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채민준 SPOTV 캐스터 "축구부터 게임까지, 모두 열심히 잘 할게요"
입력 : 2014-05-03 15:02:40 수정 : 2014-05-03 15:06:40
[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축구를 비롯한 여러가지 스포츠 분야의 젊고 유능한 아나운서로 이름을 널리 떨치던 채민준 캐스터가 게임 중계에도 빠르게 정착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이제 3개월이 지난 짧은 시점이지만 시장에서는 매우 반응이 뜨겁다.
 
'스포츠 매니아'이자 'E스포츠 키드'였기에 가능했지만, 그 이면에는 항상 성실하며 꽤 많은 노력을 하는 채민준 캐스터의 고뇌와 힘찬 열정이 함께 했다. 
 
<뉴스토마토>는 최근 채 캐스터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긴 시간 들었다. 신생채널의 스포츠 캐스터로서, 스포츠가 아닌 E스포츠로 다시 도전하는 도전자로서, 지난 4년간 그의 이야기는 듣고 생각할 점이 적잖았다. 
 
◇채민준 SPOTV 캐스터. (사진=이준혁 기자)
 
◇"농구로 시작해서 축구에 게임까지, 스포츠와 e스포츠가 모조리 내 일"
 
-SPOTV가 지금은 채널도 많고 사람도 많지만 조직 규모가 작았을 시절 입사한 것으로 안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했을 것 같다.
 
▲처음에는 중계보다는 스포츠뉴스 제작으로 더욱 방점을 뒀다. 그런데 사람이 많지 않으니 PD 한 명과 함께 PD 역할도 하며 더빙과 영상 업로드는 물론 그래픽 제작 업무도 다 했다. 쉽지 않았지만 뒤돌아보면 재미있는 좋은 추억이었다.
 
-현장 중계는 언제 처음 나갔나. 신입 시절 아무래도 어려운 점은 없었나.
 
▲2011년 11월 농구 중계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이다. 선배도 없어 아카데미(사설학원)에서 배웠던 수준 그대로였다. 처음에는 타사 방송을 보며 기존 선배가 하는 방송을 그대로 따라하기 바빴다.
 
생각만 해도 머릿속이 바로 하얗게 되는 에피소드도 있다. '부산 KT'의 중계인데 방송 중에 '부산 롯데'라고 해버린 것이다. 그래도 생중계다보니 곧바로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중계했어야만 했는데, 정말로 쥐구멍을 찾고팠던 때였다.
 
-당연히 무척 많이 혼났을 것 같다. 혹시 E스포츠에서는 그런 실수는 없었나.
 
▲혼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부끄러워서 혼났다. 그런데 아무 반응이 없다는 것이 속상했다. 채널 인지도가 거의 없을 시점이었는데 당시 아무 움직임도 없던 것을 보며 '내가 잘 해서 SPOTV에 시청자들을 많이 끌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E스포츠는 4년차인 올해부터 했고, 원래 E스포츠에 대해 좋아하기도 해서 그래도 기본지식이 있기에 수월했다. 다만 스포츠 중계 때 다소 무겁게 하곤 했다면 E스포츠에서는 상당히 편하게 하려는 중이다. 
 
-그동안 중계해본 종목은 어떤 것이 있나. E스포츠 중계는 어떻게 하게 됐나.
 
▲회사(SPOTV)에서 시키면 뭐든 다 했다. 2011~2012 잉글랜드 FA컵 축구 중계를 시작으로 농구 중계도 했고, 2012년엔 K리그 중계를 경험했다. 이후 NBA, UFC, 테니스, 유도, 승마 등을 했고 SPOTV게임즈 개국 이후로는 게임 중계도 하고 있다.
 
게임 채널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원래 게임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일하는 SPOTV에서 게임채널을 런칭하고 인력을 구한다니 상당히 신기했다. 물론 대놓고 '내가 하고 싶어요'라고 앞장서 말하지는 못했다. 
 
회사에서는 내게 게임중계를 맡기고픈 생각이 있던 듯 했다. 채널 런칭 초기 계속 '게임 좋아하지 않냐'고 물어봤고 '관상이 게임이야'라는 말까지 들었다.
 
