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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무수혈 수술' 환자요구 따르다가 사망.."의사책임 없어"
2014-06-26 13:40:31 2014-06-26 16:41:53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종교적 신념에 따라 '무수혈' 수술을 해달라는 환자의 요구를 따르다가 환자를 사망케 한 경우, 의사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따른 것이므로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환자의 생명과 자기결정권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의사로서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첫 대법원 판결이어서 주목된다.
 
대법원 2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26일 수술 중 응급상황에서 수혈하지 않아 환자를 사망케 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로 기소된 대학병원 외과의사 이모씨(57)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한 가장 본질적인 권리이므로 특정한 치료방법을 거부하는 것이 자살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그로 인해 침해될 제3자의 이익이 없다면 자기결정권에 의한 환자의 의사도 존중되어야 한다"며 "의사 역시 이를 고려해 진료행위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환자의 명시적인 수혈거부 의사를 전제로 수술하는 과정에서 수혈이 필요한 응급상태에 이르게 된 경우 환자의 생명 보존을 위해 수혈을 고려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환자의 생명보호에 못지않게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대당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되는 때에는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환자의 생명과 자기결정권의 가치가 대등한지 여부를 평가할 때의 고려사항으로 ▲환자의 나이 ▲지적능력 ▲가족관계 ▲자기결정권 행사배경(종교와 신념) ▲자살목적 여부 ▲제3자의 이익 침해여부 등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다만 환자의 생명과 자기결정권을 비교형량하기 어려울 경우에 의사가 자신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환자의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가치 중 어느 하나를 존중하는 방향을 선택했다면 그 행위는 처벌할 수 없다"며 "같은 취지로 판결한 원심은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이씨는 우측고관절을 인공고관절로 바꿔야 하는 환자(여·사망당시 62)를 수술하게 됐는데, 이 환자는 ‘무수혈’ 수술을 간절히 원했다. 여호와증인 신도인 환자는 다른 사람의 피를 받지 말라는 교리를 생명보다 소중히 여기는 신념 때문이었다.
 
이씨는 무수혈 수술을 하면 수술 중 사망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환자와 가족들에게도 설명했다. 가족들은 수혈을 요구했으나 환자가 끝까지 무수혈 수술을 고집하자 이씨는 환자의 결심을 확인한 책임면제각서를 받은 뒤 무수혈 수술을 실시했다.
 
그러나 수술 중 과다출혈로 응급상태에 빠졌고, 이씨는 환자 가족들에게 다시 수혈을 할지 여부를 물었으나 수혈을 원하는 가족들과 여호와증인 신도인 환자의 남편간의 의견이 대립되면서 수술이 중단됐다.
 
이후 이씨는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상태가 악화되어 다량 실혈로 인한 폐부종으로 사망했고 이씨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대법원 조형물 '정의의 여신상'(사진=뉴스토마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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