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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의 바위그림)잘라브루가의 걸작 - 사슴의 계절이동
(백야의 땅, 박성현의 바위그림 시간여행-⑫)
2024-02-19 06:00:00 2024-02-19 12:03:31
북극 아래에 위치한 페노스칸디아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핀란드, 러시아의 콜라반도와 카렐리아 지역을 가리킵니다. 세계 곳곳에서 선사 인류의 바위그림이 발견된 것처럼, 이곳에도 수천 년 전 신석기인들이 남긴 바위그림이 있습니다. 그들은 물가의 돌에 무엇을, 왜, 새겼을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질문을 품은 채 떠난 여정, 러시아 카렐리야의 오네가호수와 비그강, 콜라반도의 카노제로호수에 새겨진 바위그림과 노르웨이 알타 암각화를 향해 가는 시간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잘라브루가 암각화의 발견 과정
 
백해 암각화군의 핵심인 잘라브루가는 비그강의 볼쇼이말리닌섬에 위치한다. 잘라브루가 암각화는 스타라야(오래된)와 노바야(새로운)로 구분되는데, 이는 바위그림의 오래된 정도를 뜻하는 게 아니라 발견 순서에 따른 것이다. 즉, 1936년 라브도니카스 조사단에 의해 먼저 발견된 게 스타라야(구)잘라브루가, 1963년~1968년 사바테예프 조사단에 의해 나중에 발굴된 게 노바야(신)잘라브루가로 불린다. 하지만 제작 연대상으로는 신잘라브루가가 구잘라브루가보다 오히려 좀 더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자신이 발견한 암각화 노바야(신)잘라부르가를 바라보는 사바테예프(1965년). 사진=카렐리야공화국 국립기록보관소.
 
구잘라부르가는 발견 당시 북·중앙·남의 세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남쪽 그룹은 후에 신잘라브루가의 15번째 그룹의 일부로 포함되었다. 라브도니카스 조사단은 구잘라브루가에서 216개의 개별 이미지를 기록했고 그중 대부분이 중앙그룹에 속한다. 그 후 사바테예프 조사단이 총 1176개의 이미지를 찾아냈는데, 신잘라브루가는 발견된 규모가 방대해 그룹별로 다시 번호가 붙여졌다. 이 두 단계의 발견 과정을 통해 잘라브루가 암각화 중 가장 잘 보존되고 표현력이 풍부한 그림들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고고학자 라브도니카스가 1936년에 발견해 1938년 책에 기록한 스타라야(구)잘라브루가의 중앙그룹 도면. 양쪽의 순록 떼가 수렴되는 지점(오른쪽 하단)이 남쪽이고 사진에서 왼쪽이 북이다(마리나 씨의 자료철). 사진=박성현
 
2005년 카렐리야와 영국 고고학자들의 공동 조사에 의해 새로 발견된 많은 형상들(회색 부분)이 라브도니카스의 도면에 추가됐다(로바노바, 2007). 도면에서 오른쪽이 남이고 왼쪽이 북이다. 자료=사바테예프, 로바노바
 
1968년 이후부터 2008년까지는 세 번째 단계로 볼 수 있다. 2005년 카렐리야와 영국의 고고학자들이 함께 구잘라브루가에서 292개의 새로운 이미지를 찾아냈고 2008년 로바노바 조사단이 신잘라브루가의 새로운 그룹을 발견하고 기존 그룹에도 추가 형상을 찾아내는 등, 40년 동안 약 600개의 이미지가 더해졌다. 현재 잘라브루가는 총 2,500여개의 형상을 헤아린다. 암각화와 더불어 신석기 정착지들도 발굴돼 도자기, 석영 도구, 부싯돌, 칼 모양의 석판, 돌과 바위로 된 아궁이 등 수많은 유물 조각들이 수천 년 후의 세상으로 나왔다. 아마도 암각화를 제작한 이들이 그 유물의 주인일 것이다. 
 
