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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脫디지털' 체험기)①이어폰 없이 살기..귀막고 행복하신가요?
2014-07-15 13:12:17 2014-07-15 13:16:48
[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현대인을 지배하는 각종 정보기술(IT) 기기들. 인간의 생활을 좀 더 편하게 하기 위해 개발된 제품들이지만 오히려 우리 생활에 족쇄를 채우는 측면도 있다. 하루 24시간 매순간마다 우리 삶을 옭아매서, '디지털 공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IT기기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져, '디지털 치매'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과연 이 수많은 IT기기가 없었을 때는 어떻게 살았던 걸까. 이런 기기들이 없다면 문명적 생활은 불가능한 걸까? 기자 2명이 일주일동안 이어폰, 내비게이션, 디지털카메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블루투스 오디오, 컴퓨터, 스마트폰 없이 생활해봤다. 그 결과는? (편집자)
 
일주일 동안 이어폰과 헤드폰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다소 힘든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워낙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곧장 생각을 바꿨습니다. 
 
이어폰은 IT기기 중에서도 변두리 제품입니다. 즉, 이어폰 자체로는 아무것도 못하고 다른 무언가를 사용하기 위한 도구여서, 이어폰 없이 지낸다고 해도 생활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특히 이어폰 없이 지내는 게 고작 일주일 뿐인 데다 '음악이야 잠깐 안들으면 그만이지'라고 대수롭지않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일주일을 살아 본 결과, 이어폰 없이도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는 없지만 삶의 즐거움은 반토막 났습니다. 양념 되지 않은 불고기를 먹는 느낌이랄까…. 
    
 
◇기자실에서 일하고 있는 기자들 모습.(사진=뉴스토마토)
 
기자들은 일반적으로 소속 회사가 아니라 출입처로 출근합니다. 출입처에는 기자실이 마련돼 있는데 흡사 독서실을 연상케합니다. 기자들이 일하는 환경을 예상해보라고 하면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려지듯, 엄청난 소음 속에 분주히 전화를 하고, 폭탄 맞은 것처럼 정신 없이 돌아가는 모습이 떠오를테지만, 현실은…, 그냥 '차분'합니다. 아마 제가 몸담고 있는 분야가 경제 쪽이라서 사회부처럼 다이나믹하지 않은 면도 있을겁니다. 경제쪽 기자실은 시끄러운 일이 별로 없습니다. 
 
기자실에서는 취재 아이템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밖에 나가서 전화를 하는 경우가 많고, 기사를 써야하다보니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말하는 게 서로에 대한 예의입니다. 특히, 각종 메신저를 통해 소통하기 때문에 정적 속에서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기자실을 지배합니다.
 
이런 환경은 무언가에 집중하기 좋지요. 반대로 정신을 놓고 멍해지기 쉬운 조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보통 아침에 잠이 덜 깬 상태라거나 점심 후 졸음이 몰려 올 때는 신나는 음악으로 분위기 반전을 꾀해 왔습니다.
 
비트 강한 음악을 듣다보면 축쳐진 느낌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정신이 깨어나는 느낌이 들죠. 그래서 이번 일주일(6~12일)은 너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업무 강도는 평소와 비슷했음에도 피로도는 세 배 이상으로 느껴졌습니다. 평소 담배를 피우는 것도 아니고, 음악을 대신해 분위기를 쇄신할만한 방법을 찾지 못해 무척 길게 느껴지는 한 주였습니다.
 
◇캠코더로 찍은 영상에 소리가 제대로 들어갔는지 이어폰 없이 확인하고 있다.
 
이런 개인적 필요뿐만 아니라, 제게 이어폰은 업무적으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뉴스토마토는 단순한 텍스트 보다 '멀티미디어뉴스' 제작에 치중합니다. 취재와 기사작성부터 녹음·촬영·편집까지 기자 1명이 다 합니다.
 
지난 10일이었죠. 법정관리 위기에 몰린 팬택이 이동통신사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후배와 함께 현장을 커버했습니다. 이 내용을 기반으로 리포트를 제작해야 했는데요,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카메라에 음성이 잘 잡혔는지 확인하려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가, 스스로 당황에 바로 꺼야했습니다. 집중력을 총 동원해서 다급히 기사를 쓰고 있는 다른 기자들에게 소음공해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결국 영상에 문제가 없는지는 한 시간 후인 점심 시간이 돼서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날 리포트는 후배 기자가 만들었기 때문에 더 이상 업무상 불편한 점은 없었지만, 만약 제가 리포트를 만들었다면 주변에 사람 없는 곳을 물색해 영상과 목소리가 잘 맞는지 들어가면서 편집해야했을겁니다. 상상만해도 이보다 더 불편할 수는 없네요.
 
◇평소 취미생활로 배우는 디제잉 수업에 필요한 헤드폰과 노트북, 트랙터. 이 중 한가지라도 없으면 온전한 디제잉을 할 수 없다.
 
이어폰 없는 생활은 취미생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기자생활 6년차에 접어들면서 업무의 특성상 사람이 다소 냉소적으로 변하고 있구나, 감정보다는 사실여부에만 초점을 맞추는구나 싶었습니다. 일할 때는 주로 좌뇌를 사용하니까, 취미생활로는 우뇌를 발달시켜보자라는 취지로 지난달부터 디제잉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주중에는 바쁘다보니 토요일에 수업을 듣습니다. 일주일 중 2시간 수업 듣는다고 하루 아침에 디제잉을 잘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왕초보인 저는 시간나는대로 틈틈이 연습해야 그나마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잊지 않고 따라갈 수 있습니다 .
 
