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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박원순·안희정 누가 더 민주시민교육에 충실한가?
2023-08-01 06:00:00 2023-08-01 06:00:00
지난 7월 20일 경남 창원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을 부정하는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첫 변론’이 정당과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사회를 강행했다. 우리사회는 이번 다큐 방영을 놓고 또 한바탕 사회적 논쟁을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대현 다큐감독은 지난 5월 CBS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영화가 성폭력 결론을 부인하는 2차 가해라는 반발이 있다는 것에 대해 “2차 가해라는 것은 1차 가해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1차 가해에 대한 여러 의문들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이것을 2차 가해로 몰아갈 수 있는 걸까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다큐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박 전 시장을 지지하는 이들에게는 성희롱 사건이 사실이 아닌 믿음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인권위원회와 법원이 무엇을 확인했고 조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아무리 얘기해도 통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번 논쟁이 감정싸움으로 격화되기 전에 그동안 공론화되지 않았던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왜 평소 민주시민교육의 덕목으로서 준법정신과 법치주의를 강조하던 정치인들이 범죄혐의를 받으면 극단적인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가이다. 왜 죄를 지은 정치인들은 법적 절차를 통해 책임을 지지 않고 자살하는 것일까? 왜 ‘공소권 없음’으로 꼬리를 자르는 것일까?
 
이것에 대한 답변으로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그 핵심에는 그들의 성향이 겉과 다르게 실제의 속은 민주시민교육에서 강조하고 있는 민주시민도 법치주의자도 아닌 유교주의자 성향이 강하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런 추론은 죄와 책임을 대하는 동서양의 태도가 문화적으로 다르다는 <국화와 칼>의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의 주장에 기대고 있다. 베네딕트는 서양은 죄책감(guilt)의 문화를, 동양은 수치심(shame)의 문화를 갖는다고 보았다. 
 
죄책감과 수치심의 차이는 뭘까? 내면의 ‘자존감’이 좀 있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불편과 고통을 준 자신의 ‘죄책감’을 줄이기 위해 자살하지 않고 법의 처벌수용으로 해결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자존감’보다 주변의 눈치를 보는 체면에 민감한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은 자신의 수치심을 피하는 방식으로 은폐·잠수·자살 등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서양은 법적 절차를 통한죄책감의 해방을, 동양은 자결을 통한 수치심 해방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다.
 
청교도 영향을 받은 서양문화는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이 신처럼 선과 악을 판별하는 완전성과 무한성 및 탁월성을 가지려는 욕망에서 빚어진 죄의 근원성을 사전에 견제하고자 했다. 즉, 서양문화는 인간의 불완전성과 유한성 및 연약성을 인정하는 사법절차인 법치주의 구현을 통해 죄책감에서 벗어나 구원받고자 했다.
 
하지만 유학과 유교에 영향을 받은 동양문화는 인간의 불완전성과 유한성 및 연약성을 견제하기 보다는 이것을 성인군자와 같은 초월성을 통해 벗어나려고 했기에 사법절차와 법치주의보다 은폐·잠수·자살을 선택하는 역설에 빠지는 경향이 많았다.
 
조선시대 열녀문 지정사업, 수많은 운동지사의 자결 등 유교이념이나 자기검열의 명분으로 사람을 죽게 하는 폐습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미 청대학자 대진(戴震)이 ‘이리살인(以理殺人, 명분이 사람을 죽게 함)’의 폐습을 비판한 바 있다. 대진은 “사람이 법에 죽으면 그래도 동정을 받건만 명분(理)에 의해 죽을 경우 그 누가 동정하는가?”라고 하면서 성리학을 비판했다.
 
성폭력 범죄를 짓고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안희정 전 지사와 죽은 박원순 전시장의 행태는 민주시민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비교가 된다. 둘 중 누가 더 민주시민교육에 충실한 시민인가 하는 점이다. 안희정 전 지사는 비슷한 상황속에서도 법적 절차를 밟아 법의 심판을 받았다. 공소권 없음보다는 법적 절차를 받는 사람이 조금 더 민주시민교육에 충실한 시민이 아닐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게 법치주의와 민주시민교육의 정신이 아닐까?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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