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 '무대책'…최악 땐 '관세폭탄' 독박
상호 관세, '비관세 장벽' 정조준
한국, 선전포고에도 '속수무책'
2025-02-14 18:03:03 2025-02-14 18:03:03
[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김태은 인턴기자] 반도체·자동차 쌍두마차가 이끌고 있는 한국 경제가 '풍전등화'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상호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히면서 '비관세 장벽' 또한 정면으로 겨눴습니다.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상호 관세가 부과될 여지는 많지 않지만, '비관세 장벽'을 겨냥하면 관세 대상국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관세 부과 품목으로는 반도체·자동차가 지목되고 있는데요. 우려가 현실화할 경우, 우리 산업계에 주는 충격은 '철강·알루미늄에 관세 부과'와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평가입니다.
 
현재 세계 각 국은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한국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12·3 내란사태, 탄핵·대선 정국 속에서 사실상 정상 외교가 '실종'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정상 간 담판'을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파트너가 없으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상호관세 골든타임 '한 달'…각국 트럼프 설득 총력전
 
트럼프 대통령은 예고한 대로 이날 '상호 관세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상호 관세는 상대국 수준으로 관세를 올리는 개념인데요. 앞서 우리나라는 지난 2012년 모든 수출입 물품에 대한 관세 철폐를 원칙으로 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습니다. 거의 모든 미국산 물품이 한국에 무관세로 들어오고 있고, 미국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뿐만 아니라, 비관세 장벽도 고려하겠다고 명시한 점입니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액은 557억달러(81조원)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는데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8번째로 미국에서 많은 돈을 벌어가는 나라입니다. 
 
미국 고위 당국자는 이날 사전 브리핑에서 "중국 같은 경쟁자든, 유럽연합(EU)·일본·한국 같은 동맹이든 상관없이 모든 나라가 우리를 이용하고 있다"며 한국을 콕 집어 언급했습니다. 이어 "미국이 무역 적자를 많이 내고 있고, 문제가 가장 심각한 국가들을 먼저 들여다볼 방침"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대통령은 각 나라가 관세를 내리고 싶다면, 내리겠다는 의향이 충분하다"며 협상 가능도 시사했습니다. 한마디로 '거래하라'는 뜻인데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대국이자 무역상대국인 미국 시장의 장벽이 높아진다면, 각국 경제엔 적지 않은 충격이 뒤따릅니다.
 
미국은 오는 4월1일까지 조사를 마치고, 국가별 검토를 거쳐 상호관세를 차등 부과한다는 방침입니다. 사실상 골든타임이 1달 남은 건데요. 대부분의 국가는 미국 조치를 바로 수용하기보단, 협상을 통해 파장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펴는 모습입니다. 
 
실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 결정'이 담긴 대통령 각서에 서명한 이날 백악관을 방문했습니다. 모디 총리는 2030년까지 양국의 교역량을 2배 수준인 5000억달러(721조원)로 늘리고, 미국의 석유·액화천연가스(LNG)를 적극적으로 구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만족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을 인도의 석유·가스 주요 공급자로 복구하는 중요한 합의에 도달했다"며 "올해부터 인도에 대한 무기 판매도 수십억 달러 늘릴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모디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어떤 양보 카드를 제시했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에 앞서 인도를 '관세의 왕'이라고 표현하며,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모디 총리의 설득이 효과를 낸 걸로 보입니다. 
 
이 외에도 일본 정부는 이날 상호관세와 관련해 이미 미국 정부와 의사소통을 시작했다고 밝혔고, 베트남 외교부도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에 대해 건설적인 방식으로 논의하고 협상하겠다고 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상호무역과 관세' 각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
 
컨트롤타워 없는 한국…수출 1·2위 '자동차·반도체' 휘청
 
반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한·미 FTA로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수 있다"다고 밝혔을 뿐입니다. 또 미·일 대면 정상 외교가 이뤄진 상황에서, 최 대행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첫 통화는 이뤄지지도 못했는데요(14일 오후 5시 기준). 권한대행으로서 '확실한 카드'를 약속할 수는 없다는 점은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입니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대처가 늦어질수록, 우리 산업의 버팀목인 '반도체·자동차 산업'에 대한 타격이 불가피해진다는 점입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총수출액에서 자동차와 반도체 품목이 차지한 비중은 각각 20.8%, 10.4%였습니다.
 
국내 완성차 업체의 자동차 수출액에서, 대미 수출 비중은 49.1%로 절반에 육박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차에 일괄 관세를 매길 경우, '가성비'를 앞세운 현대차의 판매 전략도 차질을 빚게 됩니다.
 
대미 수출 비중이 7.5%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도 녹록지 않습니다.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면, 메모리 반도체가 직격탄을 맞을 걸로 예상되는데요. 삼성전자는 텍사스주에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메모리는 주로 한국·중국에서 생산하기 때문입니다. 
 
SK하이닉스도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메모리 제품이 관세 영향권에 들게 되면, 이를 사용하는 자동차·로봇 등 전방 산업으로까지 그 파급력이 번져나가게 됩니다. 
 
상호관세는 법으로 정해진 개념이 아니어서, 미국이 '이것이 상호관세'라고 일방적으로 강요하면 다른 나라는 그렇게 이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미국은 상호관세를 무기 삼아, 그동안 미국 기업의 진출을 어렵게 만든다고 여겨온 한국의 각종 정책·규제를 없애는 데 주력할 걸로 보입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미국이 얼마나 세게 나오느냐가 관건"이라며 "만약 보편관세가 들어온다면 미국과의 직접 무역뿐 아니라, 보편 관세 영향을 받은 다른 나라와의 교역에서도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유지웅 기자·김태은 인턴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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