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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ELS 기본배상 20~40%…계산기 두드리는 은행권
가입목적·연령층·투자경험 따라 가감
은행권, 배상 규모 파악·법률 검토 착수
2024-03-11 14:04:00 2024-03-12 08:30:03
 
[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금융당국이 대규모 원금 손실 사태가 발생한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에 대해 0~100% 차등 배상 원칙을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판매사와 투자자의 과실을 개별 적용해 배상 비율을 산출한다는 계획인데요. 은행권은 판매 규모에 따른 부담 정도에 따라 이번 배상안에 대한 온도 차가 확연히 갈리는 모습입니다. 당국이 내놓은 배상안에 반대하기보다는 전체 배상 규모를 파악하는 시뮬레이션과 법률 검토에 착수했습니다.
 
대부분 20~60% 배상 예상
 
금융감독원은 11일 홍콩 ELS 11개 주요 판매사에 대한 현장검사를 실시한 뒤 이 같은 내용의 '홍콩 H지수 ELS 검사 결과 및 분쟁 조정 기준안'을 발표했습니다. 분쟁 조정 기준안은 지난 2019년 불완전판매가 문제가 된 파생결합펀드(DLF)·사모펀드 사태 때 처음 도입된 제도인데요. 당시 가산·차감 요인 등을 고려해 20~80% 배상 비율이 정해졌던 바 있습니다.
 
이번 홍콩ELS 사태에선 판매사의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부당권유 금지 등 3대 판매 원칙 위반 여부에 따라 손실액의 20~40%(기본 배상 비율)를 배상하도록 했습니다.
 
불완전판매를 유발한 내부통제 부실이 발견된 경우 정도에 따라 은행은 10%포인트, 증권사는 5%포인트 일괄 가중됩니다. 온라인 판매채널의 경우 내부통제 부실이 상대적으로 낮은 점을 감안해 은행 5%포인트, 증권사 3%포인트 가산 적용됩니다.
 
여기에 판매사 요인이 가중됩니다. △예적금 가입 목적 고객 10%p포인트 △금융 취약계층(80세 이상 초고령자 등) 5~15%포인트 △ELS 최초 투자 5%포인트 △자료 유지·관리 및 모니터링콜 부실 5~10%포인트 △비영리 공익법인 5%포인트 등에 따라 배상 비율에 최대 45%포인트가 가산됩니다.
 
반대로 가입자에 책임이 있는 경우 배상 비율이 차감됩니다. △ELS 투자 경험 2~25%포인트 △매입·수익 규모 5~15%포인트 △금융상품 이해 능력(금융권 종사자 등) 5~10%포인트 등 투자자에 책임이 있는 경우 최대 45%포인트를 배상 비율에서 차감합니다.
 
일반화하기 어려운 별도 고려 사항이 있는 경우 10%포인트 범위 내에서 가산하거나 차감합니다. 최종 배상 비율이 이론적으로 0~100%까지 나올 수 있지만 20~60% 수준이 될 전망입니다. 과거 DLF 배상 비율 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이날 "(ELS 상품의) 특성이나 소비자 보호 환경 변화를 감안하면 DLF 때 보다 판매사의 책임이 더 인정되긴 어렵지 않겠냐고 보고 있다"며 "지금 단계에서 데이터를 보면 다수의 케이스가 20~60% 범위에 있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픽=연합뉴스)
 
이사회 의결까지 상당 시일 걸릴 듯
 
금감원은 이번 분쟁 조정안을 토대로 내달부터 대표 사례에 대한 분쟁조정위원회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각 판매사는 조정 기준에 따라 사적 화해 방식의 자율배상을 실시할 수 있습니다. 은행권은 당국 배상기준안을 당초 예상했던 수준으로 평가하면서도 향후 대응 방안을 놓고 부심하는 모습입니다.
 
임의적인 자율배상이 배임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우려 등을 의식해 법률 검토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A은행 관계자는 "금감원 브리핑 내용을 확인하고 대응 논의를 시작한 단계"라며 "기본 배상 비율 등 기준안 산정 방식이 타당한지 법률 검토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금감원에 따르면 홍콩ELS는 은행 판매 규모만 15조4000억원에 달합니다. 지난 1∼2월 만기가 도래한 1조9000억원 가운데 1조원의 손실이 확정됐습니다. 홍콩ELS에 가입한 은행 고객 계좌가 24만3000개에 달하는 만큼 개별 사례에 대해 판매사인 은행과 투자자인 고객의 책임을 얼마씩 반영하느냐에 따라 배상 규모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B은행 관계자는 "다양한 사례에 맞춰 기본 배상 비율과 투자자 고려 요소 등을 면밀히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공식 입장을 내기는 어렵다"며 "당국 배상기준안을 면밀히 검토하고 당국과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구체적인 자율 배상안을 도출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자율 배상 등을 포함한 입장을 이사회 안건으로 부의, 의결해야 하는데, 사외이사 교체 시기라 시일이 더 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홍콩ELS 판매 금액과 투자자 손실이 미미한 은행은 자율배상을 서두르는 것이 좋다는 인식도 있습니다. 비협조적인 태도를 고수할 경우 당국으로부터 과징금 철퇴를 맞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감원은 이날 분쟁 조정 기준안을 발표하면서 "위법 부당행위에 대해 엄중히 조치하되 고객 피해배상 등 사후 수습 노력은 참작할 예정"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1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홍콩 H지수 ELS 검사결과 및 분쟁 조정 기준 관련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증권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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