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물값, 얼마내세요?)②기득권의 시장 왜곡..소비자는 '뒷전'
2013-12-04 17:31:54 2013-12-04 18:08:19
[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물 논란이 끊이질 않는 가운데 시장은 여전히 기존 강자들의 기득권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소비자는 제한된 선택을 강요 받으며 이중 부담에 시름하고 있고, 수혜는 또 다시 기득권의 카르텔을 강화하는 악순환이다. 시장의 왜곡이다.
 
코웨이가 주도하는 역삼투압 정수기 위주의 시장 체제에 중공사막 등 다양한 방식의 정수기가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시장은 여전히 공고함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방문판매'라는 독특한 영업방식과 채널에서 비롯된다. LG전자 등 대기업도 고전할 수밖에 없는 대목으로, 이는 곧 코웨이를 현 위치로까지 끌어올린 동인이 됐다.  
 
문제는 소비자의 선택 권한이 제한받게 된다는 데 있다. 우려와 논란 속에서도 사실상 선택권을 강요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리게 됐다. 때문에 해당 논란에 대한 종지부를 찍을 수 있도록 대외적 공신력이 담보된 검증기관이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한국정수기공업협동조합은 정수기에 대한 물마크 인증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사진=한국정수기공업협동조합 화면 갈무리)
 
◇셀프인증 체제..의문부호 여전
 
역삼투압 정수기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절대강자 코웨이가 정수기 인증을 수행하는 민간기구에서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학계 등 시민사회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나아가 정수기에 대한 인증 자체가 업체들로 구성된 조합에서 이뤄지고 있어 공신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끊이질 않고 있다. 일종의 셀프인증 체제다.  
 
우리나라에서 정수기에 인증마크를 부여하는 기관은 '한국정수기공업협동조합'이다. 지난 1989년 협회 형태로 출범해 1995년부터 환경부 승인에 따라 정수기에 대한 '물마크' 인증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국내에서 정수기를 제조하거나 판매하기 위해서는 해당조합의 '물마크'를 획득해야 한다. 정수기 관련 업체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이익단체가 정수기 업체에 대한 인증도 부여하는 아이러니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정수기 및 부품업체들이 모인 단체인 만큼 조합에서 영향력이 큰 조합원은 코웨이를 비롯한 메이저 업체다. 이를 두고 업계 관계자는 "솔직히 정수기 업체들의 권익보호 단체가 정수기에 인증마크를 부여하는 것에 대해 공정성이 결여됐다는 비판도 있다"고 털어놨다.
 
정수기 산업에서 코웨이 및 청호나이스 등 시장 선두주자들이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지만 정수기 판매로 이어지는 품질 인증 등 조합의 주요사업 및 방향이 역삼투압 정수기 업체들 위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조합 측에서는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정수기품질심의위원회를 운영하는 등 공정성과 신뢰성 부여를 위한 여러 장치를 두고 있다"고 해명했다.
 
정수기 물마크에서 의무검사항목 외에 다른 기능을 표기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현재 한국정수기공업협동조합은 냄새, 맛, 탁도, 일반세균 등 5개 항목의 일반기능만 충족하면 물마크를 부여하지만 업체별 선택사항인 특수정수기능도 함께 부여하고 있다. 일종의 끼워팔기다.
 
특히 중공사막 방식 등은 일반정수성능의 물마크를 부여받는 데 반해 역삼투압 정수기는 일반정수 뿐 아니라, 중금속과 유해물질 등 41개 검사항목의 특수성능 인정을 거쳤다는 내용까지 물마크에 함께 표기돼, 자칫하면 일반성능과 특수성능을 모두 충족하는 물이 가장 좋다는 인식을 소비자에게 심어줄 수 있다.
 
◇시장 '1위' 코웨이의 행보.. 혼란스러운 소비자
 
역삼투압 논란에서 가장 난처한 쪽은 역시 역삼투압 정수기를 주요 수입원으로 두고 있는 제조사들이다.
 
논란 자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도전'인 데다, 이를 인정하는 것은 계정 고객에 대한 배신이기 때문이다. 코웨이와 청호나이스가 진퇴양난에 처한 이유다.
 
