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통팀] 내년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앞두고 유통, 식품, 패션 업계 등은 업종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미국의 수출입 제품에 대해 관세를 철폐하는 것을 주내용으로 한 FTA에 따라 시장이 확대되는 이점이 존재하는 반면, 국내외에서 치열한 가격 및 품질 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이들 상품을 판매하는 백화점과 마트 등 유통업계는 FTA 발효로 인한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FTA와 관련, 각 업종별 상황을 점검하고 위기 대처 전략 및 발전 방안을 살펴본다.
◇ 백화점과 대형마트, "큰 영향 없을 것" 안도
국내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은 한미FTA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 분위기다.
백화점의 경우 미국 직수입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고, 대형마트도 미국산 농축산물 부문에 이미 개방된 상품 분야가 많고 축산물의 경우 10여년간 2% 내외로 관세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특히 백화점과 대형마트 업계는 미국 대형 유통기업 국내 진입 가능성을 낮게 보면서 입점 제품에 대한 가격에만 다소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유통업자들이 관세만큼의 가격 부문을 원가에 포함시킨다면 소비자가 실제로 가격 인하를 체감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이선대 롯데백화점 홍보팀장은 "일부 미국 수입 제품이 저렴해질 수 있겠지만 대부분 백화점보다는 마트입점 제품이어서 국내 백화점쪽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수입관세 철폐에 따른 해당 품목의 수입물량 확대를 계획중이다.
우선 오렌지, 체리, 포도 등 미국산 과일은 관세가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 수입 과일 물량을 확대할 예정이다. 체리는 현재 24%에서 무관세가 적용되고, 포도는 45%에서 24%, 오렌지는 50%에서 30%, 레몬은 30%에서 15% 등 관세가 인하된다.
축산물에서는 소비자가 가격 인하를 체감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소고기는 15년, 돼지고기 10년 등 매년 2%대의 관세를 균등하게 철폐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대형 포장전문업체들이 관세인하에 대한 부분을 원가에 일부 반영시킬 가능성이 커서 가격 인하 효과는 낮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올해 국내 구제역 파동으로 삼겹살 공급이 떨어지자 수입 삼겹살에 대해 일시적으로 무관세 혜택을 줬지만, 미국산의 경우 패커들이 원가를 10% 가량 인상시키면서 가격 인하폭이 크지 않았다.
이에 마트측은 축산물 부문의 현 수입육 비율은 유지하면서 기존 호주산을 줄이고 미국산 비중을 늘리는 방침을 고려하고 있다.
이밖에 내년부터 15%의 관세가 철폐되는 와인에 대해 현지 농장과 연계한 단독 상품 개발 등 다양한 사업을 구상중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편의점 등 유통기업 자체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하는 상황"이라며 "단지 해당 업계에 입점한 국내 상품 생산 및 제조업체들이 영향을 받고 대처 방안을 모색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마트 입점 수입상품의 관세만큼 가격이 낮아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그 폭은 크지 않을 것 같다"며 "앞으로 마트가 자체적으로 해외소싱이나 단독 상품 개발 등 다양한 사업 확장을 고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패션·섬유, 장미빛 전망은 '일장춘몽'에 그칠 가능성
한미 FTA 발효로 그동안 높은 관세가 매겨졌던 섬유 산업에 큰 혜택이 주어질 것으로 기대되지만 원산지 규정 때문에 그 실질적인 효과는 미진할 전망이다.
현재 섬유분야는 대미교역물품 중 고관세 적용, 평균 13.1%에서 최대 32%의 관세를 지불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미 FTA 발효시 미국에 수출하는 국내 섬유 제품 중 87% 정도가 관세 철폐 효과를 얻게 된다.
인조스웨터(32%), 남성모직정장(17.5~27.3%), 면양말(13.5%) 등 기존에 높은 수준의 관세가 매겨졌던 완성품의 관세도 즉시 사라진다.
특히 지난해 1억7038만달러 수준으로 섬유 부분 수출량이 가장 많았던 '편물'과 같은기간 1억3349만달러 규모로 수출한 '폴리에스테르' 섬유 산업들도 관세 철폐로 인해 가격경쟁력 효과를 얻을 전망이다.
산업연구원은 이번 한미 FTA 효과로 우리나라의 연간 대미 섬유 수출이 연간 약 2억달러 증가할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관세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각 기업들이 원산지 규정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에 이같은 장밋빛 전망의 실효성에 대해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 FTA지원센터 관계자는 "단섬유 측면으로 봤을 때 관세혜택을 통한 수출효과는 뚜렷하게 예상할 수 있지만 아웃소싱을 많이 하는 완제품(의류 등)들은 관세혜택을 못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FTA 체결국간에 생산한 원사를 사용해 최종 완제품으로 수출할 때까지 모든 공정을 역내에서 수행한 물품만 관세 철폐를 인정하는 '얀포워드(Yarn Forward) 규정' 때문에 그 혜택의 폭이 제한 된다는 설명이다.
보통 완제품 기업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 혹은 동남아에서 원단을 쓰거나 해외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기에 관세 혜택을 받지 못할 기업이 많을 것이라는 후문이다.
