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지유 기자] 농협중앙회가 정상적으로 퇴직한 직원조차 1년간 타 농·축협으로 옮길 수 없도록 인사 규정을 운용 중인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습니다. 귀책사유 없는 퇴직자나 이주·처우 개선을 원하는 이들까지 일률적으로 묶어두면서 노동권 침해 비판이 커지고 있습니다.
타 농·축협 취업하려면 1년 기다려야
1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중앙회 인사 규정 제7조 제1항 제10호에는 '다른 농·축협에서 일반적으로 퇴직하고 1년이 경과되지 아니한 자'를 직원 임용 결격 사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규정 탓에 농·축협 직원이 기존 조합을 정상적으로 퇴직하더라도 다른 농·축협으로 옮기려면 원칙적으로 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거주지를 옮겨 기존 직장에 다니기 어려워졌거나 가족 사정으로 근무지를 변경해야 하는 경우, 직장 내 갈등이나 괴롭힘 등으로 퇴직한 경우에도 다른 농·축협으로 바로 이동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특히 농·축협은 지역별 별도 법인으로 운영되는 만큼 직원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등 개인 사정으로 근무지를 바꿔야 할 경우 기존 조합을 퇴직한 뒤 새로운 지역의 농·축협에 취업하는 것이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행 규정에서는 이 같은 퇴직 사유와 관계없이 원칙적으로 1년 재취업 제한을 받습니다.
임금과 근무 조건이 더 나은 조합으로 옮기고 싶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제한됩니다. 농·축협은 조합마다 사업 규모와 수익성, 영업 환경 등이 달라 임금과 성과급 수준에 편차가 큰 편입니다. 노조 관계자는 "서울 지역 농협 과장의 경우 연봉이 1억8000만원인 반면 경남 지역 농협 과장은 6000만원에 불과한 사례도 있다"며 "지역 조합에서 실적을 쌓은 직원이 더 나은 처우를 찾아 다른 농협으로 이직하려 해도 1년이라는 재취업 제한에 부딪힐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노조는 조합장 간 인적 네트워크가 이직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에서 1년 재취업 제한 규정이 더해지면 직원의 이동권이 더욱 제한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반면 농협중앙회 측은 각 조합마다 급여와 근무 조건, 근무 환경 등이 다른 상황인 만큼, 취업 제한 규정을 없앨 경우 열악한 환경의 조합에서 인력 유출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농·축협은 각각 별도 법인으로 운영되는 만큼 조합 간 인력 이동을 일정 부분 제한할 필요가 있는데, 신규 직원의 채용·교육에 들어가는 비용과 인력 공백 등을 고려해 해당 규정을 둔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해 11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해당 규정의 법적 문제 여부를 문의했고, 문제가 없어 보인다는 취지의 회신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농협중앙회 본관. (사진=뉴스토마토)
"근로자 사정 고려한 예외 기준 필요"
조합 간 1년 취업 제한 규정이 현행법에 어긋나지 않더라도 모든 퇴직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건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법률 전문가들은 재취업 제한의 목적과 필요성뿐 아니라 제한 대상과 기간, 해당 직원의 업무 성격 등을 구체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안현성 법무법인 청목 변호사는 "통상적으로 재취업을 제한하는 경업금지 약정은 영업비밀이나 기술 유출 등을 막기 위한 필요성이 인정될 때 가능한데, 단순히 지역농협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지역농협 취업까지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해당 제한이 법령이 아니라 농협의 내부 규정에 따른 것이라면, 근로자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할 만한 법적 근거와 필요성이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면서 "특히 아무런 잘못 없이 퇴직한 사람에게까지 일률적으로 적용한다면 그 효력이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농협 입장에서는 능력 있는 직원이 보수가 더 높은 조합으로 계속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야 할 업무상 필요성이 어느 정도 있을 수 있다"면서도 "그 과정에서 회사의 인력 운영상 편의만 고려하다 보면 근로자 입장에서는 회사의 필요와 관계없는 사정으로 전직해야 하는 기회까지 제한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박 교수는 "법적으로만 따지면 각각의 농·축협이 별도 법인인지, 퇴직 사유가 무엇인지 등 여러 요소를 따져야 해 판단이 복잡해진다"며 "조합의 인력 운영 효율성만을 위해 만든 규정이 근로자의 다른 필요와 기회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회사와 근로자의 니즈를 모두 반영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농협중앙회 본관. (사진=농협중앙회)
이지유 기자 emailgpt1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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