덥썩 물면 시쳇말로 '모양 빠지고', 그렇다고 해서 정색하며 못 한다고 말하면 안 되니 '시켜만 주세요'라고 했다. 결국 투입 2~3주전 말을 듣고 엄청나게 피나게 준비했다. 내가 아무리 게임을 즐기고 잘 알아도 중계는 다르다. 준비할 것이 많다.
 
-게임은 언제부터 즐겼나. E스포츠의 중계가 마치 채 캐스터 체질인 것 같다.
 
▲1997년 스타크래프트1이 출시된 상황에서 1998년부터 게임했다. 게임 때문에 엄청 혼나곤 했다. 아주 옛날 8비트 게임기는 집에서 즐겼는데, 이후 플레이스테이션 등의 진화된 게임기는 사주시지 않았다. 
 
어린 시절 '경남아파트 환타지아 오락실'이란 곳에서 학교에 다니는 시간 이외의 시간을 모두 바친 것 같다. 50원 시절부터 게임했던 나의 어린시절 수많은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다. 인터뷰 마친 후 대전 가는데, 오늘도 거기 가려고 하던 차다. (웃음)
 
-E스포츠 말고 스포츠는 단연 축구인가. 혹시 방송계 진입 전에는 어땠나.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하는 것을 좋아했다. 오해할 수 있으니 말을 하면 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웃음) 이후 대학교 입학 후에도 학과 축구동아리 'FC TGR'에서 활약했다. 학점도 나쁘고 전공도 살리지 못했지만 사람들과 친근하게 지냈던 계기다.
 
격투기는 요즘 시쳇말로 '덕후'처럼 좋아했던 것은 아니지만 좋아했다. 좋아하긴 했는데 중계가 신기했다. 야구는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대전 사람으로서 지역 팀이 수년째 하위권에 머물러 아쉬운 점은 있다.
 
-혹시 'TGR'이 무슨 뜻인가.
 
▲(폭소하며) '떼구르'의 이니셜이다. 축구 하면 떼구르 구르는 것에서 따왔다. 주말인 내일(인터뷰는 금요일에 진행됐다)도 홈커밍데이에 참석하고 이후 결혼식 사회도 본다. 대학 시절 TGR을 빼면 남는 것이 많지 않다. (웃음)
 
 
◇채민준 SPOTV 캐스터. (사진=이준혁 기자)
 
◇'공학도에서 아나운서로' 주위의 우려와 걱정에 오기를 갖고 열심히 했다
 
-아나운서를 하겠다고 스스로 결심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고등학교를 다닐 시절 선생님께서 '목소리가 명랑한 느낌이 있으니 아나운서 하면 잘 할 것"이란 지나가는 식의 이야기를 하셨다. 이후 장래희망의 하나로서 아나운서가 항상 자리잡다가 군복무 시절 '내가 진짜로 하고픈 것이 무엇인가'에 많은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정했다.
 
-그런데 '언론정보'나 '신문방송'의 이름이 붙은 전공이 아닌 공대로 갔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썩 잘하지는 못했다. 뺀질댔지만 반에서 10등 안에 겨우 드는 수준을 유지했고, 학교가 특목고나 유서깊은 명문고는 아니지만 그래도 충대(충남대)는 곧잘 가곤 했다.
 
수능을 잘본 것도 아니고 아버지께서 사업을 하시고 막내삼촌이 돕는데 막내삼촌이 '쇠를 만지는 사람은 평생 굶어죽을 일은 없다'라고 하셔서 일단 고등학교 시절 자연계를 택했고 이후 공대로 갔다. 사업을 물려받겠다거나 아나운서 진입이 어려워서 궁여지책으로서 공대를 가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게다가 집과 가까운 국립대(충남대) 붙고 장학금도 받게 됐다. 재학 4년내내 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끌리는 조건이다. 결국 충남대 기계설계메카트로닉스공학부 입학을 택했다.
 
-대학 시절은 어땠나. 전공 그대로 진로를 택할 고민은 없었나.
 
▲대학생활은 정말로 즐겁게 보냈다. 평생 함께할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렇지만 학문은 나와 맞지 않았다. 전공의 A+ 받았던 과목이 점수 잘 주는 것으로 유명한 과목 두 개가 전부고, 나머지 대부분은 B 이하였다. 학점은 교양에서 땡겨와 가까스레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었다.
 
-민감한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가업을 물려받으라는 압박도 없지 않았을 것 같다.
 