이런 가운데 정수기 매출의 90%를 역삼투압 정수기에서 창출하고 있는 코웨이는 지난해 역삼투압 정수기에 중공사막 방식을 탑재한 '다빈치 정수기(사진·오른쪽)'를 내놔 눈길을 끌었다. 역삼투압 필터에 의한 '순정수' 뿐 아니라 중공사막 필터의 장점인 미네랄이 담긴 '순정수'를 고를 수 있도록 했다.
 
이를 두고 "영업 및 마케팅에 탁월한 코웨이가 시장 니즈에 따라간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역삼투압 방식만이 가장 깨끗하다고 자평해 왔던 이전의 행태와 배치되는 부분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스스로를 부정하는 다른 필터 방식의 정수기를 기존 방식에 탑재해 출시하면서도 역삼투압 정수기 위주로 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코웨이의 영업행태는 소비자들을 더욱 혼란에 빠지게 하고 있다.
 
현재 업계 2위인 청호나이스는 역삼투압 필터 정수기만을 판매하고 있고, 부동의 시장 1위인 코웨이는 역삼투압 이외에도 중공사막, 나노필터 정수기 등을 출시하며 제품군을 넓혀가고 있다. 청호나이스 측은 "역삼투압 정수기에 대한 소비자의 니즈가 존재하는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
 
◇물은 기호품? 스스로 찾아라?..손놓는 정부
 
한국정수기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역삼투압 정수기 비중은 현재 40%가량으로 70%에 육박했던 90년대 초반에 비해 낮아지는 추세다. 협회 측은 "제품의 다양화로 해석된다"고 평했지만 '물 품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촉각이 곤두서 있는 만큼 정수기 시장에서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란 분석에 무게감이 쏠린다.
 
결국 논쟁, 상호비방 등 신경전을 낳는 소모전은 지양하되 소비자 스스로 자신의 상태에 맞는 물을 선택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다양한 정수방식 중에 소비자의 몸상태와 건강, 기호 용도 등을 고려해 정수방식을 선택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내 집으로 들어오는 원수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한 후 그에 알맞은 정수기를 택하면 된다는 논리다.
 
국가상수도정보시스템를 통해 가정에서 사용 중인 수돗물(정수장·소규모수도시설·수도꼭지 시설)의 상태를 알 수 있다. 주의할 점은 가정으로의 배송 과정에 따른 오염 가능성이다. 수질검사기관에 가정에서 나오는 수돗물에 대한 수질 검사를 의뢰하면 30만원 가량이 든다. 일반 소비자로서는 큰 부담이 되는 액수다.
 
또한 현재 소비자 입장에서 정수방식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기란 쉽지 않다. 정수기 물에 관한 공식적인 검사나 소비자단체의 조사도 전무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조차 실명을 걸고 입장 밝히기를 꺼린다. 업체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걸려있고, 복잡다단한 문제라 검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김자혜 소비자시민모임 회장은 "정수방식에 대한 논란에 대해 인지하고 있지만 검증하기 어려운 문제인 데다 업체들의 반발이 적지 않아 검증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판매업자들조차도 관련 정보를 습득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해까지 정수기 대리점을 운영했다는 박모씨는 "새로운 필터가 나와서 고객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업체에 관련 정보와 설명을 요구했지만 업체로부터 돌아오는 것은 일방적인 홍보 문구 뿐이었다"면서 "정보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고 푸념했다. 
 
정수기를 맹신하는 일부 소비자들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나왔다. 지자체 수질검사기관의 한 관계자는 "먹는물 관리법에 의해서 정수기는 관리만 하게 되어 있지, 수질검사는 안 해도 된다"면서 "정수기는 밥솥이나 냉장고 같은 하나의 공산품일 뿐"이라고 말했다.
 
박종성 환경부 토양지하수과 사무관은 "정수기는 국가에서 성능적합 여부와 제품에 대한 성능검사를 할 뿐 수질검사 대상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마다 입맛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소비자가 어차피 선택을 해야 한다"며  "모든 논란에 일일이 대응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정수기품질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연화 한국소비생활연구원장은 "정수기 분야의 패러다임이 바뀌어가고 있지만 먹는 물 선택에 있어 아직도 갈팡질팡하는 소비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환경부 등 국가기관이 정수기 물이나 샘물 등 소비자의 먹는 물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윤주환 고려대 환경시스템 공학과 교수는 "소비자는 정수방식 논란 등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면서 "물에 대한 불신을 키운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으로, 물 관리 체계가 혁신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이런 혼란은 계속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사이 피해는 계속해서 소비자 몫으로 돌려지고 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