거대 사슴과 배, 혹은 계절이동과 사냥
 
잘라브루가 암각화를 발견 순서에 따라 신·구로 구분해 부르긴 하지만 이들은 한 공간에 함께 위치한다. 그림들은 10~15°가량의 경사를 이룬 화강편마암의 평평한 바위 턱에 새겨져 있다. 다음번에 살펴보겠지만 신석기 예술가는 이러한 경사면을 그림에 활용해 더욱 생생한 효과를 만들어냈다. 구잘라브루가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거대한 사슴 세 마리와 그들을 둘러싼 사슴 떼의 이동 광경이다. 1938년에 출판된 라브도니카스의 책에는 1936년의 조사 결과인 구잘라브루가의 중앙그룹 도면이 실려 있다. 물론 2005년에 그 숫자 이상의 크고 작은 이미지들이 발견되면서 많은 의인화 형상과 숲 동물들 그리고 배도 여러 척이 더 추가됐지만, 가장 핵심적인 이미지인 거대 사슴과 순록 떼의 이동 장면, 거대 사슴들 사이를 통과해 지나가는 배들, 날아다니는 화살 또는 창, 궁수와 스키어들의 모습은 라브도니카스의 도면에 이미 잘 드러난다.
 
스타라야(구)잘라브루가의 독특한 사슴 형상. 뒷다리에 연결된 나선형 모양은 태양 또는 우주와 관계된 상징적 의미로 해석된다. 북부 소수종족의 믿음에 따르면, 낮과 밤이 교대되는 것은 사슴의 뿔이 해와 달을 나르기 때문이라 한다. 사진=박성현
 
그림을 좀 더 들여다보자. 연구 초기 고고학자 리넵스키는 이 거대한 세 마리의 사슴을 엘크로 보았지만 현재는 대부분 순록으로 간주한다. 구잘라브루가의 거대한 사슴이 3m에 이르고 이는 실제 크기에 가깝다고 할 때, 사슴과 중에서 크기가 가장 큰 엘크로 인식할 만하다. 엘크의 수컷은 길이가 최대 3m에 이른다. 발트해에서 백해와 바렌츠해에 이르는 대부분의 공간이 타이가로 덮여 있던 5,000~6,000년 전, 카렐리야와 무르만스크 전역에 널리 퍼져 있었던 엘크는 암각화에 종종 등장하는 사냥대상이었다. 그런데 숲 순록 역시 타이가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고 툰드라 순록보다 크기가 크다. 엘크는 수컷만 뿔이 있지만 순록은 사슴과에서 유일하게 암컷도 뿔이 있는 동물이다. 하지만 엘크도 순록도 매년 뿔갈이를 하느라 뿔이 없는 시기가 있기 때문에 그림 속 사슴의 뿔 유무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엘크와 순록의 수컷은 가을부터 초겨울까지의 번식기가 끝난 후 11~12월에 뿔을 흘리고 순록의 암컷은 5~6월에 새끼를 낳은 후 뿔을 잃는다. 
 
스타라야(구)잘라부르가의 중심 이미지인 거대한 세 마리 사슴과 사슴 떼의 계절 이동. 관람객은 나무데크길로 다니게 돼 있다. 사진=박성현
 
구잘라브루가 중앙 암면의 거대한 세 마리 사슴과 그들의 외곽 양쪽(도면의 우측인 남과 하단인 서)에서 출발해 한 지점으로 수렴되는 사슴 떼는 한쪽을 향하고 있다. 이 순록들은―설령 엘크라 해도 마찬가지다―가을에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사슴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여러 척의 배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는데, 이들은 사슴이 강을 건널 때 사냥을 한다. 가운데 있는 거대 사슴에는 배가 중첩돼 있다. 배와 사슴 중 어느 쪽이 먼저 새겨졌는지에 대해 이견이 있고 제작 시기상 둘 사이의 시간차가 얼마나 되는지도 밝혀지지 않아 향후 연구의 대상이다. 이 이미지에 대해 라브도니카스는 사슴과 배가 하나의 줄거리로 연결되어 ‘사슴을 사냥하는 마법의 장면을 표현’했다고 보았다. 여기서는 순록사냥이 상징적으로 암시됐지만, 극동시베리아의 최북단에 위치한 추코트카 자치구의 펙티멜 암각화에는 배에 탄 사람들이 계절이동을 위해 강을 헤엄쳐 건너는 순록들을 사냥하는 장면이 직접적으로 묘사돼 있어 흥미롭다.
 
