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재야연구소를 가다)②사회적경제센터, 착한경제는 이윤배분 시스템에서 나온다
"경쟁 아닌 연대로 성장과 가치, 두 마리 토끼 잡는다
2013-05-13 10:00:00 2013-05-24 09:34:17
[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재야'는 제도권에 속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사전에는 "벼슬하지 않고 민간에 존재한다"고 정의할 정도로 권력과는 거리를 두고 쓴소리 내는 재야에 기반을 둔 연구소들이 우리 주변에도 적지 않습니다. 정부 산하이거나 대기업이 운영하는 여러 연구소들이 제도권의 정책을 보완해서 풍부하게 만드는 것과 달리 제도권 정책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정책을 감시하고 더 나은 대안을 고민하는 것이 이들 재야연구소의 주업무입니다. 뉴스토마토는 소수의 목소리로 묻혀있는 이들 재야연구소의 목소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특히 새정부 출범 전후로 빚어진 현안과 향후 이슈에 대한 이들의 견해는 귀기울일만 합니다. [편집자]
 
(사진제공=사회적경제센터)
 
한국이 100명의 마을이라면? 경제활동인구는 59명, 이 가운데 정규직은 절반도 채 되지 않는 28명. 이른바 대기업에 다니는 정규직은 1명 뿐이다.
 
전체 인구의 단 1%만 안정된 직장이라 일컫는 곳에서 일하고 있지만 경쟁을 미덕이라 말하는 사회에선 이것이 이상하다고 캐묻지 않는다. 
 
지난해 발간된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에 언급된 내용이다.
 
이 책은 시장만능주의가 필경 대몰락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굳이 2008년 금융위기까지 멀리 가지 않더라도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097230), 유성기업(002920) 등에서 드러난 모습은 돈이 돈을 부르고 부가 부를 낳는다는 시장만능주의 구호가 실상은 신기루였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사람·노동' 아닌 '자본'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노동자를 자르거나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모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흥미로운 건 세계 금융위기의 진앙지 가운데 하나였던 스페인에서 유독 협동조합 방식을 채택한 `몬드라곤`만 단 한명의 해고자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위기가 이곳만 비껴갔을까? 그렇진 않다.
 
협동조합은 공동의 편익을 추구하고 이윤을 배분하는 시스템으로, 투자한 이상 이익을 뽑아내야 한다고 믿는 일반기업과 애초 발상과 목표 자체가 달랐기 때문에 해고자를 내지 않은 것이다.
 
◇소기업발전소-->사회적경제센터..착한경제는 이윤배분 시스템에서 나온다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버린 국내에서 이른바 '착한경제'가 뜨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몬드라곤의 기업형태를 국내 이식할 순 없을까?
 
협동조합, 마을기업, 사회적기업을 늘려나가면 지금의 불평등,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사진제공=사회적경제센터)
 
 
사회적경제센터는 이를 위해 '인큐베이팅'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인간 본성에 자리한 연대의 가치를 깨워서 시간은 걸려도 같이 사는 경제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게 개별기업가, 특정기업만 배불리는 방식이 아닌, 사회 전체의 부를 늘리는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목소리는 단순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 대안을 찾아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사회적경제센터는 2006년 출범한 희망제작소 산하 6개 센터 가운데 하나다.
 
본래 소기업발전소란 이름으로 운영돼오다 2012년 1월부터 사회적경제센터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이름이 바뀌면서 역할도 확대됐다.
 
 
 (사진제공=사회적경제센터)
 
 
발전소가 '사회적기업 육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센터는 사회적경제의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다양한 일을 벌이고 있다.
 
이를 테면 지자체·시민단체와 손을 잡고 사회적기업을 세우기 위한 컨설팅을 해주거나 사회적기업가를 양성하기 위해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게 대표적 활동이다.
 
'아이디어 경진대회'를 열어 창업을 독려하는가 하면 시민사회뿐 아니라 기업과도 연계해 다양한 사회적기업 모델을 개발하기도 한다.
 
리포트 발간과 포럼 개최 등 꾸준한 연구활동도 빠지지 않는다.
 
2008년 전세계적 금융위기로 사회적경제가 크게 주목받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국내의 경우 그 뿌리는 빈민운동, 자활운동과 맞닿아 있다.
 
현재 정상훈 센터장을 비롯해 연구원과 필진 모두 11명이 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사회적경제는 민주주의 훈련장"
 
"영리기업은 경제적 성과를 올리는 것으로 끝나지만 사회적기업은 사회적 가치까지 실현할 수 있다."
 
