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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의혹)"키코 소송, 한국만 은행 손 들어줘"
독일·이탈리아·인도 은행에 엄격..일본도 50% 이상 책임인정
2012-02-08 14:51:12 2012-02-10 10:36:55
[뉴스토마토 특별취재팀] 2008년 하반기 일명 '키코쇼크'로 아노미 상태에 빠진 중소기업들이 마지막으로 몰려가 호소한 곳은 법원이었다.
 
중장비 제조업체인 (주)수산중공업도 그 중 하나로, 키코 소송과 관련, 처음으로 법원의 판결을 받았다. 수산중공업은 2008년 11월3일 키코상품을 판매한 우리은행과 씨티은행을 상대로 모두 180억여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민사 21부(재판장 임성근 부장판사)는 2010년 2월8일 원고패소로 판결했다.
 
◇"은행에 3억원 지급하라"
 
재판부는 오히려, 씨티은행이 계약해지에 대한 결제금을 지급하라며, 수산중공업을 상대로 낸 반소를 받아들여 "수산중공업은 씨티은행에게 3억16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쟁점별 법원 판단>
쟁점  1심  2심
계약의
불공정성 
불공정계약 아님
불공정계약 아님 
환헤지
부적합성
투기 목적 오버헤지
(Over Hedge)아닌 한
적합성 인정                 
투기 목적 오버헤지
(OverHedge)아닌 한
적합성 인정
옵션의 가치불균형성   
계약금액 대비 0.3~0.8%에 불과부적법하다고 볼 수 없음 
다른 금융상품에 비해 부당·과다하고
볼 수 없음 
제로코스트
   위법성    
은행들은 영리기업 계약 통해 
일정한 이익을 얻는 것은 당연.공개의무 없음
은행이 수수료를 전혀 취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없음. 공개의무
없음 
고객보호
의무 위반
개별 기업 여건에 맞춰 설명의무 있음
위반시 손해배상 책임 인정 
고객의 거래 경험, 재무상황 등 고려 설명의무 있음
위반시 손해배상 책임 인정
 
재판부는 먼저 키코 계약 구조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수산중공업 주장에 대해 "각 통화옵션계약에 따라 환율 하락으로 인한 피고들의 손실은 제한되는 반면 상승으로 인한 원고의 손실은 무한대로 확대될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면서도 "각 통화옵션계약의 구조는 환율 변동의 확률적 분포를 고려해 원고와 피고들 쌍방의 기대이익을 대등하게 한 것"이라며 계약 구조 자체가 불공정 계약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은행들이 계약 당시 상품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계약이 무효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피고들이 계약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통화옵션상품을 제안하고 그에 대한 설명자료를 원고에게 제시한 점, 거래확정서에 조건·만기 환율 등에 따른 원고의 손익을 설명한 점 등이 인정된다"며 이를 배척했다.
 
민사 21부의 이 같은 판단은 이후 중소기업들이 제기한 소송에서도 대부분 채택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1부(재판장 여훈구 부장판사)와 민사22부(재판장 박경호 부장판사), 민사31부(재판장 황적화 부장판사), 민사32부(재판장 서창원 부장판사) 등 4개 재판부는 2010년 11월29일, 118개 기업이 낸 키코 소송 91건에 대해 일제히 선고했다. 이 날 118개 기업 가운데 99개 기업이 전부 패소했고, 19개 기업이 일부승소를 얻어 620만원에서 많게는 약 14억원의 배상을 받는 데 그쳤다.
 
◇118 기업 중 99개 기업 전부패소
 
재판부는 먼저 "수출기업들은 발생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하는 환율의 안정적 변동국면에서는 높은 행사환율의 이익 또는 환차익을 얻고, 발생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예상하는 환율의 급격한 하락 또는 상승의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위험을 부담하는 것으로서 이익과 위험이 상호 대가관계를 이루고 있어 키코 계약이 일방에게 불공정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계약체결이후 사후적인 시장 상황의 변화만을 이유로 계약상 책임을 부정한다면 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질서와 민법의 대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오히려 우리 경제질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판단, 환율의 변동성에 대한 기망·착오 등을 이유로 해지한다는 중소기업들의 주장도 배척했다.
 
재판부들은 다만 "고객 보호의무 위반으로 인한 불법행위 책임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판단할 사유"라고 판시하면서 은행의 책임이 인정되는 경우에도 투자를 결정한 기업의 경영책임을 감안, 배상액을 손실의 20∼50%로 제한했다.
 
또 재판부들은 "일반적으로 금융기관은 위험감수능력이 낮은 거래상대방에게 장외파생상품 거래를 권유하는 경우, 거래상대방의 투자목적, 재산상황 및 투자경험 등에 비추어 거래상대방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인정될 때에는 거래를 권유해서는 안 되고(적합성의 원칙) 당해 거래의 내용, 거래에 따르는 위험 및 잠재적 손실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 요인 등 거래상의 중요사항을 거래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고 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설명의무)"며 설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신의칙 반하거나 불공정 상품 아니야"
 
수산중공업의 항소로 열린 키코 소송 항소심에서도 법원은 ▲계약 당시의 환율 추이와 전망을 고려한 환율의 확률적 분포 등에 비추어 신의칙에 반하거나 원고에게 현저히 불공정한 상품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 ▲거래목적· 다수의 환 헤지 거래 경험·외화유입액 등 재무상황에 비추어 피고들의 계약권유가 적합성 원칙이나 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은행측의 손을 들어줬다.
 
