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현주기자] 예술 작품처럼 아름다운 사랑, 전쟁만큼 독한 사랑. 전쟁과 사랑은 예술의 단골 소재다. 사랑, 예술, 전쟁이 만들어내는 조합은 무궁무진하다. 그 경우의 수를 파노라마처럼 펼치는 연극이 오랫동안 대학로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바로 연극 <환상동화(작·연출 김동연)>이다. 2003년 변방연극제에서 시작한 이 연극은 올해 10돌을 기념해 다시 관객과 만난다. 3년의 공백이 있었지만 새로운 배우들과 장면, 대사들로 공연은 한층 더 무르익었다.
이야기의 짜임새가 사뭇 독특하다. 사랑과 슬픔을 상징하는 사랑광대, 예술과 창작에 도취된 예술광대, 그리고 현실의 잔혹함을 직시하는 전쟁광대가 연극을 풀어나가기 위한 주도권 싸움을 하는 것으로 극은 시작된다. 세 명의 광대가 밀고 당기기를 하며 주인공 한스와 마리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은 마치 극 중 극, 광대에 의한 인형극을 떠올리게 한다.
동화 속 주인공 한스와 마리는 악몽 같은 전쟁 속에서 예술로 소통하며 사랑을 꽃피운다. 전쟁터에서 한스는 폭격으로 청력을 잃고, 카페에서 춤추던 마리는 공습으로 시력을 잃는다. 하지만 둘은 조각 퍼즐의 빈자리를 채우듯 서로를 채워나간다. 전쟁으로 귀머거리, 장님이 됐지만 동화 속에서 한스와 마리의 사랑은 음악과 춤의 예술로 재탄생한다.
이 액자식 구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대사처리다. 대개의 연극이 대사와 연기로 관객과 소통한다면 <환상동화>는 배우들이 마치 동화책을 읽어 주듯 소설 문체로 연기한다. 광대들은 마치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처럼 극 밖에서 등장인물들을 조종하기도 하고, 극 속에 개입하기도 한다. 그렇게 끝을 향해가는 연극은 마침내 광대들에 의해 완성된 한 편의 동화가 된다.
연출가 김동연은 세계 1차 대전 당시 한스 리히터, 마르셀 쟝코와 같은 당대의 예술가들이 매일 밤 카바레 볼테르에 모여 다다이즘을 탄생시킨 것에 착안해 작품 구상을 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전쟁 중인 외부 세계를 철저히 외면한 예술인들은 연극 속 판타지 동화처럼 카바레 볼테르에서 예술과 사랑을 논했다.
다다이즘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인지 극 속에 끌어들인 예술장르들이 실로 다채롭다. 무용, 음악, 마임 그리고 마술까지 곁들여진 진수성찬이다. 러시아 볼쇼이 발레학교를 졸업한 여배우의 수준급 무용을 감상하는 것도 다른 연극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재미요소다. 셰익스피어, 히포크라테스, 마틴 루터와 같은 고전 명작이나 어록을 대사를 통해 맛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연극을 그저 코믹한 판타지 연극에 머물지 않게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극은 내내 사랑, 전쟁, 예술 사이에서 삼각 줄다리기를 한다.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작품이다. 출연 이현철, 송재룡, 김호진, 양잉꼬 등, 3월 1일부터 5월 26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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