디제잉을 배우기 위해서는 트렉터라는 디제잉 기기와 노트북, 그리고 헤드폰이 필요합니다.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헤드폰 때문에 저는 이번주 내내 디제잉 연습을 하지 못했습니다. 안그래도 열등생인데 다음주부터는 열심히 연습해야겠습니다.
 
◇주말을 맞아 강아지와 산책하고 있는 모습.
 
저희 집에는 강아지가 한 마리 있습니다. 유기견 센터에 있던 강아지인데 모낭충이 심해 피부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잠시 집에서 임시 보호 중입니다.
 
제가 하루 종일 집을 비우다시피 하는 탓에 새벽이든 야밤이든 가리지 않고 시간 날 때마다 산책을 시켜줍니다. 코스를 돌면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멍하니 걷기만 하면 시간이 아까우니 이 시간 동안 '굿모닝 팝스'를 다운로드 받아 듣습니다.
 
나름 영문과를 나왔지만 막상 일을 할 때는 영어를 쓸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다 사회생활 6년차에 처음으로 해외출장을 나갔는데 '내 영어는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래서 강아지와 산책하는 이런 틈새 시간에 영어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겁니다. 강아지와 놀아주는 동시에 영어 공부도 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인거죠. 하지만 이어폰 없이 살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에는 산책할 때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참으로 적적했습니다. 따분하게 느껴져서 시계를 확인하는 경우가 많았지요.
 
이어폰 없는 산책 이틀째에 접어들자 주변에 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동네에 이런 게 있었구나', '여름인데 왜 코스모스가 피지?', '운동하는 사람이 참 많구나'….
 
산책을 하다보면 저처럼 강아지와 함께 걷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어폰을 꽂고 걸을 땐 아무도 저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주일 동안에는 "강아지 몇살이에요?", "무슨 종이에요?" 등의 질문이 이어졌고, 급기야 "이 근처에 사시나봐요" 등 개인적인 질문까지 받았습니다.
 
이어폰이라는 게 '나 지금 다른 일하고 있으니까 말 걸지마'라는 무언의 경고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보통 자동차에 이렇게 스마트폰을 세팅해놓지만 이번 프로젝트 기간 중에는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고 스피커폰으로만 통화했다.
 
이번주에는 동선상의 문제로 업무 중 유독 운전할 일이 많았습니다. 대중교통과 달리 저 혼자 있는 차 안에서는 음악이나 라디오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 동안 공공장소에서 음악을 듣지 못한 한을 풀기라도 하는 듯 볼륨을 있는대로 키워서 따라 부르며 몸을 들썩였습니다.
 
차 안에서 만큼은 이어폰 제약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을 만끽했습니다. 운전 시작한 지 5분도 안돼서 이게 오산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요. 운전 중에는 웬만하면 스마트폰을 만지지 않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죠. 특히 연락망이 중요한 이 직업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운전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다 적발될 경우 승용차 6만원, 승합자 7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됩니다. 15점의 벌점도 덤으로 따라옵니다. 그 무엇보다 운전 중 통화는 나 뿐 아니라 생면 부지의 운전자나 보행자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개인적으로 절대 하지 않는 행동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운전할 때는 통화가 가능한 이어폰을 장착해서 사용합니다. 스마트폰에서 '스피커폰 모드'로 설정한 후 통화할 수도 있지만, 이럴 경우 잘 들리지 않아 필히 한 손에 폰을 쥐고 운전을 하게 됩니다. 또 잘못 눌려서 꺼지거나 원하지 않은 기능이 실행될 때도 많지요.
 
이번 일주일 동안은 어쩔 수 없이 스피커폰을 이용했습니다. 운전하면서 심적으로 불안하니까 코너링이 거칠어지고 브레이크 패달도 급히 밟게 되더군요. 급기야 전화를 받자마자 "나중에 전화 드릴게요"라고 바로 끊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어폰과 헤드폰의 사용 범위는 음악 듣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넓다.
 
이렇게 이어폰·헤드폰 없는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이어폰 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음악을 못듣겠구나'라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일주일을 보내다보니 생각보다 이어폰의 사용 범위가 넓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어폰은 특히 길을 걸을 때 애용하는 아이템입니다. 걸으면서 책을 읽는다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기에는 주변에 위험한 요소가 많기 때문에 간단하게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는거죠. 이렇게 하면 단순 도보의 무료함을 달래줄 뿐더러 눈에 보이는 광경을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이어폰이 없이 길을 걸었던 지난 일주일 동안 음악 대신 우리가 살아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주차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는 운전자와 가게 주인의 말다툼, 남자친구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여대생의 전화통화, 세상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아이가 엄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앙증맞은 질문까지 말이죠.
 
이렇게 귀에서 이어폰을 뺐더니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수시로 무언가를 들으며 무심코 지나쳤던 이 곳에 사람이 있고 풀과 꽃이 있었습니다 .이어폰 본연의 목적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 것이라고 하지만, 거꾸로 주변과의 단절을 야기하는구나…. 귀를 열어놓은 지난 일주일간 새삼 깨달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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