▲오해가 있을 듯 해서 말하면 부친 사업체 규모가 크지는 않다. 대전 내에서 직원 몇 명 두고 하시는 소기업이다. '중소기업'도 아니고 '소기업'이다.
 
하지만 주위에선 '경쟁률 센 아나운서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뒤에 믿는 구석이 있으니 했던 것은 아니냐'라는 비아냥도 나왔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아도 귀가 있는데 안다.
 
아나운서를 하고자 했을 때 집안 반대가 없지 않을 듯 싶어 처음 말할 때는 '시도해보고 돌아와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 시도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부친께서는 '그런 생각으로 준비할거면 준비하지 말라'고 하셨다.
 
물론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으셨다. 연예인 하겠다는 것으로 알고 신경도 안 쓰셨고 '정신차리라'는 얘기도 들었다. 아나운서 아카데미 다니면서 교육받는 것도 탐탁치 않아하셨고 등록도 겨우 해주셨다. 처음에는 그러셨다.
 
그때 진짜 '되돌아올 다리를 불사르고' 준비했다. 주위의 우려와 걱정에 오기를 갖고 열심히 했다. 다행히도 하늘이 도우면서, 운이 꽤 좋아 지금과 같은 순간이 있는 것 같다.
 
◇채민준 SPOTV 캐스터. (사진=이준혁 기자)
 
◇"정말로 하고 싶다면 도전해라.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
 
-그래도 이제는 TV도 꽤 빈번하게 출연하고 있으니 지금은 부모님께 자랑스런 장남일 것 같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대전 본가의 아침 TV는 언제나 SPOTV를 시작으로 돌아간다. 부친께서 출근하기 전 SPOTV 계열의 TV를 순서대로 돌려본다. 해외 경기 중계를 많이 하다보니 새벽 방송이 매우 잦고, (내가) 아버지 출근 전 무렵 나오는 때가 많으니 그런 듯 싶다. 더욱 열심히 해서 부끄럽지 않은 장남이 되게 더욱 노력해야 한다.
 
-친구들을 비롯해 아는 사람들도 많이 응원할 것 같다.
 
▲모두들 신기하게 보고 좋아한다. 더 잘 될거라면서 응원해주고. 하고싶은 일을 한다는 것을 부러워한다.
 
-아나운서(캐스터)가 되고 싶은 사람도 기사 많이 볼텐데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이먹고 40쯤 되고 결혼해서 직장 다니며 소주 대략 한 두병 먹고 집에 힘 빠진 채로 간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그당시 시도라도 해볼걸' 하면서 말이다. 그 마음가짐으로서 온 것이 여기까지 왔다.
 
만약 꿈이 있다면 일찍 도전이라도 하란 얘기를 하고 싶다. 해본 다음에 정 안되면 그때 다른길을 찾아야지, 지레 겁먹으며 일찍부터 포기하지 않았으면 싶다.
 
사실 내가 이 일을 하고 있으니 해줄 수 있는 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감과 자기 확신이 중요한 것이 아니려나 생각을 해본다.
 
이 직업이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확실한 것 같다. 방송을 한다는 것 자체도 그렇고, 내 이야기와 내 목소리가 어디선가 나오고 있다는 것으로도 신기하다.
 
스포츠 현장에서 전문가는 아니지만 감독님을 만나고 선수들과 말할 수 있고 좋아하는 분야에서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하다. 출근에 스트레스 없으니 더욱 지금 생활이 행복하고, 좋다.
 
다만 이같은 장점만큼 직업적 사명감도 있어야 하고, 생방송도 하게 되니 '다음'이란 것이 없을 경우가 많은만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사전 준비도 많이 해야만 한다. 어느 직업이건 다르지 않지만 아나운서는 불특정 다수가 접하기에 더욱 그렇다. 아무쪼록 향후 후배님이 되실 분들의 건투를 빈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하고픈 말은.
 
▲듣는 사람, 보는 사람, 나란 인물을 접하는 자체가 편한 진행자가 되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튀기보다는 같이 일하는 주위 사람이 더 돋보일 수 있도록 하고, 그 사람들이 잘 일을 할 수 있게 해야 하고.. 스포츠는 편하게 보고 즐기는 매우 역동적 컨텐츠다. 그런 스포츠 특성에 맞는 좋은 진행자로 기억되고 싶다. 앞으로도 많은 성원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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