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민호기자] 개미들은 무거운 짐을 나를 때 서로 협동한다. 부부 박새는 새끼에게 서로 번갈아가며 먹이를 먹이고, 꿀벌은 꽃가루를 채취하는 대신 수분을 시켜준다.
생존을 위한 치열한 투쟁, 개체간의 경쟁 이면에는 서로의 이익을 위한 다양한 협력이 존재했다.
이 책은 빠른 성장을 추구했던 한국의 산업화 시대가 결국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협력 관계를 파괴하면서 스스로 불균형 성장의 수렁에 빠져 들 수 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저자인 이장우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은 "성장에 대한 균형적인 시각으로 볼때 대기업이 성공하면 중소기업도 함께 성장할 수 있지만 '빠른 성장'을 추구했던 우리에게 남은 것은 결국 깨져버린 균형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경제정책에 수십년 동안 몸담으면서 목격했던 한국경제의 뇌관은 바로 양극화다.
계층간, 산업간 양극화는 결국 신뢰기반과 사회통합을 무너뜨렸다고 고발한다.
대기업에 편중된 산업시스템을 재편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중소기업이 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는 무엇인지 해법을 찾아 보자. 직접 동반성장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장우 위원의 눈으로 바라본다.
◆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中企 줄도산'
뉴스보도에서도 쉽게 접하듯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MRO 등 대기업 계열사 설립을 통한 '일감 몰아주기' 행태는 건전한 산업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의 고유업종까지 문어발식으로 확장하면서 이제는 중소기업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재생타이어업계 예를 들어보자. 한국타이어와 금호타이어가 시장에 신규 진입하면서 중소기업들의 줄도산이 이어졌다.
두부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풀무원과 CJ, 대상 등 대기업들이 단숨에 시장을 장악하는 바람에 1800여개에 달하는 중소기업들의 가동률은 30%이하로 추락했다.
대기업들의 식탐은 골판지, 국수, 어육연제품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대기업들이 MRO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사실상 중소기업들을 죽이는 행위라고 지적하는 이 위원은 한국사회는 강소기업이 태어나기 힘든 사회일 수 밖에 없다는 구조론적 시각으로 접근한다.
그 해법의 실마리를 찾아보자.
◆ '그냥 줄래? 맞고 줄래?'
덩치큰 기업은 약자의 상황을 배려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거나 대기업이 납품 시기를 변경한다면 울며 겨자먹기로 모든 비용을 홀로 감당할 수 밖에 없는게 중소기업의 현주소다.
이장우 위원은 대기업들의 횡포에 가까운 납품단가 후려치기, 업종침해, 기술인력 탈취, 소모성자재 구매대행(MRO)등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불공정 거래가 결국은 대기업 자신의 경쟁력에 손해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기업환경도 자연 생태계와 같이 균형이 깨지면 결국 종(種) 자체가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대기업, 중소기업의 의식적인 노력이 선행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해법이다.
히지만 양축의 경쟁과 화합을 조율할 수 있는 해법도 제도적인 장치라는 균형추가 존해재해야만 가능하다. 그 균형추의 역할은 동반성장위원회라는 민간기구의 몫이라는 것이 이장우 위원의 대안이다.
◆ 동반성장委 '대기업에 말걸기'
동반성장은 일방적으로 시장에 맡겨도, 정부가 개입해서도 성공할 수 없다.
이장우 위원은 동반성장위원회와 같은 민간기구의 탄생이 우리 경제의 양축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중간자 역할을 수행할 수 밖에 없음을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공동체적 합의와 신뢰를 이끌어내고 자율적이면서도 창의적인 행동을 유발시키기 위해서는 이같은 제도적인 처방이 필수 불가결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괴리가 큰 나라에 대해 제도적인 신뢰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한 예로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하면서부터 겪는 괴리감은 상당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필두로 재계 단체들은 속시원하게(?) 릴레이 경기를 하듯이 비난을 쏟아냈고, 정치권 안에서도 주무부처끼리 시각차이는 뚜렸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장관과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은 머리를 맞대 고민해야하지만 '오버하지 말라'는 직격탄을 날릴 정도로 관계에 금이 간 상태다.
