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형주기자] 유럽 재정위기에서 촉발되고 미국 더블딥 위기로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글로벌 금융-재정위기가 최근 국내 금융시장을 패닉에 빠뜨리고 있다. 금융 패닉은 시장불안에 그치지 않고, 고물가와 가계부채, 재정과 경상수지 악화, 부동산시장 침체, 성장잠재력 약화 등으로 먹구름이 짙어가고 있는 국내 거시경제에도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글로벌 및 국내 경제·금융위기의 실체를 진단하고 해법을 찾아보는 기획을 연재한다. [편집자] ⑤
그리스 디폴트(채무상황 불이행) 우려에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가 실물경제까지 옥죄는 징후가 미국과 유럽의 각종 주요 경제지표들을 통해 속속 포착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2008년 리먼사태에서 빚어진 세계 경기침체를 무난히 버텨낸 것으로 평가받는 한국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다시금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3년전 우리나라가 세계 금융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국내기업들의 수출이 늘어나면서 무역수지가 개선된 데 힘 입은 바 크다.
냉각된 투자심리에 안전자산인 달러로 수요가 몰리면서 원화가치가 급락, 역설적으로 국내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강화시킨 것.
국내 산업구조의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돼 온 수출 의존형 경제가 되레 구원투수 역할을 한 셈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같은 시나리오가 성립될 지는 미지수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수록 수출시장에서의 수요가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융계와 학계 전문가들은 국내경제가 단기적으로는 환율 혜택을 누릴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때 해외 수요 둔화로 인해 수출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진영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는 29일 "글로벌 경기가 지속적인 하락국면으로 가고 있음을 감안할 때 국내기업들의 수출이 차츰 어려워지는 상황으로 갈 공산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지금껏 우리 경제가 수출을 통해 엄청난 무역수지 흑자를 내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위기 때도 수출만으로 경기부양 효과를 낼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쉽지않다'고 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 경상수지 흑자폭 축소..수출둔화 탓
이날 발표된 8월 경상수지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수출 악화가 현실화될 것이란 우려에 불을 댕겼다.
한국은행은 8월 경상수지 집계 결과 4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간신히 적자를 면한 수준에 그친 것이다. 글로벌 경기둔화로 수출이 줄고 수입은 늘면서 상품수지가 큰 폭 감소한 까닭이다.
앞서 1일 지식경제부가 발표한 8월 무역수지 역시 1년래 최저 수준인 8억달러 흑자에 턱걸이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정부와 한은은 당초 적자를 기록할 것이란 예상 대비 선전한 결과라는 입장이지만, 다음달 초 발표될 9월 무역수지를 기다리는 시장의 시선은 불안하다.
정부가 목표로 한 9월 수출 전년 대비 두 자릿수 증가, 무역흑자 규모 20억달러 이상을 달성하는 데 난관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듯 정부는 수출업계와 함께 글로벌 재정위기의 전방위 대응체제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증권·금융업계에선 유럽·미국발 경제위기로 무역·경상수지 악화를 넘어 경제성장률 또한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임노중 솔로몬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미국에 이어 대(對)중국 수출도 불안한 데다, 투자·소비둔화로 내수 역시 크게 좋아질 수 없는 상황"이라며 "현재로선 국내경제가 좋아질 요인이 별로 없다"고 평가했다.
이런 상태에서 대외 악재가 더욱 불거질 경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예상보다 많이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임 이코노미스트는 "그리스는 어떻게든 디폴트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며 "이렇게 될 경우 정부가 당초 목표로 한 내년 4% 성장은 커녕 3%선도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 韓銀, 가계부채·물가 잡기 '비상'
글로벌 경기 불안에 한은의 금리정상화 노력도 비상형국이다. 한은은 최근 대외 불확실성을 이유로 기준금리를 3개월째 연 3.25%로 동결했다.
경기침체 우려가 확산되자 물가 상승 제어, 가계부채 연착륙 등 기존 계획을 보류하기로 방침을 바꾼 것으로 해석된다.
금리를 제 때 올리지 못한 한은이 물가와 가계부채 관리 모두에 실패했다는 비판에 시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쯤되자 업계에선 금리인상 사이클이 사실상 끝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김의찬 대신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현실적으로 금리를 연내 다시 올리려면 유럽과 미국의 상황이 호전될 기미를 보여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물가불안을 좌시하자니 인플레 기대심리가 골칫거리다. 한은이 전날 발표한 '9월 소비자동향지수'에서 기대인플레이션율이 약 3년만에 최고치까지 올라선 점이 이를 반영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 들어 처음으로 4%선을 넘어선 이후 줄곧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한술 더 떠 지난달엔 5.3%까지 치솟았다.
한은의 연간 물가안정 목표치인 4%에 근접은 고사하고 되레 격차를 벌리는 추세다. 이같은 물가 상승세는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9월 소비자물가 역시 못돼도 4% 초반은 기록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김의찬 이코노미스트는 "물가는 8월 정점을 찍고 이달부터 상승세가 점차 걷힐 것으로 보이지만, 매달 꾸준히 4% 이상 오르는 현 추이가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며 "한은의 통화정책 실기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물며 한국경제의 고질병으로 꼽히는 가계부채의 심각성은 더 하다. 지난 2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1050조원으로 사상 최대치에 달했다. 가구당 6042만원의 빚을 지고있는 셈.
또, 2007~2011년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45.8%에서 157%로 상승, 같은 기간 개선세를 보인 미국, 일본, 독일 등과는 거꾸로 가는 형국이다.
빚은 점점 늘어가는데 이를 상환할 능력은 취약해지고 있는 것. 전문가들은 부채 문제가 부각될 수록 우리나라의 내수 소비는 더욱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가계소득의 증가세는 뚜렷치 않은 반면 빚은 늘어나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 30일 경기선행지수 발표 '주목'
30일 발표를 앞둔 8월 경기선행지수는 단기적으로 대외 불안감이 실물경제로 파급되고 있는 지 여부를 가늠하는 데 중요한 지표다.
증권업계에선 지수 구성항목 중 8월 자본재수입액과 구인구직비율 등이 전달보다 증가할 것으로 예상, 경기선행지수의 상승세를 기대하는 눈치다.
김의찬 이코노미스트는 "8월 자본재수입액은 전월 대비 9.2% 증가할 것으로 보이고, 구인구직비율 또한 고용시장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상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경기둔화 우려감이 팽배했던 8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15만명 증가해 2008년 이후 최고치까지 늘었고, 실업자 수는 4만5000명 감소해 지난 1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김 이코노미스트는 "고용 증가와 실업 감소는 실업률 하락으로 이어져 8월 실업률은 3.1%로 완화됐다"고 밝혔다.
8월의 위기감이 아직 기업의 생산과 고용 활동까지 위축시킬 정도로 확산되진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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