한편, 사슴들 사이의 배 장면에 대한 리넵스키의 해석도 눈길을 끈다. 그에 따르면, 가을에 소로카만으로 청어가 들어오고 그 뒤를 따라 벨루가와 바다코끼리, 물개가 오기 때문에 이들을 사냥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비그강 하구에 모여들었다는 것이다. 청어와 바다동물의 사냥 시기가 바로 사슴들이 남쪽의 숲속 깊은 곳으로 이동하는 가을이다. 구잘라브루가 사슴의 계절이동 장면에서 또 한 가지 인상적인 특징은 애니메이션 기법이다. 열을 지어 이동하는 사슴의 모습을 연이어 붙이면 마치 움직이는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정지 이미지의 사진(프레임)들을 연속적으로 영사해 잔상효과에 의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활동사진, 즉 영화의 원리와 같다. 신석기 예술가들의 묘사력이 참으로 경탄스럽지 않은가!
 
전투? 스키를 탄 주민과 외부인의 충돌 
 
구잘라브루가의 또 하나의 구성은 북동쪽 경사면에 집중돼 있는데, 스키를 탄 사람, 활을 쏘는 사람과 화살을 맞은 사람, 날아다니는 창 또는 화살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 밖에도 여러 척의 배, 사람과 동물의 흔적, 네발 달린 동물 및 윤곽선으로 묘사된 큰 바다동물, 선과 원, 십자형 도형과 기하학적 형상, 주거지로 보이는 이미지 등 다양한 형상이 묘사돼 있다. 우리가 주목할 장면은 역시 스키어와 궁수, 화살을 맞고 쓰러진 사람과 날아다니는 창 또는 화살 이미지들이다. 이런 장면을 근거로 러시아 학자들은 백해 암각화의 중심 주제에 ‘전투’를 포함시켜 왔는데, 신석기 시대는 아직 전쟁이 출현하기 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암각화가 제작되던 신석기 후기 이 지역을 찾아온 외지인들과의 충돌이나 전투의 초기 단계를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스타라야(구)잘라부르가의 대표적 이미지 중 하나인 '세 명의 스키어'(좌)가 외지에서 온 침입자(우)를 마주하고 있다. 활을 든 침입자는 화살에 맞은 상태다. 사진=박성현
 
“여길 보세요. 연구자들은 이것을 전투 장면이라 말합니다. 이 사람은 온몸에 화살을 맞았어요. 자기 손에 활을 들고 있긴 하지만요. 여기 창들이 날아다니고 있지요?” 안내를 하던 벨로모르스크 향토박물관의 교육연구사 마리나 씨가 러시아 연구자들 사이에 보편적으로 공유된 해석을 전해 준다. 그녀가 설명할 때 날아다니는 물체를 처음에는 창이라 했다가 나중에는 화살이라 표현했는데, 라브도니카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명확하지 않은 발사체’다. 그림상으로는 삼지창 모양을 띠고 있다. 
 
스타라야(구)잘라브루가. 사슴의 등을 창으로 찌르는 스키어(왼쪽 위)와 스키 부족 사람들(왼쪽 아래). 맞은편에는 외지에서 온 다른 부족의 침입자가 활을 들고 창 또는 화살을 맞은 모습이다. 사진=박성현
 
이어지는 마리나 씨의 설명, 즉 연구자들의 해석을 요약하면 이렇다. 스키를 탄 사람들은 이 지역에 사는 부족으로, 스키를 타고 순록사냥을 하는 평화로운 광경이 묘사돼 있다. 스키를 타지 않은 사람들은 외부에서 침입해 온 다른 부족인데, 스키 부족을 향해 활을 겨누거나 동시에 자신도 화살 또는 창을 맞은 상태다. 고리가 있는 긴 선은 강과 섬, 윤곽선으로 새겨진 사각형은 주거지로 볼 수 있다. 배 그림으로 인해 외지의 부족이 배를 타고 왔다고도 해석되는데, 주민들이 스키를 탄 상태라 계절이 겨울이라 가정하면 배로 이동이 가능할 만큼 과연 강이 얼지 않았을까 의문이 생긴다. 어쩌면 스키가 딱히 계절을 뜻한다기보다 이곳의 주민이 스키를 타는 부족임을 표시한 것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스키 부족은 외부 침입자들로부터 자신들의 영역을 지켜냈고 후일 바위그림으로 그 기록을 남긴 듯하다.
 
수많은 화살에 상처를 입은 사람. 그의 주변에 날아다니는 창 또는 화살이 보인다. 사진=박성현
 
박성현 경상국립대 학술연구교수 perceptio@hanmail.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성남 엔터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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