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예슬·유근윤 기자] 김건희특검으로부터 수사를 받던 중 숨진 경기도 양평군 공무원 정모씨는 사망 나흘 전 가족을 만나 강압수사에 대한 괴로움을 토로하는 내용의 기록을 건넸던 걸로 확인됐습니다. 해당 기록은 고인이 숨진 뒤 발견된 유서의 일부분이기도 합니다. 고인의 유서는 진위 논란이 일었는데, 가족이 유서의 일부 기록을 갖고 있다는 게 확인됨에 따라 유서는 고인이 직접 작성한 것이라는 게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은 김건희씨 일가가 가족회사인 ESI&D를 통해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참여하는 과정에서 양평군청으로부터 개발부담금 축소 등 특혜를 받았다는 겁니다. 특검은 당시 양편군수였던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 등 윗선의 지시로 양평군이 김건희씨 일가에게 특혜를 줬다고 의심하고 수사 중입니다.
정씨는 이 사건과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지난 10월2일 특검에 불려 가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10일 '특검에서 강압수사를 받았다'라고 주장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후 고인의 집에서는 21장짜리 유서가 발견됐습니다.
10월13일 김건희특검 앞에 차려진 경기도 양평군 공무원 정모씨의 분향소 전경. (사진=연합뉴스)
8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고인은 추석 하루 전인 10월6일 가족을 만난 자리에서 특검으로부터 받은 강압수사와 그에 대한 괴로움을 토로하는 심정을 담은 기록의 사본을 건넸습니다. 해당 기록은 고인이 10월2일 특검의 조사를 받은 후 10월6일 전까지 작성한 겁니다. 그러니까 4일치 기록입니다. 분량은 공책으로 16장 정도입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설명을 종합하면, 고인은 특검이 혹여나 자택을 압수수색할 경우 자신이 적은 기록이 유실될 것을 염려해 가족에게 별도 보관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고인은 중요한 자료니 숨겨놓으라고 말했고, 가족은 고인이 죽기 전까지 해당 문서를 꺼내보지 않았습니다.
고인은 양평 공흥지구 의혹과 관련해 경찰에 조사를 받은 적이 있고, 당시 무혐의로 결론이 났기 때문에 특검의 조사도 무리 없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조사 일정이 특정되지 않고 늦춰지면서 괴로워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고인은 변호사 선임과 관련한 고민을 가족에게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고인의 당시 상황은 지난 1일 발표한 국가인권위 직권조사 결과와도 일치합니다. 인권위는 "조사 결과, 고인은 특검의 조사를 받을 당시 피의사실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지 않은 출석요구 통지를 받았을 뿐 아니라, 약 4차례 출석 일정의 급박한 변경이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가족은 미처 고인이 극단적 선택까지 할 것이라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추석 연휴기간 가족들과 만나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식사를 맛있게 하고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이후 변호사를 선임한 사실도 알렸습니다.
유족은 고인이 건넨 기록을 10월10일 고인이 숨진 다음날에야 꺼내봤습니다. 기록엔 특검 강압수사에 대한 괴로움이 담겼고, 가족들에게 남긴 편지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제야 유족은 당시 고인이 남긴 문서가 유서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유족은 고인이 남긴 기록이 그의 유서와 동일한지는 고인 사망 사흘 뒤인 10월13일 알 수 있었습니다. 고인이 사망한 날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필적감정을 맡긴다는 이유로 유서의 원본을 가져갔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경찰은 유서 원본은 물론 사본조차도 유족에게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의 조치에 관해 비판이 나오니까 10월13일 유족에게 유서 원본을 보여준 겁니다. 그제야 유족은 동생이 건넨 기록이 유서와 같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1월11일 경기남부경찰청은 국과수 필적감정 결과를 토대로 유서가 고인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알렸습니다.
그럼에도 일각에선 여전히 고인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고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입니다. 박현일 전 양평군의원은 지난달 21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 10월6일 고인과 직접 만났다는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하면서 '너무 기분 좋게 여러 담소를 나눴다. 특검에 가서 조사받은 내용은 단 한마디도 거론이 안 됐다. 전혀 우울·불안감을 호소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고인이 특검에서 조사를 받은 직후 텔레그램에 가입했다가 숨지기 직전 탈퇴한 정황을 들면서 고인 죽음의 배경을 수사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박중배 공무원노조 대변인은 "고인이 유족에게 유서 형식으로 건넸고, 고인은 스스로 적은 유서 내용에서 여러 번 수사가 잘못 됐다고, 진실을 이야기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마지막까지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했다"며 "노조는 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공무원노조 경기지역본부 양평군지부는 유족과 함께 고인의 명예회복과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순직 신청을 할 예정입니다.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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