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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을 부리는 야구 암표상, 건전한 관람문화 위협한다
2013-10-18 20:53:05 2013-10-18 21:12:55
[잠실야구장=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갑자기 뒤에서 커다란 손이 머리를 쳤다. 묵직한 주먹으로 그리고 손바닥으로. 또한 "좋은 말 할때 아까 찍은 사진들 당장 내놔"라는 말과 함께 갑자기 기자를 끌고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건장한 남자 세 명의 급습에 가장 먼저 뇌리에 든 생각은 "사진을 꼭 지켜야 겠다"라는 것이다.
 
다행이었다. LG트윈스 구단 사무실 방향으로 10초 정도 끌려가던 도중에 멀리 경찰이 보였다. 이에 기자는 경찰을 향해서 소리를 쳤고, 기자를 끌고 가던 남자 세 명은 서로 다른 쪽으로 흩어졌다. 그들이 기자를 폭행하면서 빼앗으려고 노렸던 사진은 17일 서울 잠실에서 열린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암표판매의 장면이었다.
 
◇종합운동장역 내부부터 중앙매표소에 이르는 구간까지 암표상은 끝없이 등장하며 대놓고 호객 행위를 진행했다. (사진=이준혁 기자)
 
◇테이블석 50만원, 블루지정석 25만원..외야석도 8만원
 
17일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2차전(두산-LG) 경기가 열린 서울 잠실야구장. 종합운동장역에서 개표 직후 순간부터 암표상은 많은 야구 팬들을 맞았다. 지하철을 이용해서 구장을 찾아온 사람이 암표상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암표상은 많았고 대담했다.
 
이날 기자는 대학생과 같은 젊은 차림으로 잠실에 왔다. 그리고 암표상들에게 접근해 가격을 물어보고 같이 보는 형과 통화해서 결정을 하고 다시 오겠다는 방식으로 여러 명의 암표상을 접촉했다. 기자라는 신분을 숨기기 위해서 왠만하면 카메라는 들고온 가방에 깊숙히 넣어두며 꺼내지 않았다.
 
처음 만난 암표상은 블루지정석 입장권이 있다며 기자를 노렸다. 블루지정석은 응원단상 인근의 좌석으로 플레이오프의 입장권 가격은 4만원이다. 하지만 암표상은 25만원을 불렀다. 정가 대비 6배가 넘는 폭리 가격이었다. 기자가 망설이자 2장 구입하면 가격을 40만원(장당 20만원)으로 깎아서 판매할 것이란 제안도 했다.
 
외야석으로 정가 2만5000원을 받는 그린지정석 입장권이 많다며 원하는 구역마다 티켓을 팔 수 있다는 식의 호객행위를 하던 암표상도 나타났다. 이 암표상이 부른 가격은 장당 8만원이다. 정가에 비해 3배가 넘는 값이다. 3장(정가 7만5000원, 해당 암표상 기준 가격 24만원)을 사면 20만원으로 깎아 판매할 수도 있다고 했다.
 
정규시즌 프로야구 경기와 비교해 플레이오프 암표의 폭리 가산비율은 훨씬 높았다. 특히 몇 좌석 없는 테이블석과 응원 열기를 느낄 수 있는 블루지정석 등지의 암표값은 상상을 초월했다. '포수와 일직선 뒷편 테이블석 표를 여럿 갖고 있다'고 말하는 암표상은 장당 50만원을 불렀다. 
 
◇한 암표상이 '시장가'를 거스르고 싼 가격에 판다며 다른 암표상이 서로 완력을 부리며 싸우고 있지만 경찰은 싸움을 말리는 조치만 하고 있다. (사진=이준혁 기자)
 
◇암표상끼리 공개적으로 싸워도 싸움만 말리고 자리를 회피하는 경찰
 
오후 5시 무렵 중앙매표소(종합운동장역 5번출구 앞)에서 갑자기 싸움이 벌어져 일대가 시끄러워졌다. 몇몇 암표상끼리 벌인 패싸움이었다.
 
한 암표상이 '시장가'를 거스르고 싼 가격에 판다는 것이 싸움의 원인이었다. '시장가'는 그들이 정한 암표의 최소가로서, 이 가격의 밑으로 팔지 말자는 일종의 담합가였다.
 
암표상의 다수는 서로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표가 부족할 경우 서로에게 얻어 판매를 했다. '수수료'가 오고가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경찰은 싸움을 말리는 데에만 집중했다. '암표 판매'에 대해서는 결코 단속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싸움이 어느 정도 진정된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 찾아오자 경찰은 자리를 떠났다.
 