이장우 위원이 소개하고 있는 선진국들의 예를 들면 효율적인 사회 시스템으로 개인과 집단의 창의성을 이끌어내는 사례를 자주 볼 수 있다.
이처럼 동반성장은 그 패러다임에 맞는 적합한 제도들이 뒷받침돼야 정상적으로 작동이 가능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이 시대의 현실이다.
결국 동반성장은 한국 사회에 맞는 방법론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봉건적인 역사가 지워지지 않은채 무작정 대기업 총수를 혼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손실을 감안한 한걸음이 있어야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이장우 위원은 신뢰와 화합을 위해서는 서로를 용서하는 마음이 선결돼야 한다는 주장을 깔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실천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전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조금만 신경써주면 될 것이다. 또 대기업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막무가내식 찍어 내리기는 문제의 심각성만 더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 고용창출 성적표, 中企 'A', 大企 'F'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은 지속적인 발전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는 한계를 드러낸다.
지난 10년동안 중소기업은 38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낸 반면 대기업은 오히려 줄었다.
현대차의 경우 지난해 7월 대법원의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현대차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로 간주된다'는 판결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내하청을 사용한다.
현대모비스의 12개 전국 공장은 생산공정의 사내하청 비율이 58%에 달했다.
6대 조선소의 사내하청 비율은 50% 이상, 현대삼호중공업은 71%, STX조선은 81%를 넘었다.
조선소 다음으로 철강회사가 비정규직이 많았으며 기계업종도 이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20~30%가 비정규직이다. 좋은 일자리는 사실상 중소기업이 만들고 안좋은 일자리만 늘어나고 있다.
싼 값에 사람을 쓰는데 익숙한 대기업들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유연하게 정리해고를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집착한다.
고용없는 성장은 성장없는 고용을 부른다. 시지푸스의 고역을 되풀이할 뿐이다.
수많은 선진국들의 상생협력 사례가 많다. 이장우 위원은 '우리는 우리식대로 상생협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일부 사례지만 대기업이 상생협력의 구체적인 실천을 보였던 선례를 보자.
포스코는 국내 최초로 성과공유제를 도입했는데 정부가 상생협력 일환으로 이를 권장해 84개 기업들이 성과공유제를 도입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대기업이 시혜를 베푸는 차원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공정 개선과 국산화에만 국한된다는 점은 아쉬운 점이다.
한국경제는 40여년 동안 개발-생산-영업의 연속과정속에 양적성장에 성공했다.
이장우 위원은 "하지만 이렇게 일적선을 향해 착착 진행되는 가치사슬은 이제 중심부부터 붕괴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과거에는 생산성이라는 한가지 축으로 타원운동을 하지만 이제는 창조성이 더해져 두개의 이중 초점으로 타원운동을 이뤄야 한다"며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
동반성장은 생산성과 창조성이 모두 중요해지는 이중 초점 시대의 성장엔진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많은 기업들과 미래성장 기회를 공유하고 창의와 열정을 끄집어 낼 수 있는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것은 이미 획득된 이익을 비용으로 나눠 분배하는 산업화 패러다임과는 확연히 다른 개념이다.
이 책에서 가장 큰 핵심주제는 이명박 정부의 핵심과제인 일자리 창출과도 직접 연계돼 있다. 그건 바로 동반성장이 한국에게 필요한 이유와 궤를 같이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 저자소개
이장우 박사는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KAIST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과 퍼듀 대학에서 방문교수를 지낸 바 있으며, 한국중소기업학회 회장, 한국전략경영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사)벤처기업협회와 (사)한국문화산업포럼의 창립을 도왔고, 메디슨 등 여러 벤처기업들의 창업과 경영자문 역할을 수행했다.
정부의 콘텐츠 산업 육성, 청년 고용, 창업 활성화 등과 관련된 국가 정책 입안을 위한 자문 역할을 맡기도 했으며, 현재는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