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효진 기자]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역대 정권은 반복해서 개헌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진영논리에 가로막혔습니다. 이번에도 여야는 개헌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상대 진영의 정치적 의도를 문제 삼으며 정면충돌했습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정부의 개헌 논의를 '독재 발판'이라고 규정하며 본회의 표결에 불참했습니다. 노태우정부의 내각제 파동부터 노무현·문재인정부 시절 개헌 무산까지, 개헌의 역사는 결국 정치권 진영 대결의 반복이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개헌, 이 대통령 독재 발판"
국민의힘은 7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현장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공소취소 특검(특별검사)법'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공소 취소는 이재명 범죄 지우기를 넘어 이재명 독재로 가는 마지막 톨게이트(요금소)"라며 "이제 범죄자 이재명이 자기 손으로 공소장을 찢는 순간, 무소불위의 독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이어 "헌법은 휴지 조각이 되고 경제와 민생은 파탄 나고, 한미동맹이 박살 나고 안보는 무너질 것"이라며 "최고 존엄 이재명과 친명(친이재명) 부역 세력들이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남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공소취소 특검법과 개헌 논의를 엮어 이 대통령 독재의 발판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습니다. 장 대표는 "개헌을 하겠다면 먼저 이재명이 연임 불가를 선언해야 한다"면서 "우리 당은 이재명 정권의 독재 개헌 추진을 단호히 거부한다"라고 했습니다. 당론으로 이날 개헌안 처리에 반대한 국민의힘은 본회의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의힘이 개헌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6·3 지방선거와 동시 투표를 거부하는 것인데요. 국민의힘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22대 국회 후반기에 여야가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개헌안을 다시 논의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정치권에선 여야 모두 권력구조 개편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실제 논의 국면에선 상대 진영에 유불리를 따지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여권에서도 국민의힘의 본회의 보이콧을 두고 개헌 논의의 정쟁화라며 반발했습니다.
7일 국회 본회의에서 개헌안 표결이 이뤄졌다. 사진은 표결에 참석하지 않은 국민의힘 의원들 명패. (사진=연합뉴스)
여야 수싸움에 밀리는 '개헌'
이전에도 개헌은 매번 진영논리에 가로막혔습니다. 87년 헌법 체제가 수립된 후 이재명정부가 들어서기까지 매 정권은 빠짐없이 개헌을 고민했습니다. 가장 먼저 10차 개헌 논의가 이뤄진 건 지난 1990년 노태우정부 때입니다. 3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 당시, 노태우·김영삼·김종필 세 지도자는 차기 체제를 내각책임제로 바꾼다는 비밀 합의문을 작성했습니다.
개헌선인 국회 의석의 3분의 2를 훌쩍 넘는 거대 여당(민주자유당)이 탄생했지만, 헌법을 고치는 데 실패했습니다. 비밀 합의문이 언론에 공개되는 '내각제 각서 파동'으로 당내 분열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당 최고위원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공작정치'라며 노태우 전 대통령을 저격하고 경남 마산으로 잠적했습니다.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이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당권을 내주며 상황은 일단락됐지만, 내각제 합의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노무현정부 때는 정권 말기인 2007년, 대통령이 직접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습니다.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두고 연이어 선출되는 경우에 한해 1차례 중임할 수 있는 권력구조 개편안을 내놓은 것입니다. 핵심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일치로, 국정 안정성을 높인다는 구상입니다.
당시 유력 대권주자였던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은 개헌 제안을 선거용 정치 공세로 비판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문제적 발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주류와 노무현 전 대통령 간 불화로 개헌의 공은 다음 정부로 넘어갔습니다.
문재인정부는 지난 2018년 대통령 4년 연임제와 지방분권 강화를 핵심으로 한 개헌안을 발의하며 '촛불 민심'을 기반으로 한 국가 체제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이를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려는 '독재 시도'라고 규정하며 총리 선출권을 국회로 넘기는 내각제 성격의 개헌안을 맞불로 내놨습니다.
결국 같은 해 5월24일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 4당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개헌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재적 의원 288명 중 민주당을 포함해 114명(당 소속 112명 등)만이 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졌고, 결국 의결 정족수인 192명에 크게 못 미치는 인원으로 인해 헌정사상 최초의 '투표 불성립'이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당시 청와대는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야당 의원들이 위헌 상태 국민투표법 논의 안 한 데 이어 개헌안 표결이라는 헌법적 절차 참여하지 않은 것은 헌법 의무를 저버린 것"이라며 "앞으로 새로운 개헌 동력 만들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8년 후인 이날 개헌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밟았지만, 이 역시 좌초됐습니다.
이효진 기자 dawnj78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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