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우리나라 전체 가계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80%에 육박하고 건설 관련업은 전체 경제규모의 18%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주택시장의 작은 변화에도 개인은 물론 국가 전체의 경제상황이 휘청하는 이유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정부는 건설업체들과 정치인의 요구, 일부 언론사들의 편향된 부동산 관련 보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십상이다.
2000년대 들어 정부는 시장이 과열되면 진정책을, 침체되면 부양책을 번갈아 펴왔다. 근본 해결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혼란이다.
◇ 부동산정책은 업자위한 정책..근본해결책 없는 헛된정책만 펴온 정부
이 과정에서 부동산 정책은 경기가 좋아야 유리한 주택 소유자, 부동산 개발업자들을 위한 정책으로 변질됐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특히 올해는 이같은 편향된 정책이 유례없는 후유증으로 나타나고 있다. 임대차 시장의 전세대란은 절정에 달했고, 주택매매는 자취를 감췄다.
집값이 서서히 하락세를 보이자 다급해진 정부는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대폭 축소하고 네 차례에 걸쳐 부동산 시장에 얼마 남아있지 않은 규제마저 모두 풀어버렸다.
하지만 '안먹어본 약이 없는' 시장은 이제 약발이 통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런데도 최근 일부 언론은 무주택자들의 집없는 설움을 연일 강조하며 '내 집마련의 기회'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의 80%가 넘으니 서러움 받지 말고 "조금 더 대출받으면 집 살 수 있다"고 꼬드긴다.
'집을 사라'는 암묵적 신호와 이에 대한 일부 언론의 여론몰이가 위험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진짜 문제는 대출이다. '바닥론'에 설득돼 4~5년 후 집값이 오른다는 기대로 집을 사는 건, 실상 '지옥으로 가는 편도 티켓'을 구입하는것과 다름없다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 美 서브프라임 사태..집값에 목숨 달린 서민들의 자화상
지난 2006년 미국 부동산 시장도 한때 과열 현상을 보인 적이 있다. 당시에도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를 비롯한 몇몇 비주류 학자들은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부동산 투자외에는 부자가 될 방법이 없는 저소득·저신용자들은 이같은 경고에 귀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
금융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물가가 뛰기 시작했고, 미 정부는 금리를 인상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이자부담이 늘자 투기 세력들은 자연히 부동산 투기에서 손을 뗐고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주택 가격이 서서히 내렸다면 문제 없었겠지만 주택가격 급락 충격은 고스란히 서민들이 떠안았다. 집값이 폭락하면서 집을 팔아도 빚을 상환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도시는 차압당한 깡통주택들로 넘쳐났다.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이 집값 상승붐에 휩쓸려 부동산 투자에 무리하게 나선 것이 화근이 돼 주요 은행들이 연쇄 붕괴됐다. 이는 수많은 서민, 중산층의 파산으로 이어졌다.
부동산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한국판 서브프라임 위기론이 대두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란 분석이다.
이미 치솟을 대로 치솟은 가계부채와 더불어 각종 경제지표들이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신호는 주택담보대출액은 증가하는데 아파트 가격은 하락하면서 담보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8일 부동산114가 전국 아파트 시가총액과 주택담보대출액을 비교한 결과 주택담보대출액 대비 전국 아파트 시가총액 비율이 지난 2007년 말 5.86배에서 2011년 6월 기준 5.12배로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는 이미 도래했다"
이는 수도권 아파트 가격 약세로 아파트 담보가치가 하락하고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증가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 6월 기준으로 주택담보대출액은 373조원, 전국 아파트 시가총액은 1908조원으로 2007년 이후 아파트 시가총액 증가율보다 주택담보대출증가율이 5배 가량 높았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팀장은 "주택담보대출만 350조에 이른 상황에서 가격하락세가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국형 서브프라임 사태는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양 팀장은 또 "현재 전세대란 또한 주택 매매가 거의 없다는 것에서 파생된 부분이 크기 때문에 전세대란도 부동산 버블 붕괴의 시그널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완중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가계 디레버리징 가능성 점검 및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통해 본격적으로 버블 붕괴가 발생했을 때 제도적으로 이렇다할 충격 완화책조차도 쓸 수 없을 것이라고 그 심각성을 우려했다.
이른바 '부동산 부채의 습격'이 가계에 도래할 경우, 단기간 내 위기 극복이 어렵기 때문에 미연에 가계부채 관리 관련 종합적인 계획 마련해야한다는 주장이다.
과거 일본의 경우, 민간부문의 부채조정 충격을 정부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완화하고자 했으나, 민간부문의 구조조정 지연으로 인한 경기부진 지속과 잠재성장률 훼손으로 이어져 오히려 장기 저성장 국면을 경험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버블 붕괴가 시작된 이후에는 손 쓸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라는 메시지다.
◇ 부동산 연착륙이 유일한 해답.."이젠 부동산 필패"
부동산 버블은 가계, 건설업체, 금융기관의 뇌관이 모두 맞물려 있는 대형 폭탄이다.
학계 전문가들은 가계부문이 극심한 부채 부담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점진적으로 부동산 시장의 거품 제거를 통해 집값을 현실화 시키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방안이라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미국과 일본 모두 부동산 경착륙 이후 복합불황을 맞이했던 것처럼 갈수록 악화되는 가계부채 문제와 자산디플레이션 현상에 따른 복합불황 위기 가능성이 크다"며 부동산 연착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여기에 건설업계의 구조조정도 병행돼야 한다. 건설업체가 아파트를 짓고 분양하는 과정에서 전체 분양물량 중 30% 정도만 팔아도 손해보지 않는 장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거품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중 하나로 분양가 거품을 빼놓을 수 없다는 의미다.
김완중 연구위원은 "수요증대 정책의 경우 미래 버블붕괴 가능성을 높이는 주택가격의 일시적 추가 상승이지만 가계부실 확대 등을 초래하는 부작용이 존재한다는 것을 감안해 공급위주의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공공주택을 수급괴리가 확대된 서민·소형부문에 집중토록 하는 한편 구조조정 등을 통해 민간부문 공급이 장기수요에 적합한 수준으로 조정해 시장 연착륙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부동산 불패의 시대는 이미 갔다. 부동산 필패, 빚내서 부동산에 투자하면 패가망신하는 시대가 왔음을 모두 솔직히 인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며 "정부가 이끌어주는 과거의 부동산시장은 뇌리에서 지워야 한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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