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부가 씨티그룹의 보통주 지분을 확대하는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형 상업은행들에 대한 국유화 길로 가는 것 아닌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단 미 정부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은행에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은행이 민간 소유로 남아있어야 된다는 입장을 밝혀 국유화 가능성에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은행들의 부실 상태로 볼 때 씨티그룹 외에도 정부의 추가 자본투입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데다 정부의 보통주 지분 확대가 의결권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50%를 넘지 않더라도 은행 영업에 대한 더 강력한 통제로 이어져 결국 국유화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시간) 씨티그룹측 제안으로 미 정부가 씨티그룹의 보통주의 25~40%를 보유하는 방안을 논의중이라고 보도했다. 보통주 지분 보유는 정부가 씨티그룹이 작년말 어려움을 겪을 때 자금지원을 통해 취득한 520억달러의 우선주 중 450억달러를 보통주로 전환하는 방식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부와 씨티그룹이 국유화에 대한 시장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보통주 지분 확대를 협의하는 것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내놓은 금융안정책 구상이 먹히지 않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지난 10일 민관합동 펀드를 만들어 금융회사의 부실자산을 인수하고 긴급대출 규모도 확대하는 최대 2조달러에 달하는 금융안정책을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증시는 하락하는 등 시장의 불신은 해소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씨티그룹이 정부가 보통주 지분을 보유해 자본 건전성을 높이는 방안을 논의에 들어갔지만 이로 인해 은행 국유화 여부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연방저축기관감독청(OTS), 통화감독청(OCC) 등 5개 감독기관은 23일 합동성명을 내고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할 뜻을 밝히면서도 "금융기관이 민간 영역에서 운영될 때 경제가 더 잘 기능할 수 있기 때문에 은행은 민간의 소유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 일각에서 제기된 대형 은행의 국유화에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단 선을 그었다.
미 정부가 이런 입장을 밝힌 것은 은행 국유화에 시장이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유화가 되면 기존 주주들의 주식이 소각되거나 희석될 수 있는 것이 시장의 가장 큰 우려다.
지난주 크리스토퍼 도드 상원의원이 단기적인 은행 국유화가 불가피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그럴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우려된 씨티그룹 주가는 18년 최저치인 1.95달러로,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주가는 25년만에 최저치인 3.79달러로 폭락하기도 했다.
정부가 은행 국유화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씨티그룹의 보통주 지분 소유는 결국 은행 국유화로 향하는 길이라거나 국유화는 이미 진행 중이라는 분석들도 나오고 있다.
프리드먼 빌링스 램지그룹의 애널리스트인 폴 밀러는 정부가 이미 씨티그룹과 BOA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등 이미 국유화 단계에 있다면서 다만 문제는 정부가 국유화 문제 주변을 맴돌고 있을 뿐이라고 블룸버그 통신에 말했다. 정부가 보유한 씨티그룹 우선주 총액은 520억달러에 달해 지난 20일 기준 씨티그룹 시가총액의 5배에 달하고 있다.
또 정부가 씨티그룹 보통주 지분을 40%까지 보유하면 의결권을 완전 장악하거나 다른 주식을 소각할 수 있는 완전한 국유화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은행의 일상적인 활동을 좌지우지 함으로써 기능상 국유화하는 것이나 다른 없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은행 상태로 볼 때 향후 부실이 더 늘어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단기적인 국유화가 불가피하다는 의견과 국유화가 될 경우 은행 주식이 폭락하는 등 문제만 커질 것이라는 의견들이 맞서고 있다.
프린스턴대의 폴 크루그먼 교수나 뉴욕대의 누리엘 루비니 교수 등은 단기적인 국유화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크루그먼은 이날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자본확충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민간에서 자본을 조달할 수 없는 은행을 정부가 단기적으로 소유한 뒤 최대한 빨리 민간에게 다시 되돌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포테일스 파트너스의 애널리스트인 제지퍼 톰슨 같은 경우는 은행 국유화가 장기적으로 해만 될 것이라면서 국유화 말고도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다른 방안들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미 정부가 은행의 건전성을 평가하기 위해 시행할 '스트레스 테스트'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은행이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지 등을 평가할 것으로 알려져 그 결과가 일부 대형 은행의 자본 확충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정부가 은행을 국유화하는 것을 정당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애널리스트인 버트 엘리는 이날 NYT에 스트레스 테스트는 더 많은 의문을 불러오고 불확실성을 더할 것이라면서 논란을 진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정부가 명료하게 은행을 국유화하지 않겠다는 것을 밝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뉴욕=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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