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미국 뉴욕시장 선거가 비백인계 조란 맘다니 후보(35세. 부모는 인도인. 우간다에서 태어나 7세 때 미국으로 이주. 무슬림이자 팔레스타인에 우호적)의 승리로 끝난 며칠 뒤 맘다니 당선자가 백악관을 방문했다. 선거전 내내 트럼프는 만다니를 향해 공산주의자라며 “그가 당선되면 연방정부의 뉴욕시 지원 예산을 끊어버리겠다”고 공격해댔기에 이날 방문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 기자 : “(맘다니에게) 트럼프를 파시스트라고 생각하십니까?”
- 트럼프 : “(맘다니에게) 괜찮아, 그냥 ‘네’라고 하면 돼요.”
- 맘다니 : “좋아요. 그래요.”
- 트럼프 : “맘다니가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뉴욕시장은 큰 자리죠. 내가 언젠가 꼭 해보고 싶었던 게 뉴욕시장이었죠.”
뉴욕타임스는 이날 만남에 대해 “괴짜 버디 코미디(oddest screwball buddy comedy) 같았다. 과거 정치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선거전 내내 맘다니에 대해 적대적이라고 할 만큼 비판적이었다.
2009년 1월 버락 오바마가 미국 44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흥분했다. 그의 진보적인 정책도 정책이었지만 미국 역사상 첫 흑인계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6년 후 맘다니 후보가 미국 정계 주요 지역중 하나인 뉴욕시장에 당선됐다. 대통령보다야 작은 자리지만 이번에도 미국과 세계가 주목했다. 오바마 효과 때문인지 이번에는 비백인이라는 점보다는 맘다니의 진보적 개혁정책이 더 큰 주목을 받았다.
맘다니의 주요 공약을 보자. △기업 법인세 인상 △부유세 강화(수퍼리치 담세율 최소 2%p 인상) △의식주 중에서도 기본인 주와 식에 ‘공적 시스템’ 강화(시 재정으로 임대주택 20만호 건설, 시 직영 비영리 식료품점 개설) △서민 아파트 주택임대료 동결 △5세까지 무상보육 △최저임금 시간당 30달러로 대폭 인상 △시내버스 무료화 등이다.
일견 반자본주의적으로 보이는 급진적인 것도 있다. 일각에서는 득표용 포퓰리즘이라고 맹비판했다. 공약 이행과정에서 갈등을 넘어 충돌 소지가 다분한 사안도 있는데, 어떻게 구현해 나갈지 관심이자 관건이다.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의 새로운 정책들이 성공하느냐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 당선자가 지난 11월 무료 급식 지원 비영리단체에서 배식을 돕고 있다. (사진=뉴시스)
왜 뉴욕 시민들은 맘다니에게 표를 던졌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공약들은 갑자기 뚝 떨어진 정책이 아니라 뉴욕시에 축적된 진보 성향에 뿌려진 씨앗이란 점을 놓치면 안 된다. 뉴욕은 미국 역사 초기부터 사회운동의 핵심 근거지 중 하나였다. 노동운동이 활발했고, 반전운동 등 진보 성향도 강했다. 수년 전의 ‘월스트리트 점령운동’도 뉴욕이 출발지다. 서민 아파트 임대료 동결 공약의 경우 뉴욕은 이전부터 임대료 규제가 있었다. 1974년 이전에 건설된 아파트는 모두 임대료 규제 대상이며(이른바 임대료 안정화 아파트), 이후 건설된 아파트도 상당 비율은 임대료 안정화 아파트여야 세제 혜택이 있었다. 그래서 시 정부가 사실상 임대료를 결정할 수 있는 아파트가 100만호 정도다. 시 직영 공공 식료품점 공약 역시 민간 식료품점에 대한 지원을 이미 실시한 바 있다. 물가 안정 차원에서 민간 식료품점을 지원했는데, 이 예산을 공공으로 바꾸겠다는 것이 맘다니의 복안이다.
맘다니의 공약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그간의 오랜 사회운동과 제도적 성과라는 토대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물가 폭등으로 생계가 버거워진 뉴욕 비자산층 유권자에게 그의 공약은 폭발적 지지를 받았다. 뉴욕이 진보 성향 도시라고는 하지만 인도계 무슬림 사회주의자의 당선은 이례적이자 정치적 사건이라 하기에 충분하다. 자본주의 최첨단 도시인 뉴욕에서의 맘다니식 사회주의적 공약은 일 개인의 실험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맘다니는 자신을 민주사회주의자라고 말한다. 그의 정치적 정체성과 향후 행보, 포부를 집약한 말일 것이다. “나는 무슬림이고 민주사회주의자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이런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나는 보통의 기준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것은 단지 권위주의 행정부에 맞서는 것뿐 아니라 노동계급의 물질적 요구를 보장하는 일이다.”(승리 직후 맘다니 연설) 그의 정치적 역량과 실무 능력이 미지수지만, 공약을 현실로 구현해간다면 말 그대로 ‘일대 사건’일 것이다. 맘다니를 계기로 ‘국수적 트럼피즘’과 전 세계적 보수화 흐름이 제어되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맘다니가 성공한다면 오바마나 트럼프가 세계 각국에 영향을 미쳤듯 그 파급 효과가 비단 미국 내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우선은, 트럼프의 노골적 보수화와 갈라치기, 각종 정책의 일방통행에 브레이크가 걸릴지 주목한다.
이강윤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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