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명은기자] 할리우드 대작과 한국 상업영화로 양분되는 국내 극장가에서 덴마크산 영화를 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멜랑콜리아', '인 어 베러 월드', '더 헌트' 등 덴마크 영화들이 이례적으로 국내에서 잇달아 개봉되며 조금씩 영화 팬들의 정서를 파고들고 있다.
이는 예술영화 취향의 유럽 메이저 영화제가 이제는 낯설지 않은 데다 복지를 비롯해 각종 생활 양식에서 북유럽 스타일이 지금껏 꽤나 유행을 선도해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리 크뢰이어'는 19세기를 대표하는 노르웨이 출신 덴마크 화가 P.S. 크뢰이어(쇠렌 세터-라센 분)와 그의 아내 마리 크뢰이어(비르기트 요르트 소렌슨 분)의 이야기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사진제공=(주)퍼스트 런)
'빛의 화가'로 불리며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렸던 P.S. 크뢰이어 곁에는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아내 마리가 있었다. 예술가의 아내로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정작 그녀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자신의 꿈과 재능을 맘껏 펼칠 수 없다는 것에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된다.
더군다나 남편은 창작의 고통으로 인해 정신병을 앓고, 난폭함은 갈수록 심해진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듯하지만 그녀의 재능을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또 그녀가 도망칠까봐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순간적으로 정신을 놓게 되면 딸 아이에게 사냥개 흉내를 내게 하는 무정한 아버지로도 돌변한다.
지옥 같은 나날이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이 반복되자 마리는 결국 아이를 데리고 친구와 함께 휴식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그녀는 스웨덴 출신의 재능 있는 음악가 휴고 알프벤(스베리르 구드나슨 분)을 만나게 된다.
마리는 진정한 행복을 위해 모든 걸 버리고 사랑을 택하지만 여기서 이야기가 끝난다면 '명화보다 더 아름다운 스캔들'이라 감히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사진제공=(주)퍼스트 런)
영화는 북유럽을 배경으로 했음에도 여자의 일생이란 반드시 험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만고불변의 진리로 택하고자 한 듯 어느 순간 한국적 정서와도 잘 맞아 떨어진다. 초반부에 P.S. 크뢰이어 가족이 들판에서 연날리기를 하는 장면이 나올 때부터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지는 영화다.
또 자의식을 찾아가는 여인들의 삶이란 어쩜 하나 같이 순탄하지 못한 것인지,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을 법한 전개가 가히 놀랍지도 않지만 뇌리에서 쉽게 떠나지 않는 기이한 현상을 일으킨다. 비운의 삶이었지만 그것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었기에 결코 불행하다고만 할 수 없다는 것을 떠올리다보면 꽤나 잔상이 오래 가는 영화다.
여자의 인생이 남자에게 귀속되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던 19세기 유럽인의 일상과 당시 풍광을 감상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영화 전반에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지만 이것이 더욱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장치로 생각된다. 베토벤과 베르디, 요한 스트라우스 등의 클래식 선율들은 영화의 시대적 분위기를 살려준다.
마리를 연기한 비르기트 요르트 소렌슨의 고혹적인 매력도 눈길을 끈다. 그녀는 힘과 의지가 느껴지면서도 나약한 여인의 내면을 훌륭하게 표현해냈다.
영화 '정복자 펠레'(1987)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골든글로브상,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등을 휩쓸었던 덴마크 출신 빌 어거스트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덴마크 예술 역사의 황금기를 조명하고 19세기 유럽의 모습을 재현하고자 했다.
'마리 크뢰이어'는 아직은 유럽 영화에 익숙지 않은 영화 팬들이 정서적으로 공감을 얻기에 안성맞춤인 영화다.
13일 개봉. 상영시간 98분. 청소년 관람불가.
(사진제공=(주)퍼스트 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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