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나보다 덜 똑똑한 사람은 없더라
이름은 있되 회자되지 않는 삶에 대하여
2026-10-01 14:41:29 ㅣ 2026-10-01 14:41:29
"있는 듯, 없는 듯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9월 말로 공단을 떠난 김 주임이, 퇴임식을 이틀 앞두고 함께한 점심 자리에서 한 말이다.
 
그는 50대 말, 제2의 인생으로 공단에 왔다. 운이 좋아 10년을 일했다고 했다. 그 시간 대부분을 주차사업팀에서 노상주차장을 지키며 보냈다. 요금 때문에, 단속 때문에, 차를 세우는 사람과 부딪칠 일이 잦은 자리다. 일을 시작한 초반, 그 길 위에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고 했다.
 
"나보다 덜 똑똑한 사람은 없더라고요."
 
이의를 제기하는 고객을 어떻게 대하느냐고 묻자, 그는 담담하게 자기 방식을 들려주었다. 먼저 규정을 차근차근,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래도 수긍하지 않으면 관리부서 사무실 전화번호를 알려드리고 그쪽으로 안내한다. 같은 말을 두 번 넘게 하는 분과 대화를 이어가면 갈등이 더 커지더라고 했다. 더 큰 권한을 가진 사람에게 이어드리는 것은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리의 크기를 정확히 아는 사람의 방식이었다.
 
처음에 꺼낸 '있는 듯, 없는 듯'이 무슨 뜻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풀었다. 이름은 있되, 회자되지 않는 것.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면 그렇게 된다고 했다.
 
나이마다 그때그때 갖춰야 할 것이 있다고도 했다. 제때 자식을 두어 인성을 먼저 가르치는 것, 자기 몸을 잘 돌보는 것, 남에게 신세 질 일을 만들지 않는 것, 근면하고 성실하게 하나씩 쌓아가는 것. 거창한 말투가 아니었다. 살아온 순서대로 짚어가는 말투였다. 몸을 돌보는 일은 말로 그치지 않았다. 일주일에 나흘, 4킬로미터를 달리고 팔굽혀펴기를 500번 한다. 일흔에도 그 규칙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에게는 외아들이 있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 그는 아내에게 부탁을 하나 했다고 한다. 넉넉하지는 못하겠지만 벌이는 내가 할 테니, 하나뿐인 아이의 인성만큼은 잘 길러 달라고.
 
아들의 군 입대 이야기가 나왔을 때, 식탁에는 네 사람이 앉아 있었다. 김 주임, 그와 오래 손발을 맞춰온 40대 초반의 팀원, 사업부장, 그리고 나. 그는 입대하는 아들에게 몇 가지를 당부했다고 했다. 당번병을 하지 마라. 교관을 하지 마라. 부관을 하지 마라. 그 일들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그는 먼저 말했다. 다만 대다수의 평범한 병사들이 겪는 일을 아들도 똑같이 겪었으면 했다. 윗사람 가까이에서 눈치를 살피고 요령을 익히는 법을,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먼저 배우지 않았으면 했다.
 
그는 길 위의 실무자였다. 맡은 역할은 구체적이고, 판단의 경계도 분명했다. 규정 너머의 일은 사무실로 넘겼다. 그렇게 넘어간 판단이 거슬러 올라가는 맨 끝에, 이사장인 내 자리가 있다. 가장 넓은 권한과 가장 큰 책임이 주어진 자리다. 조직도가 그에게 어떤 자리를 주었든, 자기 삶의 저자는 언제나 그 자신이었다. 그날 식탁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내가 맡은 일의 크기를 나라는 사람의 크기로 여겨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수요일, 퇴임식이 열렸다. 팀장과 동료들, 공단의 간부들이 한 방에 모였다. 10년을 있는 듯 없는 듯 일해온 사람이, 그날은 꽃다발을 안고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는 소회를 길게 말하지 않았다. 일흔 해를 살아보니,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제일 어렵더라고 했다. 아내에게, 자식에게, 곁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그리고 그 이유를 덧붙였다.
 
"한 번의 실수나 잘못이, 그동안 쌓아온 것을 다 무너뜨릴 수 있거든요."
 
퇴임식이 끝나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김주성 노원구시설관리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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