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아이들의 ‘무조건적 믿음’으로 버티지만, 현장학습 거부한 이유는…"
현장 체험학습 '보이콧'하는 10년차 초등학교 교사 인터뷰
“사고나면 교사 책임”…속초 판결 이후 체험학습 기피 확산
뒤로 걸으며 아이 숫자 세어도…"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해"
"사고책임으로부터 나부터 지켜야 아이들도 지킬 수 있어"
2026-05-22 15:05:37 2026-05-22 15:05:37
[뉴스토마토 신유미 기자] “아이들은 선생님이 자기를 미워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혼이 나도 결국은 자신을 아껴준다고 믿죠. 아이들에겐 선생님을 향한 그런 무조건적인 믿음이 있어요. 저는 그 믿음 때문에 계속 버티는 것 같습니다.”
 
광주광역시에서 10년차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안지혜(32)씨는 인터뷰 내내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면 활짝 미소를 보였습니다. 학생들이 쉬는 시간마다 달려와 선생님 손을 잡던 일, 발표를 무서워하던 아이가 먼저 손을 들게 된 순간, 친구를 괴롭히던 아이가 어느날 친구를 챙기기 시작한 일화 등을 꺼낼 땐 목소리에 깊은 애정이 묻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런 안씨도 지난 2022년 강원도 속초에서 벌어진 현장 체험학습 사고 판결 이후 체험학습 참여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학부모와 교사의 직접·상시 연락이 일상화되면서 민원 부담이 커진 데다, 안전사고가 생겼을 때 모든 책임이 교사 개인에게 집중된다는 불안감이 교육현장에 퍼진 탓입니다. 
 
지난 20일 이재명 대통령이 제22회 국무회의에서 “교사에게 희생하라고 하면 안 된다. 문제를 없애거나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발언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뉴스토마토>는 같은날 광주 한 초등학교에서 담임을 맡고 있는 안지혜씨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안씨는 “아이들은 직접 보고 만지고 걸어본 경험을 오래 기억한다”며 “그런 경험은 분명 아이들한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말 말도 안 되는 곳에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지만, 교사가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꼈다”며 “나를 지켜야 결국 아이들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10년차 초등학교 교사 안지혜(32)씨가 20일 광주광역시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다음은 안지혜씨와의 일문일답.
 
현장 체험학습 참여를 거부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2022년 속초 현장 체험학습 사고 판결이 굉장히 크게 다가왔어요. 전에도 체험학습은 늘 부담스러운 활동이었거든요. 그런데 판결을 보면서 사고가 발생했을 땐 교사가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꼈어요. 안전교육을 안 했다고 처벌받은 사례도 있고, 안전교육을 했음에도 충분하지 않았다고 처벌받은 경우도 있었고요. 그런 걸 보면서 ‘사고가 나면 결국 교사가 다 책임져야 하는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판결 이후부터 현장 체험학습을 거부하고 있어요.
 
최근에도 체험학습을 거부한 사례가 있었나요.
 
네. 올해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저는 우리 반을 다른 교사가 대신 데리고 가는 것도 반대했어요. 제가 책임질 수 없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도 맞지 않다고 생각했고, 담임이 아닌 교사가 인솔하면 아이들이 더 통제되지 않는다고 봤거든요. 처음에는 학부모님들께 직접 전화드려 대체 활동을 하겠다고 설명하려고 했지만, 학교에선 형평성 문제와 민원 등을 우려해 체험학습을 진행하는 방향으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참여하지 않았고, 그날은 무단결근 처리됐습니다. 대신 교감 선생님께서 우리 반을 인솔해주셨습니다. 솔직히 너무 죄송했어요. 그런데 결국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제 책임을 다른 사람이 대신 져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장 체험학습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어떤 체험학습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이들은 직접 보고 만지고 걸어본 경험을 오래 기억하거든요. 마을 탐방 같은 걸 하면 늘 다니던 길인데도 “선생님 여기 공원이 있었어요?”, “저는 그냥 지나가는 길인 줄 알았어요”라고 말해요. 역사 현장도 마찬가지고요. 저도 어릴 때를 떠올리면 시험 문제보다 친구들이랑 수련회에서 냄비로 밥을 해먹고 텐트에서 떠들었던 기억이 더 선명하거든요. 그런 경험은 분명 아이들한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참여를 거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결국은 통제의 한계 때문입니다. 소규모로 아이들 1~2명 정도 데리고 나가는 활동은 지금도 합니다. 그 정도는 제가 양손으로 하나씩 붙잡고 충분히 관리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20명을 데리고 움직이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예요.
 
