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엄포에…유통가 '가격 인하' 경쟁 확산
정부발 고강도 '가격인하 압박'…유통기업 '눈치싸움' 시작
CJ푸드빌·SPC 물가안정 동참…라면·과자 업체 '신중 모드'
"원재료 가격 인하 혜택, 최종 소비자에게 혜택 돌아가야"
2026-03-02 10:54:48 2026-03-02 10:54:48
[뉴스토마토 이혜현·이수정 기자] 서민 체감도가 높은 밀가루와 설탕 같은 기초 식재료 가격이 독과점 기업들의 담합으로 왜곡돼 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일부 기업들의 인위적인 가격 조정이 물가 불안의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유통업계를 향해 가격 인하 압박 수위를 연일 끌어 올리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원재료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물류·인건비 등 부대 비용 상승을 이유로 소비자 가격에 즉각 반영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무엇보다 판매가 인하는 기업의 마진율 하락으로 이어져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불만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마진율 하락과 부대 비용을 이유로 가격 인하를 주저하는 기업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부는 밀가루, 설탕 같은 원자재 가격 하락분이 최종 소비자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원재료 가격 인하 혜택이 소비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설탕값이 16.5% 내렸는데 설탕을 쓰는 상품은 가격을 그대로 유지해서 소비자들은 혜택도 못 받고 공정위가 열심히 한 결과물을 기업이 독식하게 하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 이어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도 식음료·가공식품 기업을 겨냥해 원자재 가격 하락분을 반영한 가격 인하를 공개적으로 촉구했습니다. 주 위원장은 밀가루·설탕 가격 인하에 이어 과자 등 가공식품 가격 조정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업계의 동참을 요구했는데요.
 
이재명 대통령의 물가 안정 주문과 담합 수사 여파 속에서 CJ제일제당과 대한제분, 사조동아원, 삼양사 등 제분·제당업계는 설탕 및 밀가루 가격을 인하했다. (사진=뉴시스)
 
설탕·밀가루 줄줄이 인하…'서민물가' 시험대
 
가공식품 업계에서는 CJ푸드빌과 SPC가 자사 제빵 프랜차이즈 제품 가격을 인하하며 원가 하락분을 선제 반영한 것과 달리, 라면·과자 업체들은 가격 조정 여부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다수의 제과, 식음료 기업들이 구체적인 인하 계획을 밝히지 않은 점을 두고 업계 안팎에서는 정부의 메시지가 사실상 이들 기업을 향한 우회적 압박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주 위원장은 "설탕과 밀가루 가격이 하락하면 관련 식품 가공업체에서도 추가적인 가격 인하가 이뤄져야 한다"며 "설탕, 밀가루, 전분당 사업자들의 자율적 가격 인하가 가공식품과 생필품 전반에도 확산될 수 있도록 지속 점검해 나가겠다"고 입장을 내놨습니다.
 
정부의 강경한 원자재 가격 하락분 반영 기조에 대해 가공식품 업계는 제조원가에서 밀가루와 설탕이 차지하는 비중이 제한적인 데다 인건비·고정비·기타 원재료비 등 판매가를 좌우하는 변수가 다양해 가격 인하 여력이 정부 기대만큼 크지 않다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다수 식품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이 4~6%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가격 인하는 곧바로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업계의 불만에도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발맞춰 식품·생활필수품 가격 인하 움직임이 확산되는 양상입니다. 제분·제당업계를 중심으로 시작된 가격 인하 조치는 제빵 프랜차이즈와 위생용품 분야로 이어지고 있죠.
 
가장 먼저 변화의 바람이 분 곳은 제당·제분업체였습니다. CJ제일제당은 지난 26일 소비자용 밀가루 가격을 추가로 5% 인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당초 발표했던 인하폭을 포함하면 올해만 약 10% 가량 가격을 낮춘 겁니다.
 
앞서 대한제분과 사조동아원은 밀가루 가격을 각각 4~5%, 5%씩 인하했으며, 삼양사는 밀가루와 설탕을 4~6% 낮췄습니다. 대한제당도 설탕 출고가를 4~6% 낮추며 인하 행렬에 동참했습니다. 여기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제당업계의 담합 여부를 조사하면서 시장 전반에 긴장감이 높아진 상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무조건 가격 인하보다 비용 자체 흡수해야"
 
원재료 가격이 낮아지자 제빵업계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파리바게뜨는 일부 빵 제품 가격을 100원에서 1000원까지 인하하고, 일부 케이크는 최대 1만원 낮췄습니다. 다음 달 중 1000원 가격의 크루아상을 출시할 계획입니다. 뚜레쥬르도 총 17개 품목 공급가를 평균 8% 인하했습니다.
 
이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생활용품 분야에서도 변화가 감지됩니다. 유한킴벌리 와 LG유니참 등 주요 업체들은 온라인 제품 가격을 인하하거나 할인 폭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소비자 부담 완화에 나설 방침입니다.
 
앞서 쿠팡은 자체 생리대 브랜드 '루나미'를 앞세워 개당 99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발빠르게 선보였습니다. 아성다이소는 생활용품 제조사 '깨끗한나라'와 손잡고 개당 100원 수준의 초저가 생리대를 오는 5월 출시합니다. 최근에는 공정위가 교복 제조업체 4곳에 대한 담합 조사에 나서면서, 교복 시장에서도 가격 조정 바람이 불 것으로 전망됩니다.
 
전문가들도 원가가 하향 조정된 만큼 업계도 의지를 보여줘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종우 아주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는 "경제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업계도 곤란하겠지만, 원칙적으로는 원가가 내려간 만큼 식품기업들도 함께 가격을 낮춰줘야 하는게 맞다"며 "다만 이렇게 정부 기조에 동참한 업체에는 수출 사업 지원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병행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유통업계는 씁쓸한 표정을 감추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내수가 어려워진 이후로 식품·유통업계 상황은 내리막길이었다"라며 "가격에는 원가만 포함된 게 아니라 인건비와 물류비 등 복잡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무조건 가격을 낮추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다만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가 강력한 만큼 우선 비용을 자체 흡수하는 행보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습니다.
 
서울 시내 대형마트 모습(사진=뉴시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
이수정 기자 lsj5986@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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