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명신 기자]
SK하이닉스(000660)가 미국 인디애나주에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 거점을 마련하면서 미국 현지 생산 체제를 본격화했습니다. 현지 진출로 인공지능(AI) 빅테크 고객사들과 거리를 좁히고 기술·인재·공급망을 선점해 미국 AI 생태계의 핵심으로 자리 잡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한국에서 HBM용 웨이퍼를 생산한 뒤 미국에서 첨단 패키징과 테스트를 거쳐 현지 고객사에 공급하는 한·미 연계 생산체제를 구축한다는 구상입니다.
27일(현지시각)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 라피엣에서 열린 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 기지 기공식에서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미치 대니얼스 퍼듀대학교 총장, 곽노정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CEO), 마이크 브런 인디애나 주지사(왼쪽 일곱 번째부터).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는 27일(현지시각)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 퍼듀대학교 할로웨이 체육관에서 AI 메모리용 첨단 패키징 생산기지 기공식을 열었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마이크 브론 인디애나 주지사, 토드 영 연방 상원의원, 미치 대니얼스 퍼듀대 총장,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전우회 회장, 강경화 주미 한국대사 등 한미 정관계 주요 인사가 참석했습니다.
인디애나 공장은 SK하이닉스가 미국에 처음 구축하는 HBM 생산 거점으로, 지난 2024년 4월 투자 계획을 발표한 2년 4개월 만에 본격적인 공사에 돌입했습니다. 지난 4월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시작으로 기초 공사에 들어간 인디애나 팹은 3개월이 지난 현재 건물의 뼈대를 이루는 골조와 기둥이 올라간 상태입니다.
부지는 총 54만㎡로, 축구장 약 75개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인디애나주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개발 프로젝트로 평가되며, SK하이닉스는 이번 프로젝트로 약 7000개의 직간접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생산이 본격화되면 약 1000명이 근무하는 미국 내 핵심 HBM 거점으로 운영될 계획입니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 공장에 40억달러(약 5조5000억원) 이상을 투자하며 2028년 10월 클린룸을 완공하고 2029년 하반기부터 차세대 HBM 양산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기공식에서 “2029년 3분기부터 미국 인디애나에서 HBM4E(7세대)를 대량 생산할 것”이라며 “연간 수십만장 규모의 웨이퍼 생산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은 최고의 고객과 연구역량, 생태계가 함께하는 AI 혁신의 중심지이고, 인디애나 팹은 최초로 ‘메이드 인 USA’ HBM을 제공하는 거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현지 파트너십 확대…인력 선제 확보
SK하이닉스는 생산라인과 함께 ‘첨단 패키징 R&D(연구개발) 테스트베드’를 구축해 R&D 역량 강화에도 나섭니다. 곽 사장은 “이곳에서 고객사, 대학 및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함께 차세대 패키징 기술을 개발하고, 시제품 개발부터 성능 검증까지의 과정을 더욱 신속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있는 SK하이닉스 반도체 팹 공사 현장. (사진=연합뉴스)
이에 SK하이닉스는 퍼듀대와 첨단 패키징 분야 R&D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습니다. 양측은 HBM을 비롯한 시스템 통합과 첨단 패키징 기술을 공동 연구하고 인재 양성에도 협력할 예정입니다. 아울러 퍼듀대를 비롯한 미국 중서부 지역 대학과 연계해 반도체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현지 채용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AI 메모리 개발을 위한 파트너십을 넓혀 인디애나를 거대한 반도체 생태계로 조성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주한미군에서 복무한 뒤 미국으로 돌아온 전역 장병을 대상으로 한 채용 프로그램에도 참여합니다. 인디애나는 6·25전쟁 당시 장병 14만명을 파병한 곳이기도 합니다. 곽 사장은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100개 이상의 파트너 기업과 견고한 현지 공급망 구축을 논의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인디애나에서의 안정적인 생산을 지원하고, 미국의 HBM 공급망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도 인디애나 공장은 자국 내 AI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생산된 웨이퍼가 인디애나에서 패키징과 검사를 마친 뒤 미국 고객에게 공급되는 한·미 분업 체계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AI 산업의 중심인 미국에서 현지 빅테크들과의 접점도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AI 반도체가 고객사의 요구에 따른 맞춤형 제품으로 진화하고 있는 만큼, 고객사들과 긴밀한 협력이 제품 경쟁력에 직결되는 상황입니다. 엔비디아를 비롯해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주요 고객사들과 물리적 거리를 좁혀 고객사 요구에 더 신속하게 대응하겠다는 방침입니다.
특히 SK하이닉스가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 후 실질적인 투자가 본격화되는 것으로, 미국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와 국가 안보·경제 강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미 정부는 반도체지원법(칩스법·CHIPS Act)에 따라 이번 사업에 최대 4억5800만달러의 직접 보조금과 최대 5억달러의 대출을 제공합니다.
토드 영 상원의원은 “이 프로젝트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 및 경제 안보를 강화하며, 미래 기술이 바로 이곳 미국에서 개발되고 생산되도록 할 것”이라며 “앞으로 수십 년간 이 투자가 인디애나 주민들과 우리 국가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SK하이닉스 인디애나 공장 현장 근로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SK하이닉스)
“미국 내 투자 확대”…전공정 가능성
인디애나 투자가 추가 대미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현재 인디애나 공장은 한국에서 생산한 웨이퍼를 받아 HBM으로 완성하는 후공정 거점이지만, 미국 내 전공정 투자까지 현실화하면 웨이퍼 생산부터 첨단 패키징까지 아우르는 공정 밸류체인이 완성됩니다.
미 정부가 한국 기업들을 향해 전공정까지 미국 내에서 생산하라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만큼, 전공정 생산시설 건설 가능성도 열어둔 상황입니다. 유정준 SK그룹 미주총괄 부회장은 이날 “2030년까지 미국 내 투자 자산은 45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며 앞으로 더 확대될 것”이라며 “미국의 차세대 AI 인프라 구축 및 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곽 사장 역시 기공식 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물과 전력, 인재, 보조금 같은 자원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추가 투자 가능성은) 열려 있다. 미국 AI 산업에 좋은 소식을 더 전할 수 있길 바란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13일(현지시각) 미 경제매체 CNBC가 공개한 인터뷰에서 “전력과 용수, 토지를 확보하고 관련 생태계까지 함께 옮길 수 있다면 미국을 포함해 세계 어느 곳에든 팹을 지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다만 SK하이닉스가 국내에도 용인과 호남에 각각 600조원, 400조원을 투자해 생산 거점 마련에 나서고 있는 만큼, 전략적인 투자 계획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미 생산 거점 투자는 현지 반도체 생태계 확대와 고객 확보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대규모 투자 계획이 잇달아 발표돼 적절한 투자 시기와 규모를 계획하는 게 관건”이라고 했습니다.
이명신 기자 si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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