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터인가 학교 교사들은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불쌍한 직장인으로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교사의 자살 사건도 일어났고 교원 노조가 정부에게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교사가 형사 책임을 질 수도 있으니 수학여행, 체험학습도 가지 않는 풍조가 만연해 대통령까지 나섰다. 심지어 최근에는 경찰이 학교 운동회가 시끄럽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악성 민원으로 간주하고 대응하지 말라는 지침을 하달했다. 물론 6월3일에 실시되는 선거에 출마한 교육감 후보들도 교육 환경 개선, 교권 확립을 외치고 있다.
물론 문제가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일을 벌이지 않는 방향으로 움추러드는 교육 현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다. 아동, 청소년의 인권은 과잉 보호되고 있지만 교권은 추락하고 있다는 교육 현장의 과잉 민주화론을 비롯해 사교육 업체가 정규 학교보다 대학 입시 준비를 훨씬 잘한다는 공교육 무용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진단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불의의 사고에 대한 교사의 면책이나 보험에 의한 배상, 학부모의 과잉 개입을 차단하는 제도적 절차의 마련, 대입 사정에 대한 교사 개인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평가 제도의 개편, 이제는 상당히 퇴색한 서울대 10개 만들기 등의 대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시민들은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되어 익숙해진 각종 제도 개선 논의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이다. 학교 예산이 늘어나고 교권 보호 수준이 높아지는 것과 본인 자녀의 미래는 무관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즉, 사회적으로 학교가 존재하는 의미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누구나 교육개혁의 시급성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본인부터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개혁론자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모든 사회제도와 연결되어 있는 교육제도의 개혁은 거창한 과제다. 제대로 교육개혁 논의를 하려면 현재 교육 현장에 비정상적 사태가 만연하게 된 구조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87년 6월의 시민항쟁으로 전두환정권이 퇴진하고 절차적 민주정치가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교육 현장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되었으며, 교원 노조가 만들어져 평교사의 발언권이 커졌다. 학생 인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학교 운영에 학부모가 참여하는 통로도 넓어졌다. 그러나 교실 붕괴와 학교의 황폐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물론 무한 경쟁을 촉구하는 입시제도가 원흉이라고 규정하면 잠시 속은 시원하겠지만 해결되는 일은 별로 없다. 실제로 초등학교, 중학교는 대입과 관련이 없다. 현실이 답답하다고 촌지라고 부르는 공공연한 뇌물, 체벌, 정실 인사가 난무하던 과거의 학교로 돌아갈 수는 없다.
사고 발생 우려 때문에 최근 수학여행을 가지 않는 학교들이 늘고 있다. 제주국제공항 버스 전용 주차장에 수학여행 온 학생들을 기다리는 전세버스가 빼곡히 주차돼 있다. (사진=뉴시스)
학교는 사회의 일부이며 사회상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민주적인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제도 운영에 관련된 주체들이 민주적인 가치관을 공유하고 자기의 권리와 의무를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주체들이 권리를 최대로 주장하고 의무를 최소로 이행하는 것이 민주화라고 믿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면 민주적인 조직은 순식간에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정글이 된다.
마을 사람들이 공유하는 목초지에 누구나 양을 마음껏 풀어놓으면 풀이 없어져 모든 양이 굶어 죽는다. 이러한 ‘공유지의 비극’을 방지하려면 공공재 관리의 규칙을 만들고 질서를 유지하는 권력의 개입이 필요하다. 국가권력이 축소된 민주화된 사회에서 학교를 정상적으로 운영하려면 교육 관련 주체들이 불편을 무릅쓰고 민주적인 가치관을 공유해야 하며, 이를 보장하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교사의 헌신, 자기 희생, 열정 페이만을 강조하는 낡은 사고방식은 버려야 한다. 진보적인 교육감이 학생들의 인성을 개발하고 잠재 역량을 키우는 혁신학교를 만들어도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부모들이 반대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장애 학생을 위한 특수학교를 만들려면 집값 하락을 걱정하는 주민들과 전쟁을 치러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학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퍼져 있다. 즉, 사회윤리가 결여된 과잉 민주화 상태를 빨리 바로잡아야 모두 같이 망하는 공유지의 비극을 방지할 수 있다.
이종구 성공회대 사회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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