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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업계, 고강도 구조조정 만연.."사회 문제될 수도"
2014-03-06 17:28:10 2014-03-06 17:32:12
[뉴스토마토 최용식기자] #1. 국내 유력 게임사에서 근무하는 B모 조직장은 경영진으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지시를 받았다.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니 정리할 조직원 명단을 제출하라는 것이다. 한 둘도 아닌 대부분을 잘라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유보금만으로도 몇 년은 버틸 수 있는데 왜 극약처방을 택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며 “심한 허탈감을 느껴 같이 그만뒀다”고 말했다.
 
#2. 외국계 인터넷회사에 다니는 C모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경호원을 대동한 본사 임원이 전 직원을 회사카페로 부르더니 “한국시장 철수를 결정했다. 한 달 안으로 모든 것을 정리하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전에 일언반구 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아직 직업을 구하지 못했다”며 “당장 생계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통상 IT벤처 분야는 연봉이 높고 업무환경이 좋아 관심이 있는 구직자들이 많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IT벤처업계의 무자비한 인력조정 풍토가 강해 안정성을 기대하고 간다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조언을 내리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시행됐던 고강도 구조조정 사례를 모아보면 게임업계에서는 2012년 말 네오위즈게임즈(095660)가 1100명이 넘는 인원을 여러 차례 걸쳐 550명으로 줄였다. 주요 캐시카우였던 크로스파이어 수익 분배계약이 불리하게 바뀌고 피파온라인2의 서비스 종료가 이뤄지면서 매출이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포털업계에서는 지난해 SK컴즈(066270)가 1300명이 넘는 인원을 700명으로 축소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싸이월드가 페이스북에 밀리고, 검색사업을 포기하기로 하면서 이뤄진 결과다. 이밖에도 KTH(036030), 엠게임(058630), 라이브플렉스(050120), 엑스엘게임즈, 한빛소프트(047080) 등 다수 기업이 몸집을 줄였다.
 
업계에 구조조정이 잦은 이유는 트렌드에 민감한 산업적 특성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은 게임업계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흥행산업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투자금이 필요하고 제품의 시장안착 여부에 따라 성과가 극명하게 갈린다. 이로써 기업은 시시각각 생존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소프트웨어가 철저히 노동집약적 지식산업이라는 점이다. 인터넷회사 한 임원은 “비용구조에서 인건비 비중이 가장 많아 회사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경영자는 인력축소를 자연스럽게 생각한다”며 “늘 회사상황을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조직에 활기와 긴장감을 불어넣으려는 방법으로도 이용된다는 시각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사업구조 개편이 이뤄지면 선호받는 직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갈린다”며 “회사는 끊임없이 이러한 과정을 반복시킴으로써 인재를 솎아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 글로벌 IT산업 메카인 실리콘밸리에서도 고용시장 유연성은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직원들은 자유롭게 회사를 나가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으면서 끊임없이 자기 커리어를 만들어나가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다. 
 
제조업과 IT산업에 경력을 가진 한 마케팅 전문가는 “제조업 근로자의 경우 나가면 당장 할 일이 없지만 IT 근로자는 얼마든지 일거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회사와 개인 모두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굳이 나쁘게 볼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무자비할 정도로 잔인한 인력조정은 조직원들의 충성심과 생계를 빼앗는다는 점에서 지양돼야 한다는 평가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시장이 넓고 기회가 많은 미국과 달리 국내에서 고용시장 유연성에 혜택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고급 개발자에 한정돼 있다”며 “기업들이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인력계획을 방만하게 세운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위 교수는 “IT 사업환경이 나날이 악화되면서 고용 불안정성은 조만간 큰 화두로 다가올 것”이라며 “신규산업 육성과 창업지원을 통한 사회 안정망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 IT기업 사무실 전경 (사진=뉴스토마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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