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삼성상회, 경일상회, 선경합섬, 구인상회, 광주택시, 한진상회, 조선화학, 박승직상점.
뭔가 구멍가게 느낌을 폴폴 풍기는 이름이지만 이들 상점이 반세기만에 삼성, 현대, SK, LG, 금호아시아나, 한진, 한화, 두산 등 재벌그룹으로 성장했다.
이른바 재벌그룹 회장님은 국내권력의 실질적 정점에 선 존재이자, 미국 포브스가 지목하는 '빌리어네어(10억 달러 이상 자산가)'에 이름을 올리기도 하지만 이들 선대는 해방공간에서 이처럼 구멍가게 주인과 다름 없이 출발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급속한 부와 권력의 축적이 가능했던 것일까?
<재벌, 한국을 지배하는 초국적 자본>은 그 과정을 분석한 책이다.
구체적으로 '권력자본론'이란 다소 낯선 이론을 적용해 '한국의 지배자본', 즉 재벌의 역사와 실체를 설명하고 있다.
눈에 띄는 건 재벌권력이 여타권력을 압도하고 전면에 부상하는 2000년대 이후 상황을 분석한 대목.
책에 따르면 '한국의 지배자본'은 1997년 IMF 위기를 기점으로 '초국적화' 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권력자본론의 시각에서 볼 때 세계화의 본성은 국내재벌과 외국자본이 상호 융합하여 한국 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함으로써 자본 축적을 확대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매우 근본적 변화를 초래했고 "외국자본과 국내자본이 융합하기 시작하면서 자본의 국적을 규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졌다"는 저자의 주장은 국내재벌과 해외 투기자본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실제 이 책은 '국가' 대 '시장', '산업자본' 대 '금융자본'이란 도식적 논리를 넘어선 분석을 시도한다.
재벌 문제에 대해선 과거 참여연대 중심의 '주주자본주의'와 대안연대 중심의 '발전국가론'이 왼쪽 진영 사상을 양분했지만 둘 다 한계가 뻔하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특히 장하준 교수(영국 캠브리지대 경제학)의 발전국가론에 대해서는 "외국자본에 경영권을 뺏길지 모르니까 재벌 총수들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주장은 쥐가 고양이를 생각해주는 격이 아닌가"라면서 조목조목 비판한다.
물론 이 책은 주주자본주의, 주주민주주의 편에 서 있지도 않다.
저자는 "이 세상에 발전국가 경제모델과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모델 둘밖에 없는 것처럼 말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하며, 외국 금융자본과 국내 산업자본은 이미 한통속이 돼 있는데 그 둘을 대립하는 범주로 놓는 건 허구적이라고 꼬집는다.
저자는 사회양극화 문제를 전적으로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말이 안 된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개발독재와 신자유주의는 구조적 단절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보다는 박정희시대부터 형성되고 발전했던 자본주의 지배블록이 87년 민주화, 97년 IMF를 건너면서 지배질서를 업그레이드 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물론 자본주의 지배블록 한 가운데는 재벌이 존재한다.
저자는 말일 전선을 긋는다면 한편에는 재벌을 포함한 초국적 자본을 두고, 맞은 편에는 사회공동체를 둬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향후 과제는 외국자본이든 국내자본이든 이들이 국가와 결탁해 사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공동체가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정치경제 제도를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박사학위 논문을 정리한 이 책은 대안 제시 보다 분석에 초점을 맞춘 학술서적이다. 책을 쓴 이는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박형준 연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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