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재야'는 제도권에 속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사전에는 "벼슬하지 않고 민간에 존재한다"고 정의할 정도로 권력과는 거리를 두고 쓴소리 내는 재야에 기반을 둔 연구소들이 우리 주변에도 적지 않습니다. 정부 산하이거나 대기업이 운영하는 여러 연구소들이 제도권의 정책을 보완해서 풍부하게 만드는 것과 달리 제도권 정책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정책을 감시하고 더 나은 대안을 고민하는 것이 이들 재야연구소의 주업무입니다. 뉴스토마토는 소수의 목소리로 묻혀있는 이들 재야연구소의 목소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특히 새정부 출범 전후로 빚어진 현안과 향후 이슈에 대한 이들의 견해는 귀기울일만 합니다. [편집자]
좋은예산센터(소장 김태일)는 2004년부터 해마다 연말이면 다음해 집행될 정부 예산안 가운데 낭비성사업을 지목, 발표한 뒤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일을 하고 있다.
2011년에는 한식 세계화, 자전거도로 인프라·네트워크 구축, 농업용 저수지 둑 높임, 농어촌 뉴타운과 군 골프장 조성을 모두 '예산 낭비 우려 사업'으로 선정했다.
또 같은 해 '4대강 살리기' 일환으로 국토부에 배정된 3조5350억원의 예산도 '타당성 부족'이라는 점수표를 달아 주기도 했다.
국가예산하면 저절로 ‘날치기’를 떠올리는 국내현실에서 납세자의 주권을 처음 얘기한 게 이 단체의 의미다.
<사진제공: 좋은예산센터>
좋은예산센터는 '재정민주주의' 구현을 목표로 2010년 3월3일 출범한 예산전문 민간싱크탱크다.
전신은 '함께하는시민행동' 산하 예산감시위원회로 센터는 3년 전 함께하는시민행동에서 독립하며 전문성 강화와 시민참여 제고에 좀 더 주력하고 있다.
3월3일은 좋은예산센터의 생일이자 예산운동의 시발점이 된 상징적 날이기도 하다.
본래 '조세의 날'이었던 3월3일을 '납세자의 날'로 바꾸도록 한 게 함께하는시민행동 예산감시위원회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명칭 변경은 인식 전환을 전제로 한 것이다.
예산의 주체는 국가 아닌 국민이라는 것, 국민은 세금에 대한 의무만 지는 게 아니라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이들이 주장해온 목소리다.
좋은예산센터는 말한다.
"재정운용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돼야 실질적 민주주의, 즉 '진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모든 정책이 결국 예산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민이 직접 예산을 감시하고 재정에 적극 참여하는 활동의 중요성은 분명해진다.
◇모든 정책은 예산에서 나온다
<사진제공: 함께하는시민행동>
예산운동 역사는 10여 년을 훌쩍 거슬러 올라간다.
함께하는시민행동 예산감시위원회는 1999년 출범 이래 각종 납세자소송을 주도하고 예산관련 감사를 청구하며 입법운동을 펴왔다. 주민소환제, 주민참여예산제가 그렇게 채택됐다.
출범 이듬해 선정하기 시작한 '밑 빠진 독상'과 2004년부터 발표해온 '예산낭비우려사업'도 대표적 활동으로 빼놓을 수 없다.
<주민참여가이드북>, <예산감시매뉴얼>, <주민소송 사용설명서>, <지방자치단체 돈이 새고 있다>, <복지국가 재정전략>, <국가는 내돈을 어떻게 쓰는가> 등 지금까지 운영진과 사무국 활동가의 책 발간도 활발하다.
2000년대 중후반 예산감시위원회는 감시뿐 아니라 시민 참여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다.
'세금이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대안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좋은예산센터로 새롭게 출범한 뒤 2011년 '시민재정전략 연속토론회'를 기획한 건 그런 맥락에서 주목되는 활동이다.
토론회는 당시 정부의 재정 운용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는 취지였지만 좋은예산센터는 향후 국가재정의 최대변수로 복지예산을 지목하고 다양한 방법론을 모색했다.
발제자로 나선 김태일 소장은 SOC(social overhead capital: 도로, 항만, 하수도, 공항, 댐 등 사회간접자본) 등 경제 지출을 줄이고, R&D 세액공제 등 주로 대기업에 제공되는 비과세 감면을 없애서 확보된 재정은 복지지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복지 분야를 중심으로 지출 총액을 대폭 늘리고 직접세를 확대하는 적극적 세제개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소장은 "이러한 요구가 국회의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모두 수용될 리는 없지만 재정운동으로서 문제 제기와 요구는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낸 세금 제대로 쓰이나 → 세금은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
<자료제공: 월간 '좋은예산'>
조세와 재정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예산운동 전반으로 번져가는 중이다.
10여년 간 조세제도 개혁에 주력해온 참여연대 산하 조세개혁센터도 지난해 조세재정개혁센터로 이름을 바꿨다.
센터명에 ‘재정’을 추가한 건 앞으로 국가재정의 규모, 방향, 우선순위를 제시하는 것으로 활동을 넓히기 위함이다.
탈세를 감시하고 과세를 공정하게 잘 하도록 견인하는 일뿐 아니라 시민사회가 먼저 대안적 국가재정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이들은 보고 있다.
