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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벤조피렌`과 바보 삼총사
2012-11-01 16:00:00 2012-11-01 16:00:00
달타냥과 함께 활약을 펼치는 정의로운 아토스, 포르토스, 아라미스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의 '발암물질 라면스프' 사태와 관련된 `식품의약품안전청, 언론매체, 식품업체 농심`에 대한 이야기다.
 
가히 국민 먹거리라 할만한 라면에서 1급 발암물질이 나왔다는 소식에, 며칠간 나라 안팎이 술렁였다.
 
애초에 원인을 제공한 기업도 기업이지만, 괜찮다고 했다가 이미 다 팔려 회수할 제품도 없는 마당에 회수명령을 내린 무원칙·무소신의 정부당국, 사안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나 공익성보다는 선정적인 기사 쏟아내기에 치중한 언론매체를 한묶음으로 `바보 삼총사`라 할만하다.
 
첫째, 식품의약품안전청. 상식적으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처신을 한 곳이 바로 식약청이다.
 
"안전하다"는 당초의 입장은 국감스타가 되고픈 정치인과 대중의 주목에 목마른 언론이 합세해 "위험하다"고 난리를 치자 다음날 곧바로 바뀐다.
 
문제가 된 제품에서 검출된 벤조피렌은 최대 4.7㎍/㎏(ppb). 스프 1㎏(라면 100개 분량)에 0.0000047g이 함유됐다는 뜻이다. 담배 1개비에는1478ppb, 스팸 1통(200g)에는 36920ppb, 삼겹살 300g 에는 97만ppb가 들어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라면 3만1450개에서 담배 1개비 태울 때만큼의 벤조피렌이 나왔다는 계산이다.
 
안전한 수준이라고 최초 발표했을 때 분명 이런 점이 고려됐을 것이다. 그런데도 식약청은 말을 뒤집었다. 궁금하다. 묻고 싶다. 왜 그랬나요?
 
이 회수명령은 파급이 컸다. 농심 라면을 수입하는 세계 각국에서 제품 회수명령이 내려졌고, 다른 나라에서 회수조치를 취해도 꿈쩍 않던 일본 후생노동성까지 같은 조치를 취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각) 제품회수를 명령한 일본 후생노동성의 변은 "건강에는 이상이 없다고 판단됐지만 한국 정부의 대응에 따라 회수를 결정했다"는 것. 제품을 생산한 당사국에서 해당 제품을 회수하는 마당에 수입국에서 회수하지 않을 명분이 없었기에 궁색한 이유를 덧붙인 것으로 풀이 된다. 당국의 무소신 갈대행정이 국제무대에서도 비웃음을 샀다.
 
망신도 망신이지만 더 심각한 것은 식약청의 신뢰도 붕괴다. ppb가 뭔지, 벤조피렌은 또 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국민은 인터넷을 뒤지며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하는 상황. 이제 우리 국민은 유해식품에 대해 정부발표를 믿지 못하고 스스로 판단해야 될 상황이 됐다.
 
둘째, 언론. 시청률에 목마른 공중파 방송의 몸부림이었을까. M사는 지난달 23일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제기된 당일 밤 9시 뉴스에서 특종이라며 떠들썩하게 보도했다.
 
M사는 6개 라면제품에서 검출된 양은 4.7㎍/㎏(ppb)으로 식용유 같은 기름제품과 어류는 2㎍/㎏, 분유는1㎍/㎏을 넘지 못하도록 허용기준을 두고 있다며 일부 농심 제품들의 벤조피렌 검출량이 더 많았는데 식약청은 아무런 제재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아니나다를까, 다른 언론사들도 앞다퉈 기사를 받아 썼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 정도 검출치가 어느 정도 유해한지에 대한 검증, 라면스프를 포함한 가공식품에 벤조피렌 기준치가 별도로 설정돼 있지 않다는 관리상의 허점 등에 대한 엄정한 지적보다는 공포마케팅에 편승하기 바빴다.
 
언론이 과연 신중하고 합리적인 판단 하에 국민의 건강과 정부, 기업, 우리 경제를 염려하며 뉴스를 생산했는지 돌이켜 봐야 한다.
 
셋째, 식품업체. 기업의 입장에선 억울하다, 나도 피해자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소비자인 국민 입장에선 엄연한 가해자다.
 
지난 6월 벤조피렌이 초과 검출된된 가쓰오부시와 훈연건조고등어 제품을 제조 판매한 (주)대왕과 이 사실을 알고도 스프의 원료로 사용한 태경농산(주) 대구공장은 행정처분됐으며, 회사 관계자 등은 검찰에 구속됐다.
 
라면업계는 지난 3월 ㈜대왕의 가쓰오부시에서 벤조피렌이 초과 검출됐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당시 문제의 제품을 공급받던 몇몇 업체는 제품을 폐기했지만 농심 등 몇몇 업체는 문제의 제품을 그대로 사용하다 이번 사태를 온몸으로 겪어야만 했다.
 
안전한 수준이었다는 것이 이유였겠지만 당시의 판단이 기업의 명암을 갈랐다. 이번에 곤혹을 치른 기업들은 당시 제품을 폐기한 기업의 판단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제품 폐기로 인한 금전적인 손해는 면했을지언정, 불과 몇개월 후 소비자 신뢰 상실과 기업이미지 타격으로 입은 손해는 그 몇 백배는 될 것이다.
 
소비자에게 건전한 기업윤리와 사회공헌을 실천하는 기업으로 다가가고 싶다면, 식품제조업체로서 먹거리의 안전성이라는 기본에 더욱 충실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이 기회에 위기 관리체계를 재점검하고 선제적 대응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깊이 고려해보기를 권한다.
 
안타깝게도, 발암물질 라면 사태를 두고 정부, 언론, 식품업체가 열연한 희비극 `바보 삼총사`는 뻔한 줄거리의 막장드라마처럼 종영과 함께 곧 잊혀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소비자 국민은 기억한다, 뜨끈한 국물 꼬들꼬들한 면발이 주는 소박한 행복감과 함께. 그 찜찜한 화학물질과 바보 삼총사를.
 
김종화 생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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