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공연리뷰)안주하는 삶, 결국 허탕치다
장진의 연극 <허탕>
2012-07-19 10:31:53 2012-07-20 16:07:16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독특한 색깔로 무장한 채 대중문화계의 전방위에서 활약 중인 연출 장진이 13년 전에 선보인 연극 <허탕>을 앞세워 무대로 돌아왔다. <허탕>은 감옥이라는 갇힌 공간에서 펼쳐지는 고참죄수와 신참죄수, 여자죄수의 기묘한 동거이야기다.
 
역시나 '아이디어 뱅크'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을만큼 작품에서는 장진 특유의 과감한 무대 연출이 돋보인다. 하지만 기대만큼 아쉬움도 크다. 다소 성긴 서사는 설익은 연기로 인해 그 약점을 쉽게 드러내고 만다.
 
현실과 판타지 사이 어딘가에 있을 법한 감옥이 이 작품의 배경이다. 곳곳에 드리워져 있던 쇠사슬이 거두어지면서 극은 시작되고 감옥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감옥이라지만 마치 고급호텔처럼 안락한 공간이다. 감시받는다는 느낌만 빼면 터무니 없이 평온하기까지 하다. 주목할 만한 점은 관객석 곳곳에 캠코더와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니터를 통해 시야각의 사각지대까지 구석구석 보면서 관객들은 자연스레 감옥의 감시자로서 극에 동참하게 된다.
 
차례차례로 감옥에 들어오는 죄수들은 '탈출'과 '안주'를 두고 갈등한다. 감옥에서 지낸 지 오래된 고참죄수는 여유롭게 클래식을 들으며 커피를 홀짝이지만 내란죄로 이제 막 감옥에 발을 디딘 신참죄수에게는 이 모든 게 '멘탈붕괴' 상황으로 여겨질 뿐이다. 하지만 결국 신참죄수도 우여곡절 끝에 이곳 생활에 익숙해진다. '그저 커다란 감옥에서 작은 감옥으로 들어왔을 뿐'이라는 고참죄수의 말에 설득력이 생긴다.
 
 
 
 
 
 
 
 
 
 
 
 
 
 
 
 
 
 
 
 
 
그러던 중 미모의 여자죄수가 감옥에 들어오면서 극은 또 다른 국면을 맞게 된다. 지옥인지 천국인지 모호했던 감옥생활이 그녀의 등장을 계기로 송두리째 흔들린다. 선한 성품과 사랑스러운 외모의 소유자이지만 백치에 가까운 그녀는 감옥이 카오스 상태에서 코스모스 상태로 바뀌면서 급기야 희생양이 되고 만다.
 
연극 <허탕>을 보다보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와 사랑을 위해 자신을 던진 '예수'의 모티브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물론 성경보다는 무대 위 이야기가 훨씬 현실적이다. 세상이라는 이름의 감옥에서 사랑의 실험을 하지만 결국 허탕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 틀거리는 씁쓸하지만 분명 매력적이다.
 
아쉬운 점은 인물의 정당성 구축이다. 도식적인 캐릭터에 살이 붙지 않아 생긴 약점들이 보인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을 때마다 극은 삐걱거리고 어느 순간 지루해진다. 세상을 풍자하는, 구조주의적인 이야기인만큼 아무래도 사실적인 극과는 거리가 멀 수 밖에 없다. 점점 벌어지는 이야기의 틈새를 커버해야 하는 것은 결국 배우와 연출의 몫이다. 9월2일까지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작•연출 장진, 출연 김원해, 이철민, 김대령, 이세은, 송유현, 이진오. 일반석•죄수석 모두 3만5천원.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