좋은예산센터는 활동기조로 "시민의 건전한 상식을 판단기준"으로 삼고 "다수 시민의 권익 실현과 밀접한 주제를 우선" 한다고 밝혔는데, 분명한 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기존 경제정책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애초 경실련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시민사회의 쌍두마차격인 두 단체가 앞으로 어떤 담론을 주도할지 주목된다.
◇“국가 재정에 대한 국민 신뢰, 증세 보다 중요”
<사진제공: 김태일 소장>
김태일 소장(고려대 행정학 교수, 위 사진)은 2001년 함께하는시민행동 예산감시위원회 운영위원을 맡아 재정운동과 연을 맺었고, 2010년 좋은예산센터가 출범한 뒤 소장으로 재직하며 학계와 시민사회 양쪽에서 활동 중이다.
경력만 10년이 넘지만 "예산 감시는 행정학자가 할 일이라 한 것"이라는 겸손을 빼놓지 않는다.
지난 5일 만난 김 소장은 '좋은 예산'에 대해 사회적으로 큰 행복을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내 돈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국가 재정은 "국민 돈을 뺏어서 쓰는 것"인 만큼 국민 개인이 지출할 때보다 더 큰 행복을 만들어낼 의무가 있으며 정부가 이 역할을 하지 못하면 "국민도 세금 낼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그는 딱 잘라 말했다.
증세에 대해선 불가피할 것으로 봤다.
다만 국가 재정에 대한 신뢰가 낮은 상태에서 이는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선결과제부터 풀 것을 강조했다.
김 소장이 재정운동가로서 특히 고민하고 있는 점은 시민 참여를 모으는 것이다.
그는 "시민 없는 시민운동은 하지 말자, 시민 참여가 주가 되도록 하자는 차원에서 여러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며 그 중 하나로 이번 가을 온라인플랫폼을 만들어 예산에 대한 토론장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김 소장과의 문답이다.
◇"시민참여 계속 고민..'좋은 예산 토론장' 만들 것"
-예산감시위원회에서 좋은예산센터로 새로 출범하며 어떤 게 바뀌었는지?
▲과거에는 운동 중심이었다. 납세자 소송, 제도 도입 운동 많이 했는데 이번엔 거기에 시민 참여를 주가 되도록 해보려 한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 하지 말자는 것, 시민 관심을 많이 유도하는 것, 올해 고민은 그것이다.
방법은 다양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온라인운동도 한 차원이다. 사람들이 직접 좋은 예산을 제안하고 낭비적 예산을 고발하는 식으로 예산에 대해 토론하는 장을 올해 안에 만들려고 한다. 더불어 대중을 상대로 책을 내고 정당과 연계하는 방법으로 정책화 하는 것도 계속 할 생각이다.
-10년 넘은 단체 활동 가운데 제일 큰 성과로 꼽는 것은?
▲제도 도입도 있겠지만 사실 예산운동은 생소한 개념인데 이를 널리 인식시킨 것 자체가 성과라고 본다. 지금은 지역에서도 예산감시활동 많이 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주민 참여 이끈 것, 정보 공개 확산시킨 것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SOC 줄이고 복지 늘린다는 朴정부 방침은 맞아"
-한국의 재정 운용 면에서 가장 큰 문제를 꼽는다면?
▲재정만의 문제는 아니고 사실 전반적 문제라고 보는데 국회의 감시 통제 기능 약한 것, 정치·행정 모두 신뢰가 떨어지는 것, 운영이 민주적으로 안 되는 것, 그런 문제가 있고 재정 운용도 마찬가지다.
-복지 분야 예산을 늘리라는 목소리가 수년 사이 더 커졌는데 같은 입장인지 궁금하다. 예산을 배정할 때 어느 분야에 우선해야 할까?
▲주어진 돈을 갖고 쓰는 건데 복지 보다 SOC 같은 경우 예산이 지나치게 많이 투입돼온 측면이 있다. SOC에 대한 구조조정은 필요하고 노인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복지예산을 늘려야 할 필요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SOC 줄이고 복지를 늘린다는 건데 방향은 맞다고 본다.
다만 큰 틀에서 배분을 고민할 때 국민이 우선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따지는 게 먼저다. 뭐가 옳다 나쁘다 할 수 없는 문제라고 본다. 4대강 사업처럼 명백히 다수가 잘못됐다고 하는 것 빼고는 그렇다. 합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 수요 늘고 있어 증세는 불가피"
-조세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거나 증세해야 한다는 요구도 많은데 이에 대해선 어떤 입장인지?
▲그것 역시 기본적으로 국민이 동의해야 한다. 지금 박근혜정부가 하는 게 맞긴 하다. 걷어야 할 데서 걷지 못하고 있으니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 합리화 한다는 것이고 방향은 맞다. 비과세, 감면 부분만 줄여도 꽤 많은 세수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국가적으로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어 증세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세율 인상, 세목 조정도 필요하다. 늘어난 수요가 감당 안 되니까 재산소득에 대해 세금을 더 걷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세금을 더 걷으려면 국민 동의를 얻어야 하고 그러려면 결국 재정에 대한 국민 신뢰가 있어야 한다.
-재정민주주의, 좋은 예산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예산은 결국 국민의 세금 갖고 쓰는 거니까 정부는 국민이 ‘내 돈’ 갖고 지출할 때보다 더 큰 행복을 사회적으로 창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도 세금 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국민 뜻 반영하는 것이니만큼 국가재정에 국민 참여가 보장되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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