경찰이 이들이 암표상임을 모르지 않았다. 싸움 도중 "니가 왜 딱질(딱지가 '표'를 의미함) 시장가보다 싸게 팔아" 등등 암표상임을 쉽게 자술하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암표상' 이전에 노점상이자 담합이었다.
 
기자는 경찰을 따라가 암표 판매 행위를 저지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경찰은 "나는 의경이라 현장에서 잡게 되더라도 구속력이 없다. 잡게 되면 형사 분들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데 오래 그 곳에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자세히 보니 해당 경찰은 의경이었다.
 
이날 잠실야구장 입구 일대에는 경찰 병력 180여 명이 집중 배치됐다. 야구장 관할경찰서인 송파경찰서와 관련 지원을 나온 강동경찰서의 의경들이었다. 그렇지만 암표상 단속이 이뤄지는 장면을 찾기는 어려웠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야구장 경호요원은 "포스트시즌에는 지방에서 활개치던 암표상도 올라온다. 암표상 수가 경찰의 수보다 많을 것"이라며 "경찰과 익히 알고 지내는 암표상 수가 적지 않다. 암표를 팔다가 잡혀가면 경범죄로 처리되는데 잡히는 암표상도 대부분 지방 출신의 암표상"라고 말했다.
 
◇암표상이 표를 들고 소리치며 판매행위를 하고 있지만 경찰은 이를 보고도 지나치고 있다. (사진=이준혁 기자)
 
◇단속 의지가 부족한 경찰, 처벌 의지가 결여된 법규
 
이날 잠행취재는 오후 3시부터 플레이오프 경기의 시작시간인 6시까지 3시간동안 잠실구장 곳곳에서 이뤄졌다. 그렇지만 경찰이 암표상을 붙잡아 범칙금을 물리는 행위는 단 한 차례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암표상이 표를 들고 소리를 치며 구매자를 찾고 있지만 경찰은 이를 모른채 했다.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었던 오후 4시 무렵 경찰과 암표상 간의 거리가 10m도 안됐지만 이같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오후 6시 무렵 중앙매표소 인근에서 기자와 대화를 주고받은 송파경찰서 최 모 경위는 "암표 판매를 막기 위해서는 판매 현장에서 바로 잡아야 한다. 제보는 아무 소용이 없다. 현재 관련 법규가 그렇다"면서 "현재 법은 암표를 구입한 사람은 처벌을 받지 않게 되어있다. 하지만 경찰에 신상을 알려야 하고 경기를 보지 못할 것이란 우려 때문에 제보를 꺼린다. 제보라도 이뤄지면 잡는 과정이 그나마 훨씬 편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이 암표상을 직접 접하고도 고의로 잡지 않을 일은 없다. 본인에게 아무 구속력이 없는 의경이 부득이하게 놓쳤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 경위의 말과 달리 암표상을 묵인한 경찰 중에는 의경이 아닌 경찰도 존재했다.
 
그런데 경찰이 만약 암표상을 잡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20만원 이하 소액의 범칙금만 내면 곧바로 풀려난다. 암표상들이 벌어들인 돈에 비해 턱없이 소액이다. 결국 이들은 다시 야구장에 돌아와 남은 암표를 판매한다. 암표상 근절이 요원한 이유다.
 
경범죄 처벌법 제3조는 암표상을 '흥행장, 경기장, 역, 나루터, 정류장, 그밖에 정해진 요금을 받고 입장시키거나 승차 또는 승선시키는 곳에서 웃돈을 받고 입장권·승차권 또는 승선권을 다른 사람에게 되판 사람'으로 정의한다.
 
암표상 처벌은 짧은 시간의 구류와 최대 20만원 범칙금 납부에 그친다. 그나마 금액이 최근 16만원에서 20만원으로 소폭 인상됐다. 블루지정석 한 장을 암표로 팔면 벌 금액이다. 
 
암표상들은 "아무리 비싸게 불러도 사는 사람은 있다"고 장담해왔고, 실제 그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대다수 평범한 야구팬은 평범하게 야구를 볼 권리를 빼앗겼다. 언제까지 이들 암표상의 횡포에 휘둘려야 하나. 경찰도 관련 법규도 손을 놓았다. 결국 암표상 근절은 야구팬 각자의 판단에 달린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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