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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장삿속 비난 받고, 신뢰 타격 받고..은행 수난시대
2013-03-27 10:00:00 2013-03-27 10:00:00
꽤 오래 전에 본 영화의 한 장면. 영어는 읽고 쓸 줄도 모르는 이민자 출신에다 성품은 순수하다 못해 어수룩해 뵈지만 실력은 뛰어난 킬러가 주인공이다. 그는 푸근한 식당주인 외모를 한 마피아에게서 청부 받은 일(!)을 하고 대가를 받는다. 철저히 고독한 생활을 하는 그는 받아도 마땅히 쓸데가 없는 그 돈을 다시 마피아 사장님에게 맡긴다. 그때 킬러에게 마피아가 하는 말 "이건 네 돈이고 나는 보관만 해. 은행은 툭하면 망하지만 나는 절대 망하지 않아."
 
이미 눈치 챈 독자도 있겠지만 이는 영화 `레옹`의 한 장면이다. 줄거리도, 캐릭터도, 스팅의 가슴 짠한 엔딩곡도 기억에 남지만 은행은 툭하면 망한다던 그 대사를 들으며 느꼈던 생경한 기분은 여운이 남았다. 당시 필자의 인식으로는 은행은 좋은 일자리로 손꼽히는 곳이고, 망할 위험이 있는 기업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개봉된 때가 언젠가 기억이 가물가물해 인터넷을 뒤져보니 때는 1995년 초. 물론, 이 인식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 저축은행 파동 등을 보면서 확 바뀌었다.
 
게다가 올들어 은행권에서 쏟아져 나오는 뉴스들을 보면, 은행이란 업종이 날이갈수록 인정받고 칭찬받기는커녕 믿음을 못 얻고 비난 받는 상황이 어째 더 늘어나는 모양새다.
 
예를 들면, 가산금리. 은행이 가산금리를 통해 서민과 중소기업에 폭리를 취한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가산금리란 기준금리에 덧붙이는 금리로, 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정할 때 대출자의 신용도, 담보조건 등에 따라 붙이는 금리다. 문제는 이 가산금리가 공식적인 기준이 없이 은행 영업점장의 판단이나 은행의 경영방침에 따라 제각각 정해져 이윤창출의 도구로 마음껏 쓰인다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은행별로 가계 신용대출 가산금리의 차이는 최저 1.87%(산업은행)에서 최고 8.26%(SC은행)에 달했다. 중소기업 신용대출의 경우는 외환은행이 가장 금리가 높았다. 보증 담보대출은 연 2.68%, 물적 담보대출은 연 2.95%에 달해 가장 낮은 농협은행보다 1% 차이가 났다.
 
금리가 차이 나는 것은 둘째치고, 검찰에 고발당한 외환은행의 경우처럼 약정서와 다르게 가산금리를 임의로 올려 부당이익을 챙기는 등 최소한의 상거래 약속마저 저버리는 일까지 발생했다. 은행 입장에서 서민과 중소기업은 빌려간 돈 갚기 힘들어 보이는 고객이니 이들에게 더 높은 가산금리와 기준금리가 책정되기 일쑤인데 여기에 금리조작까지 더해져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은행들이 이처럼 폭리를 취하면서도 소비자 보호는 외면하고 있다는 점은 또 다른 비난거리다.
 
가짜 금융회사 홈페이지(피싱사이트)로 유도해 돈을 가로채는 신종 전자금융사기인 `파밍(Pharming)` 피해가 급증하고 있지만 은행은 피해금 보상에 소극적이다.
 
같은 금융사인 신용카드사가 카드론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피해자에게 자발적으로 피해금의 일부를 보상한 것과 대조적이다. 소비자의 책임으로만 돌리려는 대응은 보기 민망할 정도다.
 
재형저축을 두고 과당경쟁을 펼치고 있는 은행들의 논리도 뻔뻔하다.
 
시중 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재형저축에 대해 "은행이 자금을 바로 조달할 수 있는 콜금리가 2.75%인 점에서 봤을 때 재형저축의 4% 초중반 금리는 역마진"이라며 "재형저축 판촉활동은 금융업계가 거둔 이익을 서민들과 나누자는 데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밑지는 장사 없다'는 옛말은 재형저축에도 통한다. 재형저축과 같은 장기 절세상품은 중도해지율이 높다. 비과세에 소득공제 혜택까지 있었던 장기주택마련저축도 비과세 기준인 7년 동안 유지한 비율이 3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은행권은 재형저축 가입자의 절반 정도가 중도해지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가입후 3년 이전에 해약하면 1%대의 이자만 지급하기 때문에 은행으로서는 남는 장사라는 결론이다. 그런데도 `나눔`과 `역마진` 운운하는 것은 입에 발린 소리로 들릴 뿐이다.
 
최근 이같은 사례들로도 부족할까 싶지만 아직 하나가 더 남았다. 압권은 지난 20일의 `금융전산망 마비 사태`다. 누구의 소행이냐 말들이 많지만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정말 안전해야 할 은행의 보안이 뻥 뚫렸다는 점이다.
 
할리우드 영화 '다이하드' 4편에 보면, 테러집단이 교통·통신·전기 등 한 나라의 기간망을 장악해 쑥대밭을 만들고, 금융거래정보를 다 모아 놓은 데이터저장소를 손에 넣으려는 설정이 나온다. 이번 일을 보면서 마냥 `영화 같은 일`로 치부할 건 아닌가 싶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그간 안이했던 보안문제 대응이 속속 지적되는 것을 보면서 대중의 은행에 대한 신뢰는 한꺼풀 더 얇아졌을 것이다.
 
근 100년 전에 살다 간 허클베리 핀의 작가 마크 트웨인이 빚 독촉에 시달리자 "은행은 맑은 날에는 우산을 빌려줬다가 비가 오면 우산을 걷는다."고 비아냥을 내뱉었다. 지금 한국의 은행은 아니라고 당당히 반박할 수 있을까.
 
은행 역시 하나의 기업으로서 이윤 추구하는 것을 막을 수야 없겠지만 나라 경제의 근간이 되는 금융기관으로서 공적 기능을 소홀히하고 사회적 책임에 태만해서는 안된다.
 
말로만 서민, 중소기업과 나눔을 이야기할 게 아니라 실질적인 지원책을 펼쳐야 한다. 지금의 은행 수난시대를 탄탄한 재정비의 계기로 삼아, 공정한 업무처리와 완벽한 보안태세는 기본 중 기본으로 갖춰야 할 것이다.
 
사족 하나. 다음달 초순, 그 추억의 영화 `레옹`이 재개봉한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심신이 지친 은행원의 옆자리에 앉아 `shape of my heart`를 함께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김종화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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