아무리 준비를 해도 교사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생깁니다. 예전에 마을 탐방을 갔을 때 한 학생이 갑자기 줄에서 빠져서 호떡을 사 먹으러 갔다가 손에 화상을 입은 적이 있었어요. 1학년 체험학습 때는 아이가 다른 학교 버스를 자기 버스로 착각하고 타버린 적도 있었고요. 물놀이 체험 직전에 간질 발작을 일으킨 아이도 있었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곳에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계속 벌어집니다. 교사들은 체험학습 때 습관적으로 아이 숫자를 셉니다. 아이들 놓칠까 봐 계속 뒤를 보면서 걷거든요. 그러다 다치는 선생님들도 많습니다. 골절 사고도 흔하고요. 그 정도로 계속 긴장 상태인 거예요.
 
다른 교사들도 비슷한 분위기입니까.
 
제 주변만 봐도 체험학습을 가는 걸 이상하게 보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어떤 해에는 같은 학년 전체가 체험학습을 아예 없애기도 했어요. 일부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아는 교사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해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민원과 책임 부담 때문에 체험학습을 더 기피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교사에 따르면, 체험학습을 안 가는 비율이 훨씬 높아졌다고 하더라고요. 세 반 중 한 반 정도만 참여하는 수준이라고 들었어요. 저희 학교도 학년 전체가 안 가는 경우가 있고요. 교과 전담 선생님들까지 체험학습 보이콧에 동참하셨어요. 담임이 빠지면 보결형태로 같이 가주시는데, “왜 우리가 그 책임까지 져야 하느냐”, “우리도 그 위험을 감당하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학부모 반발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계속 말씀드렸어요. 아이들 경험을 빼앗고 싶은 게 아니라,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요. 사실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껴야 제도 개선 이야기도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들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거든요. 결국 교실 안에서 가진 권한으로밖에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올해는 학부모님들께서 이해해주셨어요. 몇 달 동안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선생님이 아이들을 진심으로 생각하는구나'라고 느껴주신 것 같아요.
 
최근 들어 체험학습이 더 위축된 이유는 뭘까요.
 
코로나19가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때 “체험학습을 안 가도 된다”, “온라인으로 대체해도 된다”라는 경험이 생기면서 교사들 사이에서도 위험 부담을 다시 인식하게 됐어요. 또 코로나19 이후 학부모와 교사 사이의 직접·상시 연락이 훨씬 자연스러워졌고, 그만큼 교사 입장에선 작은 변화도 더 조심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요즘 날씨가 좋아서 운동장 수업으로 바꾸기만 해도 “미리 말 안 해서 아이 선크림을 못 발랐다”는 연락이 올 정도예요. 학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훨씬 민감해졌고, 교사 입장에선 모든 상황을 더 조심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됐죠.
 
말씀은 그렇지만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크신 것 같아요.
 
사실 처음부터 엄청난 사명감을 가지고 교대를 간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교생실습을 나가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뭘 대단하게 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선생님!” 하면서 막 달려옵니다. 쉬는 시간마다 손잡고 이야기하려고 하고, 제가 한마디 해준 걸 정말 오래 기억하고요.
 
그때 처음 ‘아, 이 직업은 사람을 정말 많이 바꾸는 일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정말 짧은 시간 안에도 아이들이 많이 변해요. 처음에는 친구를 괴롭히던 아이가 어느 순간 친구를 챙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 하던 아이가 발표를 먼저 하겠다고 손드는 모습도 보이고요. 그걸 가까이에서 보는 게 너무 신기했고, 큰 보람으로 느껴졌어요.
 
아이들은 선생님이 자기를 미워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예전에 문제 행동이 심했던 학생이 있었어요. 이 친구한테 혼을 내다가 “선생님이 너 미워하는 것 같아?”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아이가 바로 “아니요. 선생님 저 사랑하잖아요”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데 너무 울컥했어요. 아이들은 혼나도 결국 선생님이 자기를 아껴준다고 믿어요. 그 무조건적인 믿음이 있어요. 그 믿음 때문에 계속 버티는 것 같습니다.
 
신유미 기자 yumix@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