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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법 부장판사 대거 사퇴..평생법관제 '휘청'
제도 유지시킬 '법관의 고민' 간과한 후폭풍
판사들 "사건 집중할 수 있는 여건 만들어야"
2013-01-22 16:21:46 2013-01-22 16:24:03
 
[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사법부의 핵심 인력들인 사법연수원 14~17기 고등법원 부장들이 대거 사직 의서를 밝히면서 법원이 야심차게 준비한 평생법관제가 휘청이고 있다.
 
법원은 법관의 정년을 보장하기 위해 평생법관제를 마련했지만, 정작 이 제도를 유지시켜 나갈 주체인 '법관의 고민'은 담아내지 못한 후폭풍이 법원에 돌아오는 셈이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2월 법관정기 인사를 앞두고 사의를 표명한 고법부장 판사가 서울고법에서만 1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생법관제'는 법원장으로 근무한 다음 상급법원장으로 승진하지 않고 고법에서 법관으로 계속 근무하는 시스템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전관예우를 막는 한편, 법원 조직의 안정화를 위해 평생법관제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지난 해 정기 인사 때부터 시행됐다.
 
◇'사법부 허리' 이탈하면 제도정착에 악영향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고법 부장판사들 10여명이 법원을 떠나는 건 평생법관제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는 처우"라며 "어쨌든 사법부의 허리급 역할을 해줘야 하는 고법 부장들이 나가게 되서 평생법관제 정착에 어느 정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판사들은 고법부장들의 대거 이탈의 일차적인 이유로 '근무강도'와 '근무여건'을 꼽았다.
 
점차 복잡해지는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선 법관의 전문성이 중요시되다보니 근무강도가 높아지는 반면, 매년 제자리 걸음인 '근무 여건' 수준은 일의 효율성과 법관으로서의 사명감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지역 법원의 한 판사는 "재판 사례가 복잡해지는 만큼 법관의 업무강도가 예전에 비해 훨씬 늘어났다. 부장급 판사들이 사건에 집중할 수 있는 근무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며 "인사적체도 심해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언제까지 법원에 있을수 만은 없다"고 말했다.
 
◇판사들 "정년까지 근무해도 처우 안 달라져"
 
또 다른 판사는 "가까운 이웃나라인 일본만 해도 법관의 근무 여건이 훨씬 낫다"며 "법관에게 아파트가 제공되는 한편, 정년퇴직하게 되면 통상 연금보다 많은 월급을 받는걸로 안다. 우리나라 법관은 정년까지 근무한다고 해서 처우가 달라지진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변호사 업무를 하려고 퇴임하는 분도 있지만, 경제적으로 고민하다 사퇴를 결심하는 분도 적지 않다"며 "이 분들에게 평생 법관으로 남는 건 부담"이라고 말했다.
 
늘상 지적되는 법관에 대한 국민의 불신 문제도 법관의 사명의식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판사는 "사법불신 여론이 들끓을 때마다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던 법관들로서는 상대적 박탈감이 크게 느껴질 때도 있다"며 직접 의식에 대한 회의감도 요인으로 꼽았다.
 
◇대법원 '인력 증원' 외엔 해결책 못 내놔
 
그러나 대법원은 인력 증원을 통한 업무부담 경감 외에는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법조경력자(검사·변호사·법학교수)를 법관으로 임용하고, 올해도 로클럭 100명을 충원해 법관의 업무부담을 줄일 계획"이라며 "다만 급여 문제는 대법원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 답답하다. 매년 해당부처에 이야기하지만 잘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선 법관들은 이 같은 인력충원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달리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변론만 하던 변호사가, 논문을 쓰던 학자가 법관으로 인용돼 3개월 연수를 받는다고 해서 퇴임하시는 고등부장들처럼 판결문을 쓸 수는 없다"며 "아마도 법조경력자가 법관으로 임용되면 판시내용은 점차 간략해지는 추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클럭 정착 긴 시간 필요..평가 일러"
 
또 다른 판사는 "도입단계인 로클럭 제도가 빛을 발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지금으로선 재판 업무에 어느정도 도움이 된다고 평가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현재 사의를 밝힌 고법 부장판사 들 중에는 도중에 사의를 철회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정확한 사퇴 규모는 인사가 끝나봐야 알 수 있다는 게 대법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사퇴 의사를 밝힌 법관 대부분이 대등재판부 부장판사들인 것으로 알려진 만큼, 평생법관제 시행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한편, 법원장과 고법 부장 인사는 다음 달 14일, 지장법원 부장과 고법판사를 포함한 평판사 인사는 다음 달 25일자로 단행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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