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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장 커지는 '위안부 판결'…한일관계 새 변수 등장
기시다 정부·윤석열 정부 모두 '일단 무시'…"판결 존중 입장도 없어" 비판 제기
2023-11-30 06:00:00 2023-11-30 09:50:47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 선고기일에서 1심 패소 취소 판결 뒤 법원을 나서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2심 재판부가 1심 각하 판결을 깨고 일본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문제는 과연 일본 정부가 실제로 배상하냐는 건데, 윤석열정부 '한일관계'에 변수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국제법 변화 반영…일본 정부 책임 인정
 
서울고등법원 민사33부(부장판사 구회근)는 지난 23일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16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21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원고가 청구한 금액을 전부 인용한다"고 했습니다. 2016년 12월 소송을 제기한 지 약 7년 만인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거듭 인정한 판결입니다. 지난 2021년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승소한 바 있습니다.
 
1심의 '각하' 결정이 뒤집힌 건 2심 재판부가 국가면제 조항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국가면제는 한 국가의 국내 법원이 다른 나라 정부와 그 재산에 대해 재판 관할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해 국가를 서로의 재판 관활권으로부터 보호하는 국제법상 규칙입니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국가면제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않는 것이 국제관습법의 흐름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UN 국가면제 협약 및 유럽 국가면제 협약에서는 국제인권법 또는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행위에는 가해 국가의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수정되는 추세입니다. 이탈리아 법원의 페리니 판결, 브라질 최고재판소의 샹그릴라(Changri-la0 판결, 2022년 4월의 우크라이나 대법원 판결 등이 그 사례입니다. 
 
특히 2심 재판부는 "최소한의 자유조차 억압당한 채 매일 수십 명의 피고 군인들로부터 원치 않는 성행위를 강요당했고, 그 결과  무수한 상해를 입거나 임신·죽음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다"며 "당시 일본제국 공무원들은 피고의 구 형법 제226조에서 금지하는 '국외 이송 목적 약취·유인·매매' 행위를 했고, 일본제국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조장하거나 방조했다"고 명시했습니다. 다만 한일청구권 협정에 따라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일본 측의 주장에 대해서는 재판부에 따로 항변을 하지 않은 점을 들어 따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일본 '무대응' 전략…배상 없을 듯
 
문제는 실제 배상 여부입니다. 2심 재판부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각 2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소송 비용도 일본 정부가 부담해야합니다.
 
그런데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은 담화문을 통해 "국제법 및 한일 양국 간 합의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즉시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하도록 재차 강하게 요구한다"고 한국 정부에 촉구했습니다. 또 일본 정부는 윤덕민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해 "판결은 극히 유감"이라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일본은 "상고하지 않겠다"라는 입장입니다. 일본이 직접 항소하지 않으면 판결은 이대로 확정되는데, '무대응 원칙'으로 대처한다는 계획입니다.
 
판결이 확정되면 국내에 있는 일본 정부 자산을 압류해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는 절차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강제집행이 진행되면 한일간 외교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지금까지 한일 양국의 마찰 원인을 만들어 온 한국 사법 리스크가 다시 떠올랐다"며 "법원이 한국 정부의 징용 해법 이행에 물을 끼얹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26일 부산 해운대구 시그니엘 부산에서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과 회담을 갖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진 "한일합의 존중"…피해자측 "주권국가 맞나"
 
우리 정부가 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갈 가능성도 높지 않습니다. 지난 26일 박진 외교부 장관은 가미카와 외무상과의 회담 직후 '위안부 판결과 관련해 어떤 의견을 일본에 밝혔냐'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양 국가 간의 공식 합의로서 존중하고 있다고 전달했다"고 동문서답식의 답을 내놨습니다.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법적인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냐'라는 질문에도 외교부 당국자는 "가장 중시하는 것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해 양국이 노력한다는 것"이라고만 답했습니다.
 
관련해 정의기억연대는 입장문을 통해 "(정부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 피해자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입장 표명조차 없이 앵무새처럼 '2015 한일합의'를 들먹였다"며 "또 다시 사법농단을 통해 피해자들의 권리 실현을 지현시키거나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처럼 피해자의 인권을 팔아먹겠다는 의지의 표명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이 쟁취한 정당한 권리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이번 2심 판결의 소송 대리인을 맡은 이상희 변호사는 <뉴스토마토> 통화에서 "'2015 한일합의'는 한국·일본 정부의 기자회견으로 법적 효력이 없을 뿐 아니라 피해자들이 당사자로 수용하겠다고 밝힌 바가 없다"며 "적어도 주권국가라면 이번 판결에 대해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한다고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정부는 지혜를 모아 이번 판결이 이행될 수 있도록,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고민 해야 하는데 그런 고민이 전혀 없다"며 "현재 정부의 태도는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오히려 과거사 문제를 왜곡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9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54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보고서에서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과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게 공식으로 사과하고, 가해 사실을 인정했다"라는 내용을 담기도 했습니다. 외교부는 뒤늦게 실무자 부주의라며 의견서 수정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지만, 현재까지 진척된 내용은 없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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