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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런닝머신 타는 남자의 연애갱생 프로젝트'
공감도 높지만 일차원 위로 아쉬워
2012-09-21 16:50:50 2012-09-24 14:03:14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직장인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아마도 '변수 발생'일 것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꽉 짜여진 스케줄을 소화해내려면 일상적 삶을 지탱해줄 평상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이 평상심란 것은 돌발상황에 극히 취약하다. 뜻하지 않은 가정사, 연애문제에 사람의 마음은 너무도 쉽게 무너진다. 
 
두산아트센터와 서울프린지네트워크가 '프로젝트 빅보이'라는 이름으로 공동 발굴한 작품 <런닝머신 타는 남자의 연애갱생 프로젝트>는 '실연'이라는 돌발변수를 만나 평상심을 잃게 된 한 직장인의 일상에 주목하는 연극이다. 
 
사회생활은 런닝머신 위에서 뛰는 것에 비유된다. 런닝머신이 멈추기 전까지는 그 위에서 계속 달려야 하듯, 직장인들은 극한 상황에서도 사회생활을 끝까지 유지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극 말미, 무대에는 실제 런닝머신이 등장하고 주인공 남자는 그 위에서 달리다 결국 튕겨져 나간다. 견디다 못해 탈진한 남자에 대한 제작진의 안타까운 마음은 극중 내내 묻어난다.
 
5년차 직장인의 사회생활과 연애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극의 줄거리는 사실적이다. 하지만 무대나 연기양식 등으로 표현되는 극의 형식은 사실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최소화된 소품, 쌍을 이루는 캐스팅과 연기, 그리고 맛깔스런 대사 덕에 무한반복되는 남자의 일상은 식상하지 않게 그려진다.
 
7명의 회사원이 나와 무대 뒷쪽 벽에 걸려 있던 양복 웃도리를 꺼내 입으면서 극은 시작된다. 무대 중앙에 의자 셋이 놓여 있고 양쪽으로는 간이 테이블이 하나씩 배치돼 있다. 테이블 위에는 믹서기도 보인다. 간결한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믹서 갈고, 세수하고, 전화기 들여다 보고, 신문 보고, TV 보는' 일상의 모습이 효과적으로 표현된다. 최소한의 오브제를 활용하되 일상의 행동을 율동감 있게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둔 덕분이다.
 
배우들의 대사와 행동이 대구를 이룬다는 점이 눈에 띈다. 한 남자와 그의 분신 격인 '파편' 둘, 직장의 고참동료와 신참동료, 예측가능성을 강조하는 임원과 의외성을 강조하는 임원 등 인물들은 대부분 짝을 이루고 있다. 지나치게 도식적으로 비쳐질 수도 있었지만, 대사를 주거니 받거니 하거나 중얼거림을 서로 겹치게 함으로써 극의 단조로움을 피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실제 직장생활과 싱크로율 100%를 자랑하는 대사와 풍자다. 극 중반부터 나오는 회사 사무실 풍경은 전쟁터로 묘사된다. 업무에 시달리는 남자에게 누군가 '괜찮냐'고 물어보면 다른 쪽에서는 '네 걱정이나 해'라고 일갈한다. 날아오는 포탄을 키보드로 막고, 동료를 방패막이로 활용하며 직장인들은 하루를 견딘다. 느닷없이 포그가 깔리면서 '주말의 사인! 업무가 온다'라는 외침이 들릴 때 쯤이면 관객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작가의 뛰어난 관찰력도 빛난다. 성공을 향해 달리다 남성화된 여자상사의 모습, 퇴근하기만 하면 권투 연습에 몰두하는 신참의 모습, 휴대폰 속 아기 사진을 들여다보며 하루를 견뎌나가는 선배의 모습 등 무대 위 배우들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과 자주 겹친다. '은행원으로 30년 근무한 아버지를 보면서 은행원은 되지 않겠다고 했는데 정작 되기도 어려웠다' '선물을 할부로 사는 게 아니었어' 등의 자조적인 생활형 대사도 귀에 착착 감긴다.
   
극의 앞과 뒤에서 실연당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임을 분명히 밝히기는 하지만 사실 극 중 시간은 대부분 직장에서의 일과시간에 집중돼 있으며 극의 재미도 여기에서 나온다. 연출적인 재치가 넘치는 작품이지만 줄거리 면에서 보면 '실연당한 직장인에 대한 위로'로 극의 의미가 축소되는 것같아 다소 아쉬웠다. '위로하고 싶다'는 작연출의 의도는 '위로받고 싶다'는 관객의 의도와 쌍을 이룰 때만이 유효하다. 제목과 내용의 부조화도 아쉬운 대목이다.
 
작·연출 황이선, 출연 윤광희, 이우진, 오민석, 안영주, 한상훈, 김형섭, 박영기. 23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티켓가격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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