의원들 당사자 몫이었다. 가히 'Art'라고 할 만큼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하루를 공으로 까먹고 이틀만 버티면 됐다. 아니 법원이 영장실질심사 기일을 정해야 하니 사실상 하루만 남은 셈이었다. 회기가 열리면 불체포특권이 발생한다. 그 다음은 추석연휴, 국정감사다. 잘만 버티면 연말까지도 가능하다. 하루만 버티면.
 
아니나 다를까 21일 영장실질심사 당일 '피의자' 신분의 의원 5명은 일제히 영장심사기일 연장을 신청했다. 사실상 불출석 통보였다. 검찰이 하루 전 '강제구인' 가능성을 내비치며 경고했지만 무시했다. 국회의원에 대한 강제구인 전례는 2003년 운도 지지리도 없던 김방림 당시 민주당 의원 정도가 유일하다. 가능하겠느냐는 계산이 나왔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은 오전 6시부터 검사 3명과 수사관 40명을 국회로 보내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박상은 의원은 인천지검 담당이니 의원 1명당 대략 검사 1명에 수사관 10명씩 배당한 셈이다. 검찰로서는 승부수였다. 안 그래도 '재력가 뒷돈 검사'니 '음란 지검장'이니 뒤통수가 따가운 터였다.
 
오전 10시를 전후해 검찰이 국회로 들어갔다. 이 때부터 의원들과 검찰간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의원실에서 버텼고, 같은당 신계륜·김재윤 의원은 국회 내 어디론가 숨었다. 조현룡,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신학용 의원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는 "이것은 수사가 아니다. 망신주지 말라"며 검찰을 을러대다가 결국 출석키로 하면서 강제구인만은 면했다. 나머지 의원들도 차례로 출석하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박상은 의원이 자신이 쓰던 휴대전화를 지인에게 맡기고 도주하자 검찰은 "도피조력자를 엄단하겠다"고 경고했다. 유병언 추적상황과 묘하게 오버랩 됐다. 그는 바로 출석하겠다고 검찰에 알려왔다.
 
5명 의원 모두 불과 몇시간 만에 험한 모습만 국민들에게 보인 채 법원에 나와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있다. 검찰의 강제구인 강공에 방탄국회가 여지없이 깨진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의원들이 괜한 짓을 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구속영장 발부 사유인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를 몸소 보여줬기 때문이다. 자승자박이다.
 
검찰이 승기를 잡자 당도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태가 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야당탄압 수사"라며 검찰을 비판했지만 메아리에 그쳤다. 새누리당은 아예 이렇다 할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검찰의 완승이다.
 
국회의원은 입법자다. 때문에 법을 판단하고 집행하는 사법부와 동등한 위치다. 국민들이 그들에게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해 국회로 보낸 것은 법을 입맛대로 이용하라는 게 아니라 제대로 만들라는 명령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법적 절차를 무시하면서 이들은 그 기본을 망각했다. 여야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날 판사 앞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있는 의원들은 조현룡 의원을 빼고는 2~3선의 중진급 의원들이다. 구속영장이 청구되기 전 이들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이 없는 흠을 만들어 괴롭힌다"며 저마다 여론전을 폈다. 그러나 억울하다면 '링' 위에 올라서 붙어보면 될 일이다. 일국의 2, 3선 의원들이 그만한 배짱 하나 없다면 창피한 일이다. 구속여부는 차치하더라도 5인의 의원들, 오늘 여러모로 모양이 빠졌다.
 
최기철 정치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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