해당 업계는 또 수출품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의류제품의 가격 인하 효과도 거의 없어, 소비자들도 가격인하를 체감하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리바이스 청바지 관계자는 "수입 물품 대부분이 중국과 태국 등 제 3국에서 만들어 지기 때문에 관세혜택을 받을 수 없다"며 "토미힐피거, DKNY, 캘빈클라인 등도 마찬가지다"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 식음료, '한국의 맛' 승산 있다
내년 한-미 FTA가 정식 발효되면 라면, 막걸리, 고추장 등이 전략품목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미국의 수입 규모는 지난해 기준 1조9681억 달러로 세계 수입 시장의 12.8%(중국 9.1%)를 차지하는 단일국으로는 세계 최대 시장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3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탄탄한 교포 시장과 최근 한류 붐을 타고 있는 식품 분야는 한·미 FTA를 계기로 큰 폭의 수출 확대가 기대된다.
특히 김, 배, 라면 등을 중심으로 비스킷류, 고추장, 된장, 막걸리, 홍삼, 간장 등이 FTA 관세철폐를 바탕으로 미국 수출을 주도할 전략 품목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라면 등 면류(6.4%), 고추장·된장 등 장류(6.4%), 김 등 조제식료품(6.4%) 등은 6% 이상의 높은 관세가 철폐돼 FTA 효과가 기대된다.
특히 라면의 경우 동양문화와 한국음식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매운 맛을 특징으로 한 제품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2005년부터 미국에 라면을 수출하고 있는 농심은 지난해 전년 대비 26% 이상의 매출 성장을 달성했다.
미국 진출 초기 주요 소비층은 교포 위주였으나 현재는 북미지역 코스트코 매장에 농심제품 특별 매대를 설치해 판매하는 이벤트를 전개하는 등 미국 현지인에게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어 주 소비층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또 배(kg당 0.3센트), 비스킷류(4.5%), 수프·죽(3.2%), 막걸리(리터당 3센트), 간장
(3.0%) 등도 FTA 발효 시 즉시 관세가 철폐돼 우리나라 식품 기업에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수출규모는 작지만 버섯, 고춧가루, 빙과류, 사탕, 빵 재료, 김치 등은 최근 수출 증가세 및 높은 관세 철폐로 FTA 수출 유망품목으로 주목된다.
버섯은 ‘kg당 8.8센트+20%’, 빙과류는 ‘kg당 50.2센트+17.0%’또는 20.0%, 김치는 11.2%, 사탕은 5.6%, 빵 제조용 재료는 8.5%, 고춧가루 등 고추류는 kg당 5.0센트의 관세가 발효 이후 조기 철폐된다.
아이스크림을 제외한 빙과류의 경우 발효 연도에 따라 기준 물량이 있어 물량 이내의 수입품은 무관세로, 물량 초과의 수입품은 단계적으로 관세를 철폐하고 점차 무관세 물량이 확대되다 발효 10년차엔 물량 제한 없이 관세가 철폐된다.
커피조제품이나 참치, 인조꿀 등은 최근 수출이 증가 추세이나 관세 철폐에 다소 시간 소요돼 FTA 효과가 중장기에 걸쳐 나타날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국내시장에서는 와인, 치즈, 삼겹살 등의 품목들이 상대적으로 값이 싼 미국산 식품들과 가격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시장의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산 와인의 경우 한·EU FTA와 마찬가지로 FTA 발효와 동시에 15%의 관세가 철폐된다.
현재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산 와인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높은 상태지만 최근 상대적으로 가격은 저렴하고 품질이 좋은 미국, 호주, 칠레 등 와인이 국내 소비자들에게 소개되면서 비유럽 지역의 소비가 늘어나는 추세다.
대표적인 고관세 식품인 치즈 등 유제품도 점진적인 관세철폐로 국내 기업과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FTA 체결로 인해 치즈는 36%에 달하는 관세가 10년에 걸쳐 철폐되며 버터는 현 89%의 관세가 10년 후 사라진다.
특히 우리나라 국민들이 좋아하는 생삼겹살 가격도 10년간 2.2%씩 관세가 인하된다. 생삼겹살은 냉동 삼겹살에 비해 수입액은 작지만 선호도는 더 높은 편이다. 생삼겹살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이중 45%를 미국에서 들여오고 있다.
이외에도 포도, 체리, 자몽, 오렌지 등 점차 수요가 늘고 있는 과일류와 커피를 비롯해 주스와 밀가루 등 유기농 식품 수입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돼 국내 식품기업들과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 화장품, 제품·가격 경쟁력 확보해야
국내 화장품 기업은 한미 FTA에 수입 화장품 대거 유입에 따른 제품 및 가격 경쟁력 확보 방안을 고민하는 분위기다.
소비자로서는 수입 화장품 물량이 대폭 늘어난다는 전망에 선택의 폭이 넓어지지만, 기존 판매가보다 크게 낮아지지 않아 가격 인하를 체감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내년 1월 한미 FTA가 발효되면 크리니크와 키엘 등 미국계 수입 화장품에 대한 관세가 없어지면서 수입량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계 수입 화장품 대부분이
이미 관세가 없거나 낮은 수준이어서 현재 상황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화장품 품목에 대해 8% 가량의 관세가 철폐, 세율이 낮아지는 것이어서 제품 경쟁만큼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화장품 산업은 세계 100대 화장품 기업 중 간신히 3개 업체가 이름을 올리는 등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낮은데다, 미국의 중저가 제품이 수입되면 그동안 저렴한 가격으로 버텼던 중소업체들은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FTA 발효를 기점으로 미국계 화장품 기업이 막대한 자본과 마케팅 전략으로 국내 시장 확대에 나선다면 국내 화장품 기업이 구축한 국내 시장마저 외국 기업에 잠식당하는 위기가 우려된다.
이와 관련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국내외에서 화장품 시장 확보를 위한 경쟁이 심화되면서 제품 개발을 위한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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