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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후원은 메달순이 아니잖아요”
2012-08-06 12:57:17 2012-08-06 12:58:32
[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우리나라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예상 밖의 선전을 거두고 있다.
 
런던 입성 당시 내걸었던 목표인 금메달 10개는 5일(현지시간) 진종오 선수의 2관왕 등극에 힘입어 대회 9일만에 조기 달성됐다.
 
메달밭인 태권도를 비롯해 레슬링, 여자핸드볼, 남자체조 등 강세종목 일정이 대회 막바지에 몰려 있어 올림픽 역대 사상 최대성적이 확실시된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땀과 눈물, 투혼이 어우러진 결과다.
 
특히 지금까지 획득한 금메달 10개(사격3개·양궁3개·유도2개·펜싱2개) 모두가 이른바 비인기 종목에서 나온 터라 그 배경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중에서도 펜싱과 사격, 남자양궁은 사실 선수단 내에서도 크게 기대치 않았던 뜻밖의 수확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진 것처럼 이들 비인기 종목의 선전에는 국내 대기업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다.
 
한화그룹은 선수가 오갈 데 없어지자 실업팀 갤러리아사격단을 창단하는 등 지난 2002년부터 물심양면으로 사격 선수단을 응원해왔다. 특히 2008년엔 사격연맹 창설 이래 처음으로 기업배 사격대회(한화회장배 전국사격대회)를 주최하는 등 김승연 회장의 사격에 대한 애정은 자사 프로야구단을 능가한다는 전언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 사격대표팀은 이번 올림픽에서 금3, 은1로 역대 올림픽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김 회장이 마치 자신의 일처럼 뛸 듯이 기뻐한 것은 그간의 노력에 비춰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한화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현대차 그룹은 세계 최강 양궁을 27년간 뒷바라지 해왔다. 정몽구 회장에 이어 정의선 부회장까지 대한양궁협회를 이끌면서 이 기간 쏟아 부은 금액만 300억원이 넘는다. 1985년 남자 선수단에 이어 1993년엔 여자 선수단도 창단했다.
 
특히 이번 올림픽에서 여자 부분(개인전·단체전)은 물론 남자 개인전까지 금메달을 독식하면서 현대차는 그야말로 잔칫집 분위기다. 기보배 선수가 2일(현지시간) 슛오프 끝에 금메달을 확정지은 뒤 정 부회장에게 달려가 부둥켜안는 모습은 국민들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SK그룹은 펜싱의 숨은 조력자다. 사실 이번 올림픽 최대 이변은 펜싱이었다. 더구나 대회 초 신아람 선수의 오심 논란을 뒤로 하고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합작하며 기적을 연출했다. 펜싱 최강국 이탈리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성적표다.
 
SK는 유럽과의 신체조건을 이유로 모두가 고개를 흔들 때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2003년 대한펜싱협회를 맡으면서부터 손길승 명예회장이 든든한 후원자를 자처했다.
 
또 지난해 434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국내 첫 전용 경기장을 짓는 등 핸드볼에도 아낌없는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또 한 번의 ‘우생순’ 드라마가 기대되는 이유다.
 
이외에도 삼성그룹은 배드민턴, 레슬링, 태권도, 탁구, 육상 등을 각 계열사별로 후원하고 있다. 비록 배드민턴이 아쉽게 노골드를 기록하며 분루를 삼켜야 했지만, 태권도와 레슬링, 탁구 등 전통적 효자종목들이 남아 있어 삼성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기업들의 후원은 수치도로 확인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0대 그룹의 스포츠 관련 지원액은 총 4276억원으로 이는 문화체육관광부 체육예산(8403억원)의 절반을 상회한다. 특히 아마추어 비인기 종목의 경우 선수단 운영 471억원, 협회 지원 140억원, 주요 국제대회 유치 및 개최 714억원 등 1325억원이 투입됐다.
 
문제는 해당종목의 성적순으로 이들 기업의 후원을 평가하는 국내 여론이다. 벌써부터 상당수 언론들은 관련 기사들을 쏟아내며 기업의 성적 매기기에 들어갔다. 초점이 기업으로 향하면서 이들은 부담감에 과도한 경쟁에 돌입했다. 뒤늦게라도 회장을 비롯한 주요관계자들이 런던으로 급파되고, 성적이 날 때마다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자와 이 문제를 화제로 얘기하던 해당기업 관계자는 나즈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후원은 메달순이 아니잖아요.” 그러면서 이어진 설명. 
 
“수십 년간 남몰래 비인기 종목을 뒷바라지 해온 진정성을 봐 줬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성적이 중요하다 해도 후원마저 같은 평가대에 오르면 과연 누가 비인기 종목군에 수십 년간 지원을 하겠습니까?”
  
황무지에 가깝던 우리나라 비인기 종목군을 일약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그들의 노력과 후원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그야말로 후원은 성적순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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