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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부호들)①중국판 카카오톡 '위챗'의 아버지, '마화텅'
2014-01-06 10:00:00 2014-01-06 16:14:09
◇중국 선쩐 텐센트 본사에서 마화텅 CEO(사진=로이터통신)
 
[뉴스토마토 김진양기자] 세계에는 3대 상인이 있습니다. 유태인, 아라비아 상인 그리고 중국인. 20세기 봉건 국가의 몰락과 사회주의 혁명으로 세계 역사에서 잠시 잊혀졌던 중국이 놀랄만한 속도로 세계 무대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무장한 자수성가형 기업인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에서는 혁신을 무기로 한 신흥 부호들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중국의 부자들은 어떻게 돈을 벌게 되었을까요. 그들이 부호(富豪)가 된 비결을 들여다 봤습니다. [편집자]
 
"카톡", "카톡왔숑"
 
버스나 지하철에서 혹은 식당이나 카페에서 스마트폰은 쉴 새 없이 '카톡'이 왔다며 주인을 불러댑니다. 드라마 속 재벌 2세는 말할 것도 없고요. 갑오년 첫 날의 메세지는 무려 55억건을 넘어섰다고 하니 카카오톡은 그야말로 대국민 메신저로 손색이 없습니다.
 
한국에 카카오톡이 있다면 중국에는 '위챗'이라는 메신저가 모바일 시대의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시대에 이름보다 웹 메신저인 'QQ'아이디를 먼저 물었다면 요즘은 위챗 아이디를 묻습니다. 대륙의 스케일에 걸맞게 일일 액티브 유저만도 2억명이 넘습니다.
 
온라인 시대의 QQ와 모바일 시대의 위챗은 모두 한 아버지 품에서 나왔는데요, 아시아 최대 인터넷 기업인 텐센트(중국명 텅쉰)의 작품입니다. 그리고 텐센트를 최고의 기업으로 일궈낸 주인공이 바로 마화텅(馬化騰, 영문명 Pony Ma) 텐센트 최고경영자(CEO)입니다.
 
마화텅은 중국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젊은 부호입니다. 포브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그의 자산은 102억달러(약 622억위안)에 달합니다. 1년 전의 64억달러에서 두 배 가까이 불어났는데요, 그가 10%의 지분을 갖고있는 텐센트의 주가가 작년 한 해에만 100% 가까이 수직 상승한 덕분입니다.
  
문화대혁명이 끝을 향해 치달아가던 1971년, 마화텅은 훗날 중국 개혁개방의 선봉이 됐던 중국 남부 도시 산터우에서 태어났습니다. 교통부 부국장과 해운 회사 사장을 역임했던 아버지 덕에 풍족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그의 성공에 큰 역할을 하지는 않습니다.
 
오늘날의 마화텅을 만든 것은 시대의 흐름을 읽는 통찰력과 상업적 기회를 포착하는 감각이었기 때문입니다.
 
마화텅은 1993년 선쩐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해 삐삐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프로그래머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당시 그의 월급은 불과 179달러.
 
때문에 당시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며 중국인들이 열광했던 주식은 마화텅에게도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 영업장을 한 두 층 오르내리는 사이에도 껑충 껑충 뛰어오르는 주가에 사람들은 무슨 맛으로 밥을 먹는지도 모르게 빠져들 정도였으니까요.
 
"실시간으로 주가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면 보다 편리하지 않을까"
 
마화텅은 즉시 친구들과 의기 투합해 '구빠(股覇)카드' 라는 이름의 PCI 슬롯용 카드를 개발했습니다.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주가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 카드는 당시 선쩐의 유명 전자상가에서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마화텅은 주식 투자에서도 뛰어난 감각을 발휘했습니다. 10만위안을 투자해 70만위안을 얻어 이후 텐센트 설립의 든든한 밑거름을 마련했습니다.
 
구빠카드의 성공으로 정보의 가치를 깨닫게 된 마화텅은 인터넷이 무한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보물상자임을 알아챘습니다. 그리고는 1998년 대학시절 동기인 장즈둥과 함께 당시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있던 채팅 메신저 'ICQ'를 모방한 'OICQ'를 개발했습니다. 텐센트가 탄생한 순간입니다.
 
OICQ는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습니다. ICQ를 사용하던 중국 내 이용자들을 대거 끌어들이며 인지도도 높여갔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ICQ의 운영사인 미국의 AOL은 OICQ의 이름을 사용하지 말 것과 표절에 대한 손해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법원은 AOL의 손을 들어줬고 마화텅은 QQ로 메신저 이름을 바꾸며 한 발 물러나야만 했고 '표절 개발자'라는 비난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즈음 자금 문제도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주식으로 초기 자본금을 많이 모은 상태에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초보 경영인의 손에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리는 신기루와도 같았습니다.
 
기술 개발을 위해 투자도 계속되야 하고 급증하는 이용자로 서버도 확충해야 했지만 시장의 운영 논리에 무지했던 탓에 새로 벌어들이는 돈 없는 지출만 계속됐습니다. 여기에 AOL에 대한 배상금과 2000년의 닷컴버블 붕괴는 치명타였습니다.
 
마화텅은 자금 확보를 위해 손수 개발한 메신저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려고도 해봤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6개의 버전과 20쪽이 넘는 사업계획서를 들고 국내외를 누볐고 마침내 미국의 IDG와 홍콩의 PCCW로부터 투자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발판이 돼 2004년 6월 텐센트는 홍콩거래소에 정식 상장됐습니다.
 
이후 마화텅과 텐센트는 탄탄대로를 걸었습니다. 홍콩 증시에 상장한 그 해에는 중국 CCTV가 선정한 올해의 경제 인물에 뽑혔고,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하는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재계 인사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2005년부터는 포브스 선정 중국 100대 부호에 꾸준히 등장하며 젊고 능력 있는 경영인으로 주목 받고 있습니다.
 
텐센트 역시 온라인 메신저 뿐 아니라 포털 사이트, 온라인 게임 등을 아우르는 종합 인터넷 기업으로 변모했습니다. 남자친구를 빼앗아갔다며 여성들의 공공의 적(?)이라 불리는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도 텐센트의 자회사인 라이엇 게임즈에서 개발·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싱가포르국립대학교(NUS) 경영대학이 주최한 포럼에서 마화텅은 자신의 성공 비결을 "보편적인 서비스를 중국의 특색에 맞게 잘 구현해 낸 것"으로 꼽았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중국의 인터넷 시장에서 한 달, 짧으면 일주일 이내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반대로 외국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는 이유 역시 변화상을 빠르게 잡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를 위해 마화텅은 대부분의 시간을 텐센트의 모든 서비스를 직접 이용하고 인터넷을 돌아다니는데 사용한다고 합니다. 본인이 프로그래머이다 보니 자사 제품의 문제점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수정하며 새로운 상업적 기회를 발굴하기 위해서지요. 
 
마화텅은 또 텐센트의 성공에 그치지 않고 중국 인터넷 시장 전체의 발전을 꿈꾸고 있습니다. 알리바바, 바이두와 같은 훌륭한 기업들이 함께 시장의 파이를 키워 더 많은 기업들이 나타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마화텅은 "중국은 러시아와 한국 등 현지 인터넷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국가"라고 자부심을 드러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또 어떠한 도약을 이룰지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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