정상훈 사회적경제센터장(아래 사진)은 사회적경제의 가능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리고 이보다 중요한 건 상호연대와 호혜라는 인식 전환의 밑바탕이 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정 센터장은 태동기에 놓여 있는 사회적경제를 위해 정부가 벤처투자에 자금을 쏟아부은 것처럼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자립가능한 거버넌스가 조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지금 단계에서 절실히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정 센터장은 현재 부처별로 이뤄지는 행정을 통합해 시민사회와 정부를 묶어주는 중간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구체적 방식도 주문했다.
 
인터뷰는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의 사회적경제센터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 사회적경제라 하면 막연히 '착한경제'를 떠올리게 되는데 피부에 와닿는 말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 경쟁이 아니라 호혜와 연대를 바탕으로 공동체 이익이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 이를 위한 생산 소비, 분배 활동.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존 경제시스템과는 많이 다르다.
 
협동조합이 대표적이고 사회적기업, 자활기업, 마을기업도 이 범주에 속하는 모델이다.
 
- 왜 사회적경제인가. 신자유주의가 한계에 부딪힌 징후는 분명한데 그 대안을 사회적경제에서 찾아야 한다면 그 이유는.
 
▲자본주의는 이기적 인간을 전제로 하는데 사람의 본성이 정말 이기적인가, 아니라고 본다.
 
상호협동하려는 본성이 인간에게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돕기도 하고 잘못이 있다면 응징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사회적경제는 이런 인간 본성에 맞는 시스템이다.
 
사실 시장 주도의 경제는 300년 정도 됐고 그 이전에 이미 여러 경제 체제가 있었다. 그게 지금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 대안으로 다양하게 부상하고 있다고 본다.
 
사회적경제는 시장주의를 바꾸는 대안이라기 보다 그런 다원화된 경제시스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몬드라곤에 해고자가 한명도 없는 이유
 
- 사회적기업이 일반기업과 다른 장점이 있다면.
 
▲ 기본적으로 일반 영리기업은 조직의 이윤을 극대화 하는 게 우선이다.
 
물론 성장을 하게 되면 일자리 늘리고 사회공헌을 하기도 하지만 조직의 이윤이 최우선이라는 점에서 사회적기업가 차이가 크다.
 
사회적기업은 조직이 성장하면 할수록 지역공동체가 복원되고 사회서비스의 질이 높아진다.
 
취약계층의 경제활동 문제도 같이 해결할 수 있다.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도 같이 끌어올린다.
 
캐나다 수상 폴 마틴이 2004년 "우리는 사회적경제를 사회정책의 핵심수단으로 삼겠다"고 선언했을 정도다.
 
왜 그랬겠는가? 공동체를 위해서 필요한 경제이기 때문이다.
 
2008년 유럽 금융위기 당시 많은 기업에서 인력 구조조정이 발생했을 때도 스페인 협동조합 몬드라곤에선 해고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평균적 성장율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 반대로 사회적기업의 한계도 거론되고 있다. 이를테면 전문성 부족, 재원문제, 관의존성 등 민주적 조직 운영도 뒤집어 보면 의사결정이 느리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 장기적 성장 측면에서 가능성이 더 많다고 보는 것이다. 사회적기업은 신뢰비용 부문에서 우월한 부분이 분명하니까.
 
특히 정보격차가 큰 의료부문, 프랜차이즈 사업 등에서 협동조합이 갖고 있는 사업들이 장점을 보일 수 있다고 본다.
 
사회적경제가 커지면 커질수록 시장경제도 투명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신뢰와 협동을 우선하는 패러다임 전환에 주도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캐나다는 초등학교 때부터 협동조합 가르쳐
 
- 유럽은 조합에 가는 게 일상적일 만큼 사회적경제가 발달돼 있는 편이지만 한국의 경우 유럽과 토양이 다른데 성공할 수 있을까.
 
▲ 유럽은 분명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잡혀 있고 수백년 길드 역사에서 다져진 인프라나 문화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캐나다만 해도 초등학교부터 협동조합을 가르치는데 우린 인재 양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관련연구도 거의 없다.
 
그래서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사회적경제가 확산될 필요가 있겠단 생각이다.
 
사회적경제가 공동의 이익에 부합하는 시스템이라면 그런 생태계나 토양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 그렇다면 생태계 조성을 위해 필요한 건 뭔가. 사회적기업이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지적이 실제 많은 것 같은데.
 
▲인재가 많아지고 성공모델을 빨리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자립자조하는 게 필요하지만 창업초기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정부의 간접지원은 중요하다고 본다.
 
지원은 물론 생태계 조성을 지원하는 차원이다.
 
인재 양성을 위해서도 성공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도 거버넌스 만들어지는 게 핵심이고 그 측면에서 정부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관주도가 장기적으론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지만 국가 주도 아닌 시민 주도로 사회적경제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
 
- 본래 풀뿌리 경제라면 자발성이 핵심일 텐데 시민사회가 충분히 성숙돼 있지 않기 때문에 관의 지원은 필요하단 설명으로 들린다. 간접지원이라면 어떤 방식이 있을까.
 
▲ 관에서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중간 지원 조직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테면 대통령 직속 사회적경제위원회를 만드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만들자는 시민사회 요구가 많았는데 이뤄지지 않았다.
 
캐나다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는데 캐나다에선 지역과 시민사회조직과 정부 등 3자가 뭉쳐서 협동조합을 활성화시킨 성공사례가 있다.
 
이때도 정부는 주도하기 보다 중간조직을 만들어 지원하는 형태였다.
 
◇경제민주화, 협동조합 방식으로 구현 가능
 
- 현재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사업 펴고 있고 정당별로 사회적경제에 대한 연구도 이뤄지는 것으로 아는데 한계나 아쉬움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
 
▲ 협동조합기본법 자체는 빨리 만들어진 편이다.
 
이명박정부가 유일하게 잘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다만 지금의 정부 지원은 중복돼 있고 비효율적이다.
 
기재부, 안행부, 노동부, 교육부, 여성부 다 걸쳐 있지 않나.
 
이걸 통합해 체계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고 그 역할을 대통령직속 사회적경제위원회가 해야 한다.
 
경제민주화의 한 요소로 사회적경제는 중요하고 특히 협동조합은 민주주의 훈련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데 그 점에서 정부가 아직 철학을 갖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본다.
 
- 딴지를 좀 걸자면 자본주의 병폐를 해결하는 데 정부도 힘에 부대끼기 때문에 민간의 사회적경제를 이용한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다시 말해 관의 책임과 의무를 면피하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인데.
 
▲ 유럽의 사민주의 국가들, 사회적경제나 협동조합이 활성화 된 나라에서 정부가 그런 식으로 국가 역할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쓰고 있긴 하다.
 
영국이나 미국은 그런 측면이 분명히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커지는 게 아니라 사회가 커져야 한다는 측면에서 사회적경제가 커지는 건 바람직하다고 본다.
 
◇사회적경제는 태동기..가능성 무한하다
 
- 사람들이 가장 궁금한 건 사회적경제의 지속가능성일 듯하다. 어쨌든 자본주의 체제 아래 뿌리를 내리려고 하는데 이윤을 최우선으로 두지 않고도 안착할 수 있을까.
 
▲ 그건 사례를 보면 된다고 말하고 싶다.
 
이를 테면 '트리플래닛(가상나무를 키우면 실제로 나무를 심어주는 게임. 게임은 무료지만 스폰서를 맺고 있는 기업 광고비로 실제 나무를 심게 됨. 게임을 매개로 이용자와 기업 모두 환경문제에 공헌할 수 있음)'처럼 성공한 모델이 있고 그로 인해 새로운 시장도 만들어졌다.
 
올해초 기준으로 26만그루 나무를 심었다고 하는데 지자체가 숲을 조성하고 싶어도 예산이 없어서 못하는 걸 청년 사회적기업이 해낸 것이다.
 
악플을 줄이는 온라인플랫폼 개발한 '시지온'도 마찬가지다.
 
사회적경제의 재무상황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이 있지만 한국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아직 태동기에 있는 것이고 중요성을 봤을 때 더 커져야 하기 때문에 보호가 필요하다고 본다. 일종의 유치산업으로 봐야 한다.
 
사회적경제에 지금까지 1조원 정도 투자가 이뤄졌는데 그동안 정부가 벤처사업 키우는 데 13조원 정도 썼다.
 
그동안 프로젝트파이낸싱 통해 조달한 액수는 또 얼마인가?
 
과거 재벌기업이 국가 특혜로 성장한 걸 생각해도 사회적경제에 대한 지원은 지극히 작다고 본다.
 
지금은 인건비 중심의 지원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앞으로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큰폭의 지원이 이뤄지면 사회적경제의 성장과 지속가능성은 문제없이 열릴 것으로 본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