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좋은 시설'은 없다…시설에선 '스스로 선택하는 삶 불가능"
이봄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인천지부 대표 인터뷰
23년간 시설 생활…'선택 대신 허락·통제'가 일상화
"지원 충분하다면 시설이 아닌 곳에서도 살 수 있어"
대학 졸업·배우의 꿈…"탈시설 후 삶에 목표 생겼다"
2026-06-28 12:54:18 2026-06-28 15:56:51
[뉴스토마토 신유미 기자]  "시설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좋은 시설'이라는 게 있을 수가 없어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그 안에선 조금씩 통제와 인권 유린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이봄(36)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인천지부 대표의 고발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뇌병변장애인인 그는 다섯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23년간 장애인 거주 시설과 공동생활가정(그룹홈)에서 생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설의 폐쇄적 구조를 온몸으로 겪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하면서 탈시설 활동가가 변신, 문제 제기의 전면에 나섰습니다.
 
특히 최근엔 인천 강화군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 색동원에서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고, 시설이 거주인들의 개인 돈을 무단으로 유용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돼 '좋은 시설은 없다'라는 문제의식이 다시 공론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야 하는데, 시설에선 그런 삶이 불가능했다"고 했습니다.
 
이 대표와의 인터뷰는 지난 27일 인천시 한 카페에서 1시간30분가량 진행됐습니다. 
 
이봄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인천지부 대표가 27일 인천시 계양구 한 카페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28살까지 시설 생활…‘통제’에 익숙
 
이 대표에 따르면, 시설의 가장 큰 문제는 통제입니다. 대중은 시설을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복지 공간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는 하루 일과 대부분을 타인이 결정하는 수용 구조라는 겁니다. 그는 "몇 시에 일어날지, 무엇을 먹을지, 어디를 갈지, 누구와 생활할지 모두 다른 시설에서 정한다"며 "사람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야 하는데 시설에서는 그런 삶이 불가능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표는 자신의 어린 시절도 들려줬습니다. 그는 "시설에선 한 방에서 40~50명이 함께 생활했다. 변기가 방 안에 있는 그런 공간에서 식사도 했다"면서 "여러 명이 함께 목욕하는 일도 일상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너무 싫고 충격이었다"며 "그렇지만 시설 밖 세상을 모르니 다른 삶이 있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12살에 시설을 나와 공동생활가정으로 옮겼지만 사람 수만 줄었을 뿐 여전히 허락을 받아야 움직일 수 있었던 생활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묻는 질문에 "20대 초반, 공동생활가정에서 단체 나들이를 갔던 날"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계단이 많은 관광지였던 탓에 휠체어로는 가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여기서 기다려'라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우두커니 혼자 남겨질 수밖에 없었다. 두 시간 정도 울면서 기다렸다"며 "그때는 부당한 일을 겪어도 제대로 말도 못 했다"고 했습니다.
 
탈시설 후 비로소 삶의 '목표' 생겨 
 
이 대표가 자립을 결심한 자립생활센터에서 운영한 체험 프로그램 덕분이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혼자 살아가는 중증장애인을 만난 뒤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나보다 장애가 더 심한 분도 활동 지원을 받으면서 자기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며 "그걸 보니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공동생활가정 선생님은 쉽게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기선 '조금 더 준비해야 한다', '혼자 살기는 어렵다'는 말을 계속 들었다"며 "준비만 하다 보면 평생 시설을 못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냈다"고 전했습니다.
 
2018년, 이 대표는 결국 자립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의외로 가장 어려웠던 건 일상의 사소한 선택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식당에 가도 뭘 먹고 싶은지 몰랐고, 카페에서도 무엇을 주문해야 할지 모르겠더라"며 "'이거 해도 되는 거예요?'라는 말을 정말 많이 했다. 시설에선 항상 허락을 받고 살아왔기 때문에 내가 선택해도 되는지조차 익숙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표는 시설이 사람의 몸만 가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까지 빼앗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시설에서 살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잊게 된다"며 "지역사회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생각하게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시설을 나온 뒤 그에겐 새로운 목표도 생겼습니다. 그는 사이버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학업을 마쳤고, 현재는 탈시설 당사자이자 활동가로 다른 장애인의 자립을 돕고 있습니다. 이제는 배우가 되는 것이 새로운 꿈입니다. 이 대표는 "연기를 통해 장애인도 다양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시설에 있을 때는 꿈을 가져본 적도 없었지만, 지금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지 스스로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중증장애인은 자립이 어렵다는 사회적 인식에도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이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자립을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으로 오해한다"며 "비장애인도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듯 장애인은 활동 지원 서비스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중증이라서가 아니라 활동 지원과 주거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라며 "지원만 충분하다면 더 많은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탈시설 논쟁의 핵심은 시설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대표는 "시설로 흘러들어 가는 보조금을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도록 쓴다면 인권 유린도 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목표는 좋은 시설을 만드는 게 아니라 '시설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신유미 기자 yumix@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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