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민규·곽보연 기자]
삼성전자(005930)가 애플과의 특허소송과 관련한 '메가톤급' 반박증거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이를 제기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그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5일 <뉴스토마토>가 2006년 아이폰이 출시되기 6개월 전 삼성전자가 특허청에 출원했던 디자인 특허(출원번호:3020060022880) 도면도를 확인한 결과 아이폰과 매우 유사한 디자인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둥근 모서리 형태의 직사각형 외관에다 전면 대형 디스플레이(LCD)를 통한 터치패드 등 입력방식도 똑같다. 애플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을 수 있을뿐만 아니라 '카피캣'이란 모욕을 딛고 '창조자'로 우뚝 설 수 있었던 핵심자료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정작 미국에서 진행된 특허침해 본안소송에서 이를 증거자료로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다. 애플의 디자인 카피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었음에도 근거 자료로 활용치 않은 것이다. 게다가 이 특허는 '등록료 불납'을 이유로 지난 2010년 5월 자동소멸되기까지 했다.
당사자인 삼성전자가 이와 관련한 취재진의 문의에 답변을 피하고 있는 가운데, 특허청과 관련업계, 법조계 등에서 다양한 해석을 내놓으며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분분한 해석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삼성이 그 당시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라는 것이다. 기능만을 중시해 디자인은 외면했고, 이것이 결국 애플의 공세를 낳는 배경이 되면서 삼성이 굴욕을 당할 처지에 몰렸다는 주장이다. 또 삼성 내부적으로 책임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커 '쉬쉬' 하는 분위기로 흘러갔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양특허법인의 한 관계자는 "출원자(기업)가 유지비용을 지불하지 않아 출원된 특허가 소멸되는 경우는 잦다"며 "소멸된 경우 대부분은 출원자가 특허의 중요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IT업계의 한 관계자는 "문제의 디자인 도면이 실제 제품생산에 활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효용성이 없는 특허라는 판단에서 방기한 것일 수 있다"며 "휴대폰 제품의 특성상 라이프 사이클이 짧고, 제조업체들도 한번에 수많은 디자인을 등록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혹은 삼성전자가 포기한 특허권이 실효성은 소멸됐지만 법정 증거자료로서는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는 점이다. 복수의 법조계 관계자는 "특허권이 소멸된 이상 디자인에 대한 특허를 주장하긴 어렵지만 법정에서는 충분히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 지식재산권(IP) 센터와 법무팀 등 관련 부서는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이 때문에 애플과의 미국 특허전에서 완패를 당한 이유가 삼성의 '준비부족' 때문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당시 삼성전자가 출원한 디자인 특허를 심사했던 한효석 특허청 사무관은 "국내 특허는 미국 특허청에 따로 신청서를 내지 않는 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특허가 소멸된 걸 보면 삼성이 필요없다고 여긴 셈"이라며 "법원에 제출해 (애플이 문제제기한) 디자인을 이미 개발 중이었다는 자료로서는 충분히 근거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삼성전자가 애플과의 본안소송 과정에서 미디어에 공개한 F700 디자인이나 소니의 내부 문건, LG전자의 프라다폰 등보다는 상대적으로 공신력을 갖춘 증거자료가 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배심원 평결이 패소로 굳어진 상황에서 뒤늦게 등장한 핵심증거를 부각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난색을 표하며 특허권 출원 및 소멸에 대해 일체의 접근을 제한하는 삼성전자의 속사정에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오는 12월 대(對) 애플 본안소송의 최종판결이 패소로 확정될 경우 법정에서 이 자료를 반박 증거로 활용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공방이 불거질 가능성도 커졌다. 이 경우 담당부서인 법무팀과 지식재산권(IP) 부서 등은 '후폭풍'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포기한 디자인 특허권이 1조2000억원(배심원 평결 기준. 재판장 재량에 따라 3배까지 급증할 수 있다)이라는 막대한 금액의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삼성전자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취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1) 지난 2006년 삼성전자가 특허청에 출원한 디자인 특허 도면. 해당 특허권은 2010년 5월을 기점으로 소멸된 것으로 확인됐다. (자료=특허청)
◇(사진2) 애플 아이폰3와 삼성전자 갤럭시S의 비교 사진. 사진1과 비교해봤을때 갤럭시 초기 디자인은 아이폰보다 특허도면과 더 유사한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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