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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박근혜, 신뢰사회, 그리고 그들의 공약
2013-01-17 16:04:56 2013-01-17 16:06:55
박근혜 당선자의 공약이 수정될 기미가 보인다.
 
아직은 공약수정을 위한 군불때기 과정으로 보이지만 수정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면서 여당 내는 물론 인수위, 언론까지 가세한 형국이다.
 
공약이 잘 지켜지지 못한 사례는 예전에도 많았다. 하지만 그때는 해보다가 안돼서 완결짓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리고 공약을 내건 세력은 약속을 못 지키게 됐을 때 최소한 미안해했다. 때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과를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정권이 출범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공약을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것도 미안해하기는 커녕 공약을 지키라고 하는 게 비정상인 것처럼 너무도 당당하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대선이 끝나자마자 "선거 기간에 너무 세게 나갔던 부분은 다시 차분하게 여야가 같이 생각해볼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후 여당 중진들의 입에서는 '현실론' 속도조절론' '출구전략론'이 마구 쏟아졌다.
 
보수언론들도 적극 거들고 나섰다.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겠다는 공약은 접으라(동아)'는 둥, '공약을 100% 지킬 것으로 믿는 국민은 많지 않다(조선)'는 둥 공약 수정의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인수위도 결국 16일 대선공약들의 중복여부, 실현가능성 등을 재점검한다고 밝혔다.
 
이 정도되면 그 치열했던 지난 대선은 결국 무엇이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5년의 미래를 이끌 국가권력이 공약과 현실성, 후보의 진정성과 됨됨이 등으로 평가받는 게 아니고 결국 사기쳐서 따는 것 아니었냐는 거다.
 
지난 대선에서 여야 후보자와 정당들은 공약을 보고 투표하라고 했다. 선관위도 공약을 보고 투표하라는 TV광고까지 했다.
 
국민들은 그 얘기를 듣고, 또 공약으로 후보자를 판단하는 게 정상이니까 공약과 진정성을 보고 투표했다. 그리고 승패가 갈렸다.
 
모든 경쟁이 끝난 뒤 이제와서 이긴 쪽이 공약이 좀 세게 나갔으니 공약을 바꾼다고 한다. 출구전략을 생각해 보자고 한다. 이정도 되면 '범죄'라고 해도 너무 야박한 얘기는 아닐 것이다.
 
공약과 관련해 박 당선자가 직접 꺼낸 얘기가 있다.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사회'라는 말이다.
 
 
박 당선자는 7일 인수위 첫 회의에서 "선진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한국이 넘어야 할 마지막 관문이 바로 사회적 자본을 만드는 것"이라면서 "사회적 자본이라는 것은 결국 한마디로 신뢰 사회라 볼 수 있다. 정부가 앞장서 구체적 신뢰를 위해 노력할 때 사회적 자본이 촉진된다"고 했다.
 
또 "공약을 발표할 때마다 재원이 어떻게 소요되며 실현 가능한지 따지고 또 따져 만든 공약이기 때문에 우리가 정성들여 지켜나갈 때 사회적 자본이 쌓여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말이 허언은 아니겠지만 주변에 널려 있는 '대선공신'들과 '기반세력'에 의해 '양치기 소녀'가 되는 것도 순식간이다.
 
대통령을 만들어준 세력과 '국가지도자로서의 박근혜' 사이에 추구하는 바가 다를 때 박 당선자가 어떻게 중심을 잡느냐에 따라 '양치기소녀'가 될 수도, 안될 수도 있다.
 
그리고 만약 박 당선자가 '양치기 소녀'의 길을 택한다면 바로 그때부터는 여당의 주장과 공약이 앞으로의 선거에서 더이상 진정성을 가질 수 없게 된다.
 
다음 선거에서는 "여당 공약은 당선되면 바뀝니다"라며 지금의 공약수정론을 유권자들에게 상기시키기만 해도 야당으로서는 수확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호석 정치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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