특히 은행들의 설명의무 위반 여부와 관련, 키코 계약시 수산중공업에게 계약체결에 드는 수수료가 없는 '제로코스트'상품이라고 은행들이 속인 점에 대해서도 "제로코스트'란 은행이 취하는 풋옵션의 이론가가 동일하다는 뜻이 아니라 은행이 별도 프리미엄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라며 "은행이 영리기업인 이상 필요 비용과 이윤을 수취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은행감독업무 시행규칙 등에 의하면 파생상품 거래 당사자인 은행은 수수료의 구체적인 규모를 공개할 의무가 없으므로, 은행들이 중소기업들을 기망했거나 이로 인해 중소기업이 착오를 일으켰다고 볼 수 없다"고 해석, 1심 판결을 유지했다. 1심에서 패하거나 일부승소한 중소기업들이 낸 다른 항소심에서도 법원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비슷한 사안을 두고 외국 법원은 상반된 판단을 내리고 있다.
 
◇ 독일 연방대법원 "은행에 대한 요구수준 높아"
 
독일연방대법원은 2011년 3월 이른바 'CMS 스프레드 레더 스왑계약'사건에서 "CMS 스프레드 래더 스왑계약과 같이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진 금융상품의 경우, 조언은행은 이와 같은 계약을 체결하는 고객이 높은 위험을 감내할 용의가 있다는 전제에서 곧바로 출발해서는 안된다"며 "고객의 투자목표에 실제로 부합하는 적합한 상품만을 추천해야 하는 것이 투자조언자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외국의 관련 사례>
쟁점 독일 이탈리아 인도 일본
고객보호의무
복잡·위험한 상품의 은행에 대한 요구    수준은 특히 높음
  위반시 불완전 판매·부정행위·형사상 공모 및 사기 등 혐의 적용  
제로코스트                 
 
기업의 파생상품채무 은행  지급 중지
'숨은 수수료' 은행 사기혐의로 기소
   
기망    
형사상 사기 등 혐의
적용
 
손해배상비율
      은행 책임50% 이상 인정
 
또 "투자조언자가 투자상품을 추천하기 전에 고객의 투자목적 및 위험수용 용의에 대해 문의하지 않는다면, 투자조언자는 고객이 투자를 결정하기 전에 자신이 설명한 금융상품의 위험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모든 면에서 확신할 수 있을 때에만 투자자에게 적합한 상품을 추천할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CMS 스프레드 래더 스왑계약과 같이 복잡하게 구조화되고 위험한 상품의 경우 조언은행에 대한 요구수준은 높다"고 설명했다.
 
독일연방대법원은 특히 "조언은행은 고객의 입장에서 무한대의 손실 위험이 '이론상으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금리차이'의 변동에 따라 현실적이며 파멸적일 수 있음을 고객에게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그리고 일부러 과소평가하지 않는 방법으로, 특히 고객이 보는 앞에서 명백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우리 법원이 키코 같이 복잡한 상품을 권유할 때 은행들에게 주문하는 적합성의 원칙이나 설명의무 등의 요건에 비해 훨씬 엄격한 책임을 은행들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우리 법원이 상대적으로 관대하게 본 이른바 '제로코스트'에 대해서도 외국법원들은 계약효력의 중지 내지는 사기로까지 해석하고 있다. 2011년 9월16일자 로이터 통신이 보도한 사례가 그렇다.
 
◇이탈리아 '알려지지 않은 수수료'는 사기
 
이 통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은행들이 '알려지지 않은 수수료'가 포함된 파생상품 계약을 지방정부들과 맺고 이에 대해 지방정부들이 은행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탈리아 최고법원은 "지방정부가 계약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할 근거가 있다고 여겨질 경우 파생상품 채무를 은행에게 지급하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또 2009년 8월27일자 블룸버그 통신은 은행들이 스왑상품을 밀라노 지방정부에 팔면서 수수료가 얼마나 드는지를 알리지 않은 사건에서 이탈리아 검찰들이 은행들을 수사해 '숨은 수수료' 1억100만 유로를 밝혀내고, 은행 네 곳을 사기혐의로 기소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인도에서도 외환 파생상품과 관련, 은행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었던 예가 있었다. 오릿사 고등법원은 2008년 기업들이 은행들과 외환 파생상품 계약을 맺었다가 피해를 본 사건에서, 오릿사 고등법원이 중앙수사국으로 하여금 은행들을 상대로 소송을 내 책임을 묻도록 판결했다.
 
◇인도, 파생상품 판매시 의무위반 은행 '사기' 수사
 
이에 따라 중앙수사국이 파생상품들과 관련, 은행들에게 불완전 판매·외환관리법 위반·부정행위·형사상 공모 및 사기 등의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실시하자 민사소송에서 패소가 확실시 된다고 판단한 은행들이 대법원으로부터 잠정적 유예조치를 얻어 법정외 합의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예가 있었다. 지난해 8월28일자 일본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기업들이 원하지 않았지만 은행들이 리스크 상품을 융자와 같이 판매하거나 집요한 권유에 의한 판매, 손실에 관한 불충분한 설명 등이 있었던 외환파생상품에 대해서는 ADR을 통해 은행들에게 손해금액의 50% 이상을 지급하도록 조정한 사례가 적지 않다. 우리 법원 보다 많은 배상책임을 은행에게 지우고 있는 것이다.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에 따르면, 키코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 201개사가 은행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으며, 이들 중 185개사에 대해 판결이 선고됐다. 현재 129개사가 항소심을 진행 중이며 11개사가 대법원 상고심에 계류 중이다. 또 8개 중소기업은 아직도 1심이 진행 중이다. 
 
공대위 관계자는 "현재 공대위에 가입된 회원사들만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실제 소송 기업은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은행들이 대출 압박 등을 앞세워 소송에 참여한 기업 상당수에게 소취하를 종용하고 있으며, 약 70개 기업이 소송을 취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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