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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북리뷰)평범한 청춘들을 위한 지침서..'철수 사용 설명서'
전석순 지음; 민음사 펴냄
2011-08-11 08:00:00 2011-08-11 08:00:00
[뉴스토마토 송주연기자] '철수 사용 설명서'는 '철수'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이 땅의 모든 평범한 청춘을 대변한 책이다. 
 
'철수'라는 제품을 '준비하기', '사용하기', '관리하기', '주의하기'로 나눠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을 가리켜 혹자는 설명서적 잣대로 인간을 취급하는 현실에 대해 설명서적 형식으로 대응함으로써 그 소외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성공적으로 구사했다고 평가했다(김미현, 문학평론가).
 
무엇보다 이 책은 냉장고에게 토스트 기능을 요구하는 것, 세탁기에 텔레비전 기능을 주문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본래 사용 목적과 상이한 기능까지 요구하는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땅의 '철수'들이 고장 난 것이 아니라 그대들이 제품의 고유한 특징을 모르고 잘못 사용한 것은 아니냐고.
 
철수는 대놓고 항변한다. "단순히 사용자의 기대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고장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당초 화가의 기능을 위해 태어났어도 국영수 과외를 받아야 하고, 음악가의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어도 토익 점수가 없으면 고장난 제품 취급을 받는다.
 
"원하는 기능을 강요할 뿐, 제품이 어떤 기능을 갖추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제품 고유의 특징 같은 것에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니까. 모두가 인정하는 표준이 되지 않으면 불안해졌다. 결국 불행을 겪으면서 다들 행복한 표준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고장'으로 판명나지 않기 위해 유치원 시절부터 무한경쟁에 돌입한다.
 
하지만 아무리 새로운 기능을 추가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4년제 대학에 가도, 어학연수를 다녀와도, 높은 토익 점수를 받아도, 대기업 인턴을 해도 '철수'는 늘 부족한 제품이다.
 
누가 더 빨리 새 기능을 업그레이드 했는가로 제품의 정상 여부를 판단하는 통에 많은 '철수'들은 왜 그래야하는지 제대로 묻지도 못한 채 당연한 듯 끝없이 어깨에 머리에 무언가를 얹히고 또 얹힌다.
 
누가 만들어냈는지 알 수도 없는 표준을 따라가기 위해서.
 
하지만 자신의 향상된 성능을 만족할 수 있는 철수는 거의 없다. 곧바로 신제품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철수의 입을 빌어 말한다. "철수의 잘못인지 사용자의 잘못인지 따질 게 아니라 표준규격을 의심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그게 진짜 표준이기는 한 걸까. 아니면 모든 제품이 그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것 자체를 의심해야만 했을까."
 
철수의 질문이 가슴을 울린다. 
 
뉴스토마토 송주연 